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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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도 나는..." 나도 바라던 바였다. 텔레파시라는 것이, 페로몬이라는 것이 눈엔 보이지 않아도 실제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가운을 스르륵 풀었고, 두껍고 뻑뻑하던 가운이 내 등을 타고 내려갔다. 나는 음흉한 미소로 호레이쇼의 어깨를 누르고 발끝을 들어 목덜미를 두 손으로 감쌌다. "다 벗고도 하이힐을 신어야 하나? 키스하기 되게 힘드네." 그리곤 호레이쇼에게 입을 맞췄다. 호레이쇼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허리 아프고, 발 아프게 뭣 하러. 이렇게 하면 되지." 나는 피식 웃었다. -"진짜 안 아파?" 호레이쇼는 그래도 염려가 되는 듯 물었다. 나는 호레이쇼의 목을 끌어안았다. "빨리 가기나 해. 나, 급해." -"변태." "인정." -"알지. 허리 부러지는 줄." "헐. 그 정도 밖에 안 되나?" -"네가 내 입장이 돼 봐야 해. 네 얼굴 보고 참을 수 있는 줄 알아?" "뭐래." 호레이쇼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침대에 눕히더니 속삭였다. "잘 자. 사랑해." 호레이쇼의 모든 것에 내 감각은 반응했다. 나 반응 왜 이리 빨라,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그런데, 그가 웃는다 "아!..." 이런 기분은 어제완 또 다르다. 아침이여서 그런가? -"우리 오늘 뭐해?" 호레이쇼가 물었다. "하... 이거..." 더 깊이 빠져들었을 땐, 거의 소주 한 병을 들입다 들이부은 느낌마저 들었다. 몽롱하고 흐릿하니 이대로 달리면 나는 또 블랙아웃 상태가 되었다. "나 못 걸어 다녀. 적당히." -"내가 업고 다닐게." "야." -"그래서, 하지 마?" "가능해?" -"응. 그만 해? 응?" "아니. 너 나 업고 다녀. 업어도 아플 것 같으니까, 안고 다녀." -"풋!" 내가 불난 네 몸에 기름을 끼얹은 걸까? 아마도...? 나의 야릇한 호레이쇼는 하루 종일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내가 호레이쇼를 놓지 않았다. *** 사람은 살면서 바보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한다. 누군가를 사랑해서하는 ‘포기’라는 선택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 따위에 가진 것을 포기하는 건 바보같아 보였다. 호레이쇼를 선택하기 전, 나는 이미 빤히 보이는 결말에도 최악을 선택한 것이었나. 옳지 못한 선택이었어도 나는 호레이쇼를 택했을 거였다. 우린 매일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그래서 지금 내 결말은 해피엔딩인가. 이제와서 말이지만, 나는 지금도 햄릿을 사랑한다. 위태롭고 위험했던 나는 햄릿에게 독이 묻은 칼날을 건넸다. 나를 없애버려야 끝날 사랑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는... 나는 너를 사랑해서 사랑을 포기했다. 그래서 지금 내 결말은 그렇게 결국, 슬프고도 우울하며, 쓰라리게 마침표를 찍는가. *** -오! 나의 햄릿!- "30분 기다리셔야 하는데.“ 떡볶이 가게의 주인이 문을 열자마자 한 말이었다. "30분이요?" 혼자 여행하는 건 처음이었다. 여름의 바다보다는 서늘한 겨울 바다의 찬 공기를 더 선호했기에, 큰 결심을 하고 향한 동해의 바다였다. 바다 근처 떡볶이 맛집이 있다고 하기에 우선 그곳을 먼저 가보자 싶었다. 급한 것도 없겠다, 그냥 앉아서 멍이나 때리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10분을 기다렸다. 그때, 시꺼먼 그림자와 함께 키 큰 남자의 기운이 내 왼쪽에 섰다. 나는 낡은 나무 창문을 통해 가게 안을 보며 어떤 메뉴가 있나 탐색하던 차였다. 고민을 하면 나는 항상 볼에 바람을 넣고 입술을 쭉 내미는 버릇이 있었다. 왼쪽의 큰 그림자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눈을 의심했다. 꿈뻑... 꿈뻑...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 헐. 내 볼에 가득했던 바람이 폭하고 빠져나왔다. 입 밖으로 비명이 나올 뻔 했지만, 참았다. 검은 모자 사이로 보이는 너의 눈, 코, 입. 그 사람이 분명했다. 나의 아티스트, 나의 아이돌! 햄릿. 우리 팬클럽에는 철칙이 있었다. 그들의 사생활에 선을 넘지 말 것. 혹여 여행 중에 마주치더라도 여행을 망치지 않기 위해 절대 아는 척 하지 말 것. 나는 그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선생님 말이라면 철칙처럼 믿는 순진한 유치원생처럼 말이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휙 돌려 창문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메뉴를 보자... 메뉴가... 떡볶이... 빨간 떡볶이는 맛있어, 맛있... 떡... 떡볶이를 먹으러 왔어...? 혼자? 가게 안 풍경은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귓가로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얘는 왜, 사람들 다 알아보게 이러고 돌아 댕겨? 대체 왜?!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입술도 앙 다물었다. 절대 아는 척 말자! *** -오! 나의 뮤즈!- 햄릿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미 첫 눈 마주침에서 그녀가 자신의 팬임을 알아봤다. 자신에게 고개를 휙 돌려 창문의 비침으로 보이는 표정은 꽤 볼만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입술을 앙 다물고 어찌해서든 시선을 피하려는 움직임. 햄릿은 누구도 보지 않는 틈을 타서는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그리곤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했다. "웨이팅인가? 물어봐야겠네." 그때였다. -"저, 저기... 있잖아요." 햄릿은 자신을 향하는 목소리에 멈칫 하고 보았다. 애써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그녀는 퍽 귀여웠다. -"제가 10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앞으로 20분은 더 기다려야 돼요." "아..." 그녀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햄릿은 걸음을 되돌리려다, 다시 그녀의 왼쪽 옆으로 되돌아왔다. 다시 스멀스멀 장난을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햄릿은 낯가림이 워낙 심해서, 낯선 사람에게는 말을 먼저 걸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녀에게는 계속 말을 걸어서 곤란해 하는 얼굴을 보고 싶어졌다. 팬이여서 그런가...? 햄릿은 괜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메뉴 뭐가 맛있어요?" -"저도 블로그에서 보고 온 거라... 근데 떡볶이랑 오징어 튀김 반 단호박 반으로 많이 사 간대요. 근데 양이 많아서... 혼자 먹으려면 좀 많을 거라고." "혼자 왔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혼잔데." 이후 뒤로 두 팀이 더 와서 기다렸다. 그 사람들은 주인에게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지를 묻고는 뒤를 이어서 기다렸다. 그녀는 혹여나 햄릿의 목소리를 듣고 뒤쪽 사람들이 알아차릴까 염려하는 듯 보였다. 이런 고군분투를 보고도 햄릿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에게 시선을 맞추듯 피하듯 하며 시선을 돌리는 그녀를 자세히 관찰하고 싶어졌다. "양이 많대요?" 그러자 그녀가 눈썹이 ㅅ자가 되게 인상을 쓰며 눈빛을 보냈다. 햄릿은 그 모습이 꽤 재미있었다. 일부러 모르는 척 갸웃하며 계속 안절부절하게 하고 싶었다. 그녀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고는 조용히 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왜요?" 그녀는 햄릿에게 속삭였다. -"안다고요. 목소리 들으면, 다 안다고." "아~" -"조용히." 햄릿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입을 열었는데, 이번에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내가 떡볶이하고, 그쪽이 튀김 사서 반 씩 나눠요. 양이 많아서 다들 나눠 먹는데?" 햄릿의 말에 그녀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녀는 도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10분이 다 되었는지, 안에서 주인이 나왔다. "두 분 안에서 기다리세요. 주문 도와드릴게요." 둘은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유리창이 내어진 긴 탁자에 나란히 앉아 기다리는 곳이었다. 그녀는 먼저 튀김을, 뒤이어 햄릿이 떡볶이를 주문했다. 그러곤 다시 자리로 돌아와 나란히 앉았다. 그녀가 더 안쪽으로 앉았는데, 햄릿은 많은 자리를 두고도 그녀의 곁으로 가 앉았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는 듯 곤란하다는 눈빛으로 햄릿을 보았지만, 햄릿은 오히려 더 의지한다는 듯 미소를 짓고는 옆에 앉았다. 세상이 좋아져서 이젠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생겼지만, 이런 우연한 만남임에도, 팬인줄 알고 있음에도 햄릿은 그 이상의 마음이 들었다. 궁금한 것이 많았다. 홀로 바닷가에 덩그러니 있는 떡볶이 집을 찾은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한 그녀에 대해서 말이다. "진짜 혼자 왔어요?" -"네. 쉿!..." "왜?" -"다 안다니까? 조용히 좀." 그녀는 멍하니 창밖의 바다에만 시선을 두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 모습에서 쓸쓸함이 느껴졌다. 햄릿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기다리며 휴대폰을 쳐다보는데, 그녀는 단 한 번도 휴대폰을 건들지 않았다. "휴대폰 없어요?" -"있어요." "지겨울 텐데." -"안 돼요." "응?" -"참는 중이에요." "휴대폰 없이 살기 그런 건가?" 햄릿은 계속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마침내 떡볶이와 튀김이 각각 나왔다. 먼저 튀김을 받아든 그녀는 떡볶이를 받는 햄릿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곤 떡볶이를 받아든 햄릿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누자면서요." 햄릿은 시익 웃으며 아까 앉았던 자리에 앉아 튀김과 떡볶이를 절반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튀김 몇 개를 햄릿에게 더 건넸다. 햄릿은 손을 내저었다. 팬들은 자신이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다들 착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야." -"제가 쪼끄매서 다 못 먹어요." 아무렇지 않은 듯한 얼굴을 하고는 진짜 튀김만 나누는 그녀를 본 햄릿은 왠지 괜찮은 여행 친구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게 드세요." 그 말을 남기고 도도하게 휙 돌아선 그녀는 재빨리 가게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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