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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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심장 터지는 줄." 햄릿은 재빨리 자신의 짐을 챙겨들고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는 가게 옆의 바다가 있는 작은 모래사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왜 바다로 가요? 가게 안에서 안 먹고?" -"깜짝이야! 아~ 놀랐잖아요." "춥잖아요." -"바다에서 먹으려고요. 이거 하려고 온 거니까." "그럼, 나도." 그녀는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여 알아차린 사람이 없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진짜 혼자 왔어요?"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 햄릿에게 물었다. 햄릿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에이~ 거짓말. 스텝도 없이? 혼자? 어떡해?" "운전해서." -"혼자?" "혼자." -"촬영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어디 카메라 숨겨져 있는 거 아니죠? 몰래카메라 그런...?" "진짜 혼자왔다니까요?" -"어디 마이크 숨겨져있는거 아이가?" 그녀에게서 툭 튀어나온 사투리였다. "아이라니까?" 햄릿은 자신의 옷을 젖혀 보이면서 마이크가 없음을 보였다. 다시 옷을 입은 햄릿이 그녀의 사투리에 또 한 번의 동질감을 느꼈다. "거봐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고, 모래사장을 내려가는 입구에 있는 시멘트 계단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무르팍에 떡볶이가 담긴 포장용기를 올렸다. 햄릿은 그녀의 옆에 나란히 앉아 행동을 따라했다. 그녀는 비닐봉지를 까서 긴 이쑤시개로 떡볶이를 집어 올렸다. 옴뇸뇸뇸... 입으로 가져가 오물모울 먹는 모양새가 퍽 귀여워보였는지 햄릿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마이따!" 아직 채 삼키지도 못한 떡볶이 덕분인지 꽤 애교섞인 투였다. 햄릿이 물었다. "마이써?"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자신을 보는 그녀에 햄릿도 떡볶이를 집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오~!" 걸쭉하며 달달한 것이 튀김과 조화가 참으로 잘 맞는 진짜 맛있는 떡볶이였다. 둘이서 나눈 튀김을 국물에 찍어 먹으니 더 맛있었다. 바삭한 튀김에 싸인 오동통한 오징어가 씹히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시선을 멀리 떨궜다. 그때, 햄릿이 물었다. "왜 혼자 왔어요? 무슨 답답한 일이라도 있어요?" -"아니요. 쩝쩝... 내가 답답해서요." 그녀는 햄릿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무미건조하게 되물어왔다. "답답한 일 있어요?" 햄릿은 그녀의 눈을 보았다. 회색인 듯 파란색인 듯한 색의 렌즈 때문일까? 아니면 진짜 아무 이유 없는 물음인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난 지금 나의 또 다른 영혼과 만나고 있는 중인 걸까? 아무도 자신에게 물어오지 않은 물음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냥. 겨울 바다가 보고 싶어서." -"쩝쩝..." "저기, 내 팬 맞죠?" -"네." "근데 왜... 이렇게 시크한 반응은 처음이에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튀김을 집어 입으로 넣고는 오물거리며 다시 수평선으로 시선을 옮겼다. -"쩝쩝... 굳이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햄릿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라고 이어 준 인연 아닐까? 오늘 이 시간뿐일지라도.... -"답답하다면서요. 바다 봐요."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찬 바다의 공기가 폐부 끝을 탁 치고는 후하는 호흡에 통로를 차게 휩쓸고 나갔다. *** -햄릿과 그녀, 그녀의 이름은-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내 삶의 꽉 막힌 하루를 벗어나려 온 일탈을 하는 중이라는 걸. -"찐 팬의 의리?" "의리는 무슨. 사생활 보호." -"인터넷에 올릴 거면서." "그래서 폰 안 꺼내잖아요. 그럴까봐." -"아~. 그래서?" 햄릿은 휴대폰을 보지 않는 도전인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도전이 자신의 사생활을 지켜주기 위한 도전이었다니. 고맙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몇 살이에요?" "내가 누난데." -"몇 살?" "여섯 살." -"진짜?!" "놀라줘서 고마워요. 진짜 자연스러웠어." -"아니, 진짜 그렇게 안보였어요." "그래도 누난 줄은 알았잖아요." -"몰랐어요." "고마워요. 위로가 좀 됐어." -"진짠데." "스읍~ 맵다!..." 나는 매운 걸 잘 못 먹었다. 달달한 양념에 별로 맵지 않다고 생각했던 떡볶이가 하나 둘 들어가기 시작하며 혀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생수병을 꺼내 열었다. 입으로 바로 가져다려다 햄릿에게 먼저 건넸다. 햄릿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물을 입 안 가득 넣고 양 볼이 볼록하게 물을 가두고는 열을 식혔다. -"매운 거 잘 못 먹어요?" "네." -"근데 왜 떡볶이를 먹었어요?" "맛있으니까." 햄릿은 피식 웃었다. -"귀여워." 나는 못들은 척 했다. ... 들어버렸어억!!!!!!!!!!!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혹시 얼굴이 빨개진 건 아니겠지? 손가락 끝까지 떨려서 떡볶이를 못 집겠어. 튀김이 안보여. 수평선이 희미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도망가고 싶다. 차라리 도망치고 싶어. 너무 떨려서 격하게 도망치고 싶다악!!!!!! 다시 떡볶이와 국물에 젖은 튀김을 먹는 것에 집중했다. 햄릿도 수평선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 추운 겨울임에도 제트스키를 타고 모래사장 앞을 멋지게 지나가는 중년의 남자를 발견했다. "우와! 대박! 멋있어." 나의 말에 햄릿도 제트스키를 탄 남자를 보았다. ="우와!" 제트스키를 탄 남자는 멋지게 물보라를 일으키더니 다시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사라졌다. 나의 혀는 더 아려왔고, 물 덕분인지 배도 꽤 찼다. 아직 절반이나 남은 상태였다. 떡볶이에겐 예의가 아니지만, 위장을 위해 이만 멈추는 것이 맞았다. 내가 이쑤시개를 놓자 햄릿이 나를 쳐다봤다. -"다 먹었어요?" "네. 너무 매워서. 배도 부르고." -"그럼 나 조금만 줄래요?" "다 먹어도 돼요." 나는 생수병의 물을 다시 가득 입 안에 머금고 열을 식혔다. 햄릿은 나의 떡볶이를 가져가 끝까지 맛있게 먹었다. 나는 햄릿이 떡볶이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주위 사람들이 혹여 알아차리지는 않을까 슬쩍 곁눈질도 하면서 기다렸다. 햄릿의 떡볶이가 바닥을 보일 때쯤, 나는 햄릿에게 물을 건넸다. 햄릿이 물을 받아 마셨다. "위장 다 털리는 줄 알았네." 나의 그 말에 햄릿이 물을 뿜었다. "에헤이~" 나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건넸다. -"가방에서 계속 나오네요?" "아, 도라에몽 가방이라. 가방에 이것저것 많이 넣고 다니거든요." -"도라에몽 가방?" 햄릿은 큭큭거리며 웃었다. -"재밌네요. 나도 꽤 넣어 다니는데." "알지." 나는 그 말을 끝내고 약 3초 정도 눈을 꿈뻑였다. 그리곤 햄릿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말았다. 나, 약간... 변태 같았나? 멈칫하긴 햄릿도 마찬가지였다. 살짝 소름이 돋을 뻔하기도 했지만 당황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다시 웃음이 터졌다. 서로 같은 생각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가방에 뭐 챙겨 다녀요? 작은데?" "그냥, 여러 가지?" -"구경해도 돼요?" "정리가..." 나는 가방을 허벅지 위에 올렸다. 가방을 열자 안에서는 파우치며, 물티슈, 그냥 티슈, 안약, 지갑, 이어폰, 초콜렛, 볼펜, usb, 거울, 마스크, 충전기에 종이비누까지 있었다. 햄릿은 가방을 구경하면서 점점 눈이 커졌다. -"향수도 있네요? 이건 무슨 향이지?" "그냥... 싸구련데, 혹시나..." -"음... 달달하네요. 재밌다. 남의 가방 구경하는 거." "가방이 없네요, 그러고 보니?" -"차에 있어요." "아..." -"궁금해요?" 나는 햄릿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수줍게 끄덕였다. 솔직히 덕후로써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성덕의 길을 가고 있었지만, 햄릿이 공항에서나 일상에서 들고 다니는 그 백팩. 햄릿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가요. 구경시켜줄게요." 나는 햄릿을 따라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다 먹은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두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뒷모습을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며 뒤따랐다. 서른 걸음 걸었을 때였을까, 햄릿이 멈춰 섰다. 나도 함께 멈춰 섰다. 멀뚱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나를 뒤돌아보는 햄릿이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이상하다. 햄릿의 손을 보는 건 처음인데, 왜 처음이 아닌 것 같지...? 크고 따뜻한 손이었다. 나는 아주 잠깐 고민했다. 저 손을 잡아도 될까? 따뜻할까? 차가울까? 내 거칠한 손을 싫어하면 어쩌지? 손을 잡았다. 순간 오르가즘을 느끼듯 손끝부터 짜릿했다. 촉촉하고 큰 손이 나의 자그마한 손을 다 감싸주었다. 그렇게 차지도, 그렇게 따뜻하지도 않은 온도였다. 햄릿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주차장. 햄릿은 바지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 문을 열었다. 나를 차 앞에 세워두고 손을 놓았다. "잠깐만." 햄릿은 차 뒷좌석 문을 열어 자신의 큰 백팩을 꺼냈다. 나는 반가운 표정으로 그 가방을 보았다. 햄릿이 그 모습을 보고 시익 웃었다. -"처음인데." "네?" -"내 가방, 잘 안 보여주거든요. 만지는 걸 싫어해서."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햄릿의 모든 행동과 말이 팬과 연예인 그 거리에서 자신을 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햄릿은 가방을 꺼내곤 다시 차 문을 잠갔다. 씩씩하게 가방을 메고는 나의 앞에 섰다. "어디 갈 계획이었어요?" -"음... 그냥 걸을 생각이었는데. 근처에 동네사람들만 가는 일몰 장소가 있대서요." "같이 가도 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는 것을 멈췄다. 마치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또래의 남자애와 아주 잠깐 코스가 겹치는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왔다 갔다 하나의 차선씩만 있는 도로를 건너, 달동네 같은 작은 동네의 초입에 와서 돌계단을 하나씩 오르기 시작했다. "헉!... 헉!..." -"등산하는 것 같아..." 힘들어 하는 햄릿의 숨소리에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미안해요. 이렇게 힘든 곳인 줄은 몰랐는데..." -"괜찮아요. 재밌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의 중턱. 거짓말처럼 작은 광장 같은 곳이 나타났다. 겨울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나도 듣기만 하고 처음 온 곳이라 의외의 마을 풍경에 놀랐다. "우와!" -"이런 곳이 있어?" 둘 다 감탄사를 내뱉었다. 작은 항구와 바다와 노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아름다움은 아니었어도, 아기자기한 예쁨이 있는 일몰 장소였다. 둘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햄릿은 자신의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나는 난간에 다가가 수평선 따라 물든 노을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때문에 작은 광장엔 카메라 셔터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렸다. -"아, 좋다!" 햄릿은 꽤 만족스러웠다. 이런 것이 여행의 매력인가 싶었다. 여행이 약간은 좋아지려고 했다. 카메라엔 어느새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뒷모습도 함께 담겼다. -"예쁘네요." "그쵸?" 햄릿은 나의 옆으로 와서 함께 노을을 바라보았다. 해가 수평선 아래로 다 내려갈 때까지 둘은 한참을 찬바람을 맞으며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서서히 추워지자 퍼뜩 정신이 든 두 사람은 서둘러 어둠이 내린 광장을 내려갔다. "춥다." -"그러게요." 그런데 문제는 나의 야맹증이었다. 조명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동네에 계단을 내려가려니 앞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는 주춤했고, 햄릿은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내려가지 못해 머뭇하는 것도 모르고 혼자 씩씩하게 내려가던 햄릿은 휴대폰 조명에 겨우 조금씩 발을 내딛는 나의 모습이 자신에게서 멀어져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무서워요?" "아, 아니요. 제가... 어두울 때 잘 못 봐서. 시간이 좀 많이 걸려요. 먼저 내려가세요." 햄릿은 내려 간 계단을 다시 올라가 나에게 재빨리 다가왔다. -"자! 잡아요." "아니에요." -"근력운동에 유산소 하는 거죠. 자!" 햄릿은 손을 내밀었고, 나는 한 손은 햄릿의 손을 다른 한 손은 휴대폰을 들고 꾸역꾸역 계단을 내려갔다. 더 어둑해졌고, 이제 햄릿과 나는 함께할 이유가 없어졌다. -"재밌었어요." 햄릿은 나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나는 이제 이별해야 할 순간이라는 걸 깨달았고, 씩씩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쉽지만, 안녕... "꿈이어도 좋았어요." 나의 말에 햄릿이 웃었다. 안녕... -"저도요." "저는 저기 버스타야해서." -"아, 그렇구나. 잘 가요. 조심히." "네. 안전운전 하세요." -"넵!" 두 사람은 등을 돌렸고, 서로가 가야할 길을 향해 걸었다. 나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 이제야 벅차올라 심장을 진정시키려 연거푸 숨을 골랐다. 햄릿은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 걸음을 멈췄다. -"아, 가방!" 가방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는데, 그냥 헤어진 것이었다. 햄릿은 내가 사라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저쪽에 버스 정류장이라고 했는데...? 재빨리 자신의 차로 달려가 시동을 걸었다. 버스가 오기 전 나를 잡아야했다.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작은 광장에서 예쁜 노을을 보여준 보답을 하고 싶었다. 실은 나는 버스를 탈 계획이 없었다. 저녁 9시, 이 마을엔 다음 버스는 없었다. 그저 터덜터덜 걷다가 찜질방이나 숙소가 나오면 들어가려고 했다. 굳이 그런 것까지 알릴 필요는 없으니까. 햄릿은 차를 돌려 나가 기다린다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 붙여진 운행시간표를 보고는 어리둥절해했다. "버스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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