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들러 붙기 전에

5000
진수와 주석은 이번 기회에 태준도 결혼을 시키기 위해 전방위로 압박했다. “제수씨 어디 있어 지금!” 태준은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며 생일파티를 하고 있을 대외본부 직원들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했다. “이 시간이면 클럽에 있겠네” 소아가 클럽에 있는 말에 진수는 태준을 놀리려고 가벼운 농담을 섞어 잔소리 했다. “어디서 무얼 하든 제수씨에 관련해서는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어. 그정도 잔소리를 들었으면 버벅거릴만한데도 막힘없이 대답을해” “목련꽃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고 예쁜 제수씨한테 이상한 날 파리나 불나방 들러 붙기 전에 얼른 가서 손잡아” 진수와 주석은 태준에게 클럽에서 남자들에게 둘려쌓일 제수씨를 구해내라며 태준을 술집 밖으로 끌고 냈다. 두 사람 손에 이끌려 술집을 나와 차 안에서 고민을 하던 태준은 술집에 대기하고 있던 대리기사를 불러 도인철부장이 문자로 보내준 클럽 주소를 알려주고 그리로 가자고 했다. ***** 저녁 식사를 마친 대외본부 직원들은 화끈한 송년회 밤과 소아 생일파티를 확실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피날레 장소로 클럽을 선택했다. 대외 본부 책임리더인 최태준부사장님까지 참석하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마무리가 되겠지만 회식자리든 송년회든 잠시 얼굴만 비추거나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문자를 보내기는 했지만 부사장님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춤을 추던 직원들은 휴식을 알리는 음악이 흐르자 하나 둘씩 룸으로 모여 들었다. 룸으로 돌아와 열을 식히던 직원들은 열한 시가 되자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생일노래를 다같이 떼 창으로 부르고 있을 때 룸 문이 열리면서 부사장님이 안으로 들어오자 생일 축가가 잠시 느리게 울려 퍼지다 이내 정상 속도로 노래를 부르며 마무리를 지었다. 생일축하 노래가 끝나고 샴페인과 작은 폭죽이 터지며 생일파티가 마무리 되었다. 노래가 끝나고 소아가 촛불을 끄는 동안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사장님이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도인철부장이 부사장님을 소아 옆에 앉혀주고는 잘 챙겨드리라고 말하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뒤늦게 도착한 부사장님에게서 약하게 풍기는 알코올 냄새를 맡은 소아는 안주도 없이 술을 먹은 듯한 그에게 예쁘게 컷팅 된 케이크 한 조각을 덜어 포크와 함께 건네 주었다. “달지 않으니까 드시기 괜찮을 거에요” “고마워요” 샴페인과 맥주, 케이크, 안주 등으로 에너지를 충천한 사람들은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나가서 놀고 있을 테니까 부사장님이랑 얘기하다 나와” 순서대로 문과 가까이 앉아 있던 직원들이 먼저 나가고 소아 옆에 있었던 김수진차장이 마지막으로 나가면서 소아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이고는 룸을 나섰다. 한 손에는 샴페인 잔을 한 손에는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손에 든 태준은 소아가 안주로 준 케이크대신 샴페인을 마시면서 룸 안을 천천히 둘러 보았다. “약속이 있으셨나 봐요?” “아. 동창 모임이 있어서..” “직원들이 다 나가서요 저도 나갈 테니까 천천히 드시면서 쉬고 계세요” 소아가 룸을 나가려고 하자 태준은 손에 들려 있던 것들을 테이블에 내려 놓고는 소파를 벗어나고 있던 소아 손목을 잡아 뒤로 가볍게 잡아 당겼다. “잠깐 앉아봐” 태준에게 손목이 잡혀 뒤로 끌려온 소아는 잠깐 앉아보라는 태준의 말에 얌전히 앉았다.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아주며 소파를 손으로 툭툭 치면서 가까이 오라고 태준이 고갯짓을 하자 소아는 앞으로 몸을 움직여 그의 말대로 가까이 갔다. 제게 가까이 다가오는 소아를 보니 친구들 말대로 꽃처럼 예쁘게 피어난 얼굴이 더욱 눈에 들어 왔다. 회사를 다닌 사 년 동안 많이 성숙해졌다는 것이 느껴질 만큼 저를 바라보는 눈빛은 바다를 품은 듯 깊고도 짙어 함부로 다가갈 수 없을 만큼 이지적이면서도 우수에 젖은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작은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이라도 꺾일 듯한 가녀리고 연약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물기를 가득 머금은 새하얀 목련 꽃처럼 어떤 남자라도 첫 눈에 빠져들 만큼 청초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발산하는 여인이 되어 있었다. 저와 나란히 앉아 있는 소아를 향해 몸을 완전히 돌린 태준은 소아 어깨를 잡아 저와 마주보도록 어깨를 살짝 돌렸다. 제가 어깨를 살짝 돌리자 소아가 몸을 돌려 자신과 마주보자 소아와 눈을 맞춘 태준은 하고 싶은 말을 천천히 시작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평일에는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가 않을 거야” “알아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같이 지내다 보면 세대차이도 느껴질 거고 그래서 많이 답답할 수도 있어” “부사장님은 모르겠지만 지금도 가끔씩 답답할 때도 있어요. 세대차이나 나이 차가 문제가 될 거 같았으면 오늘 부사장님한테 찾아가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제가 고민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이미 알고 있는 대답에 멋쩍은 듯 설핏 미소를 지은 태준은 소아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중간에 버리지 않고 끝까지 잘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 저를 중간에 버리지 않아 고맙다는 말에 환하게 웃은 소아는 테이블에 내려 둔 접시를 들어 포크로 한 입에 먹을 수 있을 만큼 케이크를 잘라 태준에게 내밀었다. “이거 드세요. 술 드시면서 아무것도 안주는 하나도 안 드신 거 같은데” 머리를 끄덕이고는 입을 벌려 포크에 있는 케이크를 입안에 넣은 태준은 소아 말대로 달지 않은 케이크를 부드럽게 씹은 후 삼켰다. 소아는 자신이 들고 있는 접시에 남아있는 케이크가 전부 사라질 동안 태준에게 직접 케이크를 먹여 주었고 태준은 소아가 주는 대로 다 받아 먹으며 그녀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점심식사 이후 최태준부사장이 처음으로 먹는 음식이 소아가 주는 케이크였다. ♣♣♣ 태준이 소아를 처음 본 건 소아가 열네 살 중학교 일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두 사람이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소아가 열일곱 고등학교 일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이천육 년 여름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 햇볕이 좋은 어느 날. 클로버가 후원하고 있던‘푸름보육원’ 아이들과 양평의 한 캠핑 장에서 일박 이일 여름캠프를 하는 날이었다. 직원들과 함께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 유독 자신의 눈길을 잡는 아이가 있어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보육원 원장님이 태준에게 아이 이름이 ‘소아’ 라고 알려 주셨다. “이웃 집 아주머니 신고로 계모하고 아빠가 아동 학대와 방임으로 감옥에 가게 되면서 얼마 전 이곳으로 오게 된 아이에요” "아이를 양육 할 친인척은 없었나요?” “이모하고 작은아버지가 있는데 이모는 엄마가 재혼을 해서 아이를 양육하길 거부했고, 작은아버지는 제 아빠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걸 소아가 알고 있었나 봐요 보육원으로 가고 싶다고 해서 이곳에 오게 됐어요” 원장님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태준은 소아에게서 시선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밝은 표정 속 언뜻언뜻 슬픈 그림자가 보이기는 했지만 다행이 사람들과 잘 섞여 이 순간을 즐겁게 보내고 있는 듯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소아가 제 옆에 있는 원장님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은 열네 살이 아니라 열 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무척이나 작고 왜소했지만 얼굴은 아픈 상처로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 직원들 주도로 처음 진행했던 여름 캠프는 무탈하게 마무리 되었고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다며 원장님은 손수 감사 편지를 써서 보내 주었다. 보육원 행사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일에 묻혀 살면서 태준은 원장님과 소아에 대해 나누었던 내용들은 모두 잊어버렸다. 삼 년 후 보육원에 방문해 그 아이를 다시 보기 전 까지는 ... ▷▷▷ 이천구 년 십이월 겨울. 태준이 행사에 참석하는 건 삼 년 전 여름 캠프 이후 삼 년만이었다. 이번 방문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행사를 위해서였다. 십이월 첫째 주 금요일에 하는 미리 크리스마스지만 작년 크리스마스 행사 후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행사가 되었다. 아이들과 회사 직원들 그리고 선생님들이 함께 삼삼오오 모여 크리스마스 트리와 예쁜 장식으로 보육원 내부를 꾸미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마당에는 직원들이 방문하기 전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열과 행을 맞추어 서 있었다. 실내 장식을 하던 직원 몇 명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눈 사람을 예쁘게 꾸며주기 위해 작은 전구와 장식들을 들고 마당으로 향했다. 미리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 중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독 어른스러운 모습의 아이가 태준의 눈길을 끌었다. 보육시설에 살고 있어 그런지 나이에 비해 일찍 철이 들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사무실로 돌아가던 길에 소아를 보고 있는 태준을 보게 된 원장님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소아 오랜만에 보시는 거죠?” “소아요! 저 아이가 예전에 그 아이인가요?” 원장님 이야기에 태준이 시선을 돌려 소아를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 보았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을 올리고 있던 소아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하자 태준고 인사를 했다. “많이 컸죠!” “외적으로 조금 자라기는 했지만, 외형보다는 느껴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네요” “내년이면 열여덟이 되기도 하지만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드는 편이에요. 그 중에서도 소아가 가장 어른스러운 어른 아이에요” “이 곳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하나 같이 얼굴이 평안해 보여요. 소아도 그렇고 다른 아이들도 하나 같이 표정이 너무 좋아 보여요” “이렇게 아이들한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셔서 그래요. 여기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과 꾸준한 관심이 무엇보다 좋은 영양제니까요” “저희가 도움이 되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원장님과 태준은 떠들썩한 로비를 지나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까지 가장 큰 도움을 주고 계세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소아는 조금 있으면 보육원을 나가 자립하게 되요”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들은 보육원에서 지낸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요” “열 여덟이 되면 보육원을 나가 독립을 해야 해요” “아직 미 취업 상태인 학생인데도 나가야 하는 건가요?” “네. 열 여덟이 넘으면 규정상 보육원에서는 생활 할 수가 없어요” “아빠나 엄마하고는 아직도 연락을 안 하나 봐요?” “엄마는 소아 때문에 전남편이랑 엮이기 싫은지 데리고 가기를 거부했고, 아빠는 교도소에서 출소하자 마자 보육원으로 찾아와서 난장을 피우는 바람에 소아가 다시 만나는 걸 거부했어요” 사무실 창문 밖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태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독립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후견을 해줄 수 있는 곳을 찾아 주는 건 어떤가요?” 원장님은 태준을 조용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저렇게 나이가 찬 청소년들은 경제적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곳이 필요해요. 여기서 나가게 되면 기본적인 생활비는 물론이고 월세 같은 것들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데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보조금만으로는 월세내기도 빠듯해요. 그러니 여기서는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대학을 가는 건 꿈 같은 일이에요” 원장님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 태준은 이날 제가 소아 후견인이 되겠다는 약속을 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말을 꺼낸 것은 아니었지만 올 때마다 제 눈길을 잡는 한없이 여리고 약한 아이를 그대로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태준이 후원을 결심한 이유는 어린 저를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순탄치 않은 집안이었지만 부모님은 유일한 자식인 그에게 언제나 사랑을 말씀하셨고, 하루 열 시간이 넘도록 일을 하시면서 태준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기에 그에게 어린 시절은 좋은 기억들뿐이었다. 저와 달리 제 눈에 비친 소아는 기댈 작은 돌멩이 조차 없이 벼랑 끝에 홀로 뿌리내리고 서 있는 작고 여린 꽃봉오리였다. 제 부모님의 사랑으로 자신이 성장했듯이 저의 작은 도움이 모진 바람을 막아주는 단단하게 버틴 돌멩이가 되어 작고 여린 꽃봉오리가 잘 성장해 들꽃으로 활짝 피기를 바랬다. 회사 법률 고문을 맡고 있는 박성일 변호사와 후견에 대해 의논 한 후 회사가 아닌 개인으로 소아가 성인이 되어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지원을 하겠다는 후견증서를 보육원에 보냈다. 태준은 후견을 결정하기 전에 변호사를 통해 소아 학교 성적까지 직접 확인을 했다. 원장님이 말한 대로 혼자 공부를 하고 있지만 성적이 꽤 좋았기에 제가 후견을 하기로 한 이상 보육원에 더 머무를 필요 없다는 판단에 저와 박성일 변호사가 살고 있는 지역구에서 가까운 고등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 태준은 테이블 위에 있는 샴페인 잔을 들어 한잔 마시고는 빈잔에 샴페인을 따라 소아에게 건네주었다. 태준에게 잔을 건네 받은 소아는 물을 마시듯 한 번에 쭈욱 들이켰다. “술도 약하면서.. 알코올 도수가 낮아도 그렇게 마시면 위험해” 태준은 빈 잔을 내려 놓는 소아를 보면서 말했다. “목이 말라서 그랬나 봐요” “물 한잔 줄까?” “아니요.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와인이나 샴페인이 단만이 강해서 마시기에 좋지만 알코올이 제법 있어서 그렇게 한번에 마시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기도 모르게 취해. 여기 말고 다른 데서도 술 마셨어?” “저녁 먹으면서 와인도 마셨어요” “섞어 마시지는 않아서 다행이네” 술을 많이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잔소리는 했지만 저를 보는 태준은 걱정스러운 눈빛은 아니었다. “저 나가서 놀 건데 부사장님은 춤 안 추시죠?” 소아는 케이크 한 조각을 접시에 덜어 태준에게 건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 드실 거면 이거랑 같이 드세요. 부사장님이랑 둘이 너무 오래 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저도 이제 나갈게요” 태준이 머리를 끄덕이자 소아는 룸을 나섰다. 문을 나서는 소아 뒷모습을 보고 있던 태준은 소파에 몸을 기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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