조커와 관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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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대체 왜!!!" "지금 불안정한 상태로 다가가 봤자 얻을 거 아무것도 없어. 차라리 현장 나가서 증거 찾아보는 게 나을걸." 현장은 이미 여러 번 탈탈 털어서 더 나올 것이 없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의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심문실에서 옮겨서 이제는 보호실에 있을 아이가 생각이 났다. 처음 잡혔을 때부터 엉엉 울어버리던 표정과 심문실 안에서 모든 것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던 아이. 의는 제 생각만 한 것 같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근데 증거는 더 없잖아." "범인들 꼭 하는 행동, 잊었어?" "아……." 범인은 사건 현장에 돌아온다. 간혹 그러지 않는 사이코 같은 놈들도 있지만 99%의 확률로 다시 제가 벌였던 사건 현장으로 돌아와 동태를 살핀다. 사건 현장은 오늘 아침부터 오후까지 감식이 이뤄졌고 지금은 저녁이니 내일 오전 중으로 방문한다면 얻어걸릴 것이 분명했다. "근데 오늘 밤에 나타나면 어떡해?" 의의 말에 서현의 표정이 사색이 되며 그의 입을 가로막았지만, 이미 그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세진이 환하게 웃으며 잘됐다는 듯이 소리쳤다. "오늘 둘, 잠복!" 세진의 말에 서현은 망했다는 표정을 지었고, 파티션 너머로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다른 강력팀 팀원들이 키득대며 웃었다. 너는 입을 좀 다물어야 해. 미안……. 서현은 의의 등을 내리쳤고, 의는 그런 서현을 피하고자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에 뵈는 게 없던 서현은 의를 따라 뛰어나갔다. 시끄러웠던 강력팀 방에 소란스러움이 사라지니 다른 사람들의 귀도 덩달아 편안해졌다. "두 시간 뒤에, 서 앞에서 보자." 맞은 건지, 운 건지. 아무튼,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서현에게 말한 의는 재빠르게 사라졌다. 서에서 한 시간 거리에 사는 의에게 두 시간은 빠듯했다. 아마 근처 사우나에서 씻고 오거나 팀 방에서 잠을 자고 오겠지. 반면, 서에서 20분 거리에서 사는 서현은 집으로 향했다. 잠복하면 꼬박 하루는 씻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깨끗하게 씻고 가는 것이 찝찝하지 않을 것이다. 우울한 마음으로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갔다. 그사이 퇴근하는 사람들이 건물에서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당신들은 집에 가는 군요, 나도 가긴 하는데 곧 다시 나와야 한답니다. "어- 퀸!"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대상을 바라보니 당당하게 서 있는 다즈 에어(???팀, 남, 25세)가 보였다. 서현은 깜짝 놀랐다. 네가 왜 여기에서 나와? 서현은 재빠르게 익숙한 얼굴인 다즈 에어에게 다가갔다. 반면, 다즈 에어는 여유롭게 천천히 걸었다. "여기에 왜 있어?!" "그-냥" 장난스럽게 씩 웃은 다즈 에어는 가봐야 한다면서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서현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장난스러운 웃음을 유지하고 있는 다즈 에어는 무슨 일이냐며 물어봤지만, 서현은 그를 날카롭게 쏘아봤다. 그 눈빛에 썰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그는 곤란하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기밀이야." "팀원들한테 기밀 만들기 있어?" "난 팀원이 아니잖아." "……." 다즈 에어의 단호한 말에 서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 니들끼리 다 해 먹어라. 그를 잡았던 손에 힘을 놓자, 다즈 에어는 서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아무런 미련도 갖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벽이 있다고 불퉁한 소리를 뱉을 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벽을 이제 제대로 실감한 서현은 다즈 에어가 두드린 어깨를 쓱 문지르고 집으로 향했다. 여러 번 곱씹어 보니 괜히 기분이 나빠 쿵쾅거리며 걸었더니 지나가던 꼬마가 흠칫하는 것을 느껴서 다시 발걸음을 조심히 내디뎠다. 집에서 재빠르게 씻고 한 시간 동안 눈을 붙인 서현은 잠복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만반의 준비라고 해 봤자, 다시 총기 손질하는 것뿐이었지만. 홀스터에 든든하게 담긴 권총의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니 괜히 천군마마를 얻은 것 같았다. 집에서 나와 서에 도착하니 아직 의는 쉬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세진은 이미 없었고, 야근을 위한 몇 팀원들만 방 안에 있었다. “레몬.” “응? 아, 오늘 너희 잠복이지? 단 거라도 좀 줄까?” “그럼 좋죠. 아, 그것도 그런데 혹시 최근에 AG가 마약 거래하는 거 다른 팀한테 넘어간 적 있어요?” “AG 마약 건? 글쎄, 윈드가 다 가져간 거로 알고 있어. 아, 여기 사탕이랑 캐러멜.” “감사합니다. 고생하세요.” 서현은 두 손 가득 담긴 간식거리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최근 들어 AG 관련 검거 건이 많은 게 착각이 아니었다. 그래, 아무리 그 사람이라도 다른 팀이랑 마주치면 곤란하겠지.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 짜증이 나서 괜히 주인이 있지도 않은 자리를 째려봤다. 그 시각, 집에서 커피를 음미하던 세진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 경찰로 근무하게 된 지, 어언 8년 차. 동갑내기 파트너인 의가 이제 5년 차임을 고려하면 서현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서현은 나름 높은 연차를 갖고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16살 어린 나이에 학교를 다니고 싶어 하지 않았던 서현은 경찰 시험을 준비했고 명석한 두뇌,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간단하게 입사한 건 아니고 죽을 둥 살 등으로 노력해서 겨우 얻어냈다. 첫 경찰 배지를 받았을 때, 서현은 지용의 앞에서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지금, 8년 동안 일 하면서 잠복을 거의 하지 않은 그는 의의 앞에서도 엉엉 울고 싶었다. 정말 운이 좋지 않은 연도에 잠복한다고 해도 고작 3번이 전부였고, 보통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는 시기 오전에서부터 저녁까지 모든 사건을 종결시켰다. 툭 하면 밤샘을 하는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밤샘 작업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의가 자랑하는(왜 의가 자랑하는지는 의문이다.) 그의 뛰어난 식스 센스의 몫이 컸다. 그 덕분에 3년째 파트너인 의도 자동으로 칼퇴근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올해는 재수 옴 붙은 게 분명해." "우리 파트너하고 처음으로 잠복한다, 그렇지? 흐흐" 옆에서 뭐가 그리 좋은지 넉살맞게 웃으며 말하는 의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서현은 한숨을 푹 내뱉으며 시트에 몸을 깊게 묻었다. 서현은 일단 잠이 많았다. 비번인 날에는 온종일 잠을 잤고, 소개팅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뭔가요? 라고 물어오면 잠자는 것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잠이 많은 사람이었다. 경찰이 되고 나서 잠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잠이 많은 서현에게 잠복은 영 젬병이었다. 일단 날밤을 새우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느려진다. 게다가 오스티 지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사격을 잘 하는 서현의 사격 명중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으로 식스 센스가 잘 발동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야, 나 잘 테니까 깨우면 죽는다." "야아- 우리 첫 잠복인데 대화로 오늘 밤을 불태우자."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는 서현이 의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눈을 번쩍 뜨고 동글동글한 의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정신 나갔니? 범인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 똑바로 해!" 정신 있는 너는 잠복하는데 잠을 잔다고? 서현에게 머리를 제대로 맞은 의는 순한 눈으로 꽤 날카롭게 쏘아보는 서현의 눈길에 조용히 고개를 돌려 사건 현장이 일어난 집을 바라봤다.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골목에는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기 때문에 둘이 잠복을 하는 차는 위화감을 주고 있지 않았다. 서현은 눈을 감았다. 3년 전 헤어졌고(물론 한 명은 헤어졌다고 주장, 한 명은 헤어지지 않았다고 주장 하는 중), 3년 동안 연락 한번 없다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것도 AG에 소속되어 있는 마약 브로커로 위장해서. 실로 개 빡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잠복까지! 세상 살면서 모든 운이 없는 상황은 다 맞이하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이번 범인 검거 못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서현은 잠에 빠져버렸다. 톡톡- 누군가가 창문을 얕게 두드린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귀가 밝아진 서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살짝 뜨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사람이 기절할 정도로 놀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데, 딱 그 모양이었다. 소리를 내는 범인이 누군지 알아낸 서현이 겨우 숨을 몰아쉬며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슬쩍 옆을 보니 의는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입을 헤- 벌리고 자고 있었다. 한심한 파트너 새끼……. 본인이 자고 있던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운전석에서 내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에요?" "잠복한다고 하길래, 놀러 왔어." "카페 아르바이트하는 그것도 아니고 일하는 건데 놀러 오긴 무슨 놀러 와요." 아닌 밤중에 지용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머리통을 파트너를 내려치듯 내려치고 싶은 마음이 든 서현은 짜증 난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가 곧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까부터 지용이 들고 있던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들고 있는 건 뭐예요?" "아- 저기 폴리스 라인 근처에서 얼쩡대길래 수상 해 보여서 잡아 왔어." 이 야밤에 진한 선글라스를 끼고 비비드블루 색 슈트를 입은 당신이 더 수상해 보입니다만. 하지만 짜증 나게도 지용은 촌스러워 보이는 파란 슈트마저도 멋들어지게 소화하고 있었다. 서현은 지용의 손에 붙잡혀 축 처져 있는(아마 기절한 것 같다)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폴리스 라인 근처에서 얼쩡댔다고요?" "응. 근데 저 집에서 무슨 일 있었어?" "와-" 서현은 의의 놀라운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점퍼 주머니에 있는 수갑을 꺼내 그 사람에게 채웠다. 지용은 여전히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서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용의자 검거 도와줘서 고마워요. 선량한 시민상이라도 드려야 하나." "그거 수상소감 있어? 그럼 하나 주라." “……뒷좌석에 쳐 넣어요, 그 사람.” 서현의 말에 어깨를 으쓱인 지용이 내가 왜? 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기왕 도와주는 거 끝까지 도와주면 좀 안 되겠니? 서현의 눈빛을 읽었지만 모르는 척 하는 지용이 얄미워 정강이를 걷어찰까 고민한 서현은 곧 생각을 거뒀다. 저 놈은 때리면 때릴수록 내 속만 터진다. “싫음 관둬요.” 서현은 몸을 돌려 차 문을 열었다. 의는 아까보다 더 격정적으로 입을 벌리며 자고 있었다. 침을 흘리지 않는 것이 신기 할 정도였다. 몸을 숙여 의에게 가까이 다가간 서현은 의의 코를 잡았다. "티스, 안 일어나면 내가 맨날 운전한다." "커- 흐억! 억! 하아- 하- 야!!! 왜 코를 잡아!!!"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의가 울상을 지으며 서현의 손을 털어내자 서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의에게 말 했다. "범인 잡았으니까 연행 해." 뭐어!? 제대로 잠을 깨운 서현의 말에 의는 벌떡 일어나려다 차 천장에 머리를 확 박아버렸다. 다행히 퇴근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사실 퇴근은 불가능 하다.) 박은 머리를 쓱쓱 문지르고 차에서 재빠르게 내렸다. "아, 안녕하십니까." "어어- 고생 많아요." 지용의 손에서 늘어진 사람을 건네받은 의는 차의 뒷좌석에 집어넣었다. 이게 웬 떡이라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만 언제 깨어나서 공격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과 나란히 뒷자리에 앉은 의는 천천히 얘기하라는 듯이 생글 생글 웃으며 문을 닫았다. 그런 의의 행동을 본 서현은 하여튼 저 새끼는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돼, 라는 생각을 하며 지용을 올려다봤다. 지용은 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서현을 마주했다. 서현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본 지용은 오늘따라 서현의 눈동자가 더 반짝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밤에 보니 또 새삼 잘 생겼어?" "로드엔 언제 돌아 갈 거예요?" "선글라스로도 안 가려지네, 내 미모가." 서현도, 지용도 서로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지용은 그저 능글맞게 창문에 비친 제 모습을 점검한다. 그 모습을 본 서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 상태로는 물어도 대답을 해 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대화에 흥미가 떨어진 서현은 운전석 쪽으로 향했다. 야, 티스 니가 자리를 만들어도 저놈이 정신이 나가서 대화가 안 돼. 지용이 서현을 힐끔 보더니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탑승했다. 그 모습을 본 의는 잉? 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서현도. "뭐야. 왜 타요?" "혼자 다니면 위험하잖아." "퍽도 위험하시겠다." 범인도 혼자 때려 잡았으면서.. 서현은 이죽거리며 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벨트를 맸다. 어차피 내리라고 해도 귓등으로 듣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지용은 벨트를 매고 있는 서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의는 뒷좌석에서 그 상황을 지켜봤다. 조만간 서현의 머리 뚜껑이 열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것 같았다. 아닌가. "운전도 하고, 다 컸네." 지용은 서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곤 벨트를 착용했다. 서현은 지용의 손길에 살짝 얼어 있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시동을 걸었다. 한 살 차이면서 크긴, 무슨. 안전 운전을 할까, 살짝 스트레스를 풀까 하다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의는 서현의 운전에 놀라 까무러칠 뻔 했다. 옆에서 으으 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자를 방치한 의는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인지 고민했다. 재수가 옴 붙었다고 말한 서현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다. 그리고 지용을 본 날의 서현은 항상 화가 났다. 오늘은 두 가지 일이 겹친 날인데도 불구하고 서현이 화를 내지 않는다. 결론은 해탈 했거나 또는 해탈 한 것이다. 어찌됐든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의는 서현이 좋아하는 마카롱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서현의 안전 운전 중, 지용이 간간히 훈수를 뒀고 그런 지용의 훈수에 서현은 빽- 소리를 질렀다. 결국 지용은 도중에 쫓겨나듯이 내려야만 했다. "달링, 나 정말 버릴 거야?" "달링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만 좀 질척대요!" 서현의 외침에 지용은 재미있다는 듯이 허리까지 꺾으며 웃는다. 의는 생각 했다. 저 사람은 진짜 미친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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