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얼굴도 무척이나 착하게 생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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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과 진수한테 잔소리를 들으면서 빈 속에 독한 술을 여러 잔 마셨기에 소파에 기대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태준은 연말을 즐기러 온 직원들이 불편하지 않게 룸을 드나드면 편히 놀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파티가 끝날 때까지 제 차에서 쉬고 있다 소아가 클럽을 나오면 집에 데려다 주려고 코트를 들고 룸을 나섰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이층 복도를 지나오던 태준은 난간 아래로 보이는 스테이지 홀에 많은 사람들 속에서 섞여 춤을 추고 있는 소아를 단번에 찾아내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녀를 눈에 담았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태준은 소아가 금방 찾아 낼 수 있는 네이게이션이 장착된 눈을 가지고 있는 듯해 한번도 그녀를 놓친 적이 없었다. 수많은 여자들이 지나다니는 통로에서 여자들이 유혹하는 눈빛과 은밀한 터치조차 신경 쓰지 않고 소아에게 시선을 꽂고 있던 태준은 황급히 룸으로 다시 돌아가 소아 가방과 코트를 챙겨 빠르게 복도를 지나쳐 계단을 달리듯 내려가 홀에서 춤을 추고 있는 소아에게로 향했다. 이층에서 소아를 지켜보는 내내 주석과 진수가 말하던 대로 날파리와 불나방이라 일컷는 어린 남자들이 그녀 주위로 계속해서 모여 들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아담한 체구를 가진 소아가 어느순간 눈에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자 서둘러 움직이고 있었다. 제 시야에서 소아가 사라지자 태준은 빠른 걸음과 빨라진 심장박동을 느끼며 서둘러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는 소아를 찾아 제 품에 안았다. 대형 스피커가 쿵쿵 울릴 만큼 큰 음악소리와 빠른 비트에 몸을 맡긴 채 춤을 추던 소아는 어디선가 나타나 예고도 없이 제 몸을 감싸는 손길에 놀라 순간 적으로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꽉잡고 힘을 주어 상체를 돌리면서 팔꿈치로 저를 잡은 사람을 가격했다. 생각지도 못한 풀 스윙에 놀란 태준은 순간 소아를 안고 있는 팔에서 손을 떼었다. 잡고 있던 손을 놓자 회전하는 힘에 튕기듯 날아가는 소아가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도록 태준은 재빠르게 손을 뻗어 그녀를 다시 잡아 재차 놀라지 않도록 제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추었다. “나야. 놀라게 해서 미안해” “아! 너무 놀랐어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집에 가려고” “대리기사는 부른 거죠? 조심히 들어가세요” “응, 근데 너도 그만 놀고 나랑 집에 가” 제게 인사하는 소아에게 태준은 자신과 함께 집에 가자는 말을 하고는 그녀를 품은 채 북적 이는 사람들 틈에서 빠져 나왔다. 클럽 입구에서 코트를 입혀 주고 허리 끈까지 꼼꼼하게 묶어 주는 태준을 소아는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코트를 다 입힌 태준은 저를 바라보는 소아와 잠시 눈을 맞추더니 그녀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가 제 승용차 뒷좌석에 함께 올랐다. “궁금한 게 있어요?” “물어 봐” “오늘 안 올 수도 있었어요?” “그렇지는 않았을 거야” 질문을 받는 동안 태준은 안전벨트를 끌어 소아에게 매주고는 대리기사를 불렀다. “클럽에서 맞은 데 괜찮아요? 엄청 세게 부딪힌 거 같았는데” “놀라서 놓친 거지 아파서 놓친 건 아니야. 그런 건 언제 배웠어?” “혹시 몰라서 학교 동아리에서 배웠어요" “운동에도 소질이 있네. 연말이라 대리기사 오려면 조금 있어야 하니까 편하게 자” “안전벨트 풀면 안 되요? 아직 출발 안 하니까” 태준이 소아 안전벨트를 풀어 주고는 그녀 얼굴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만져 보았다. 차 안이 따뜻해져서 인지 술 기운이 올라서인지 얼굴로 전해지는 체온이 조금 뜨겁게 느껴졌다. 안전 벨트가 풀린 소아는 태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 이천십 년 삼월. 서울로 올라와 처음 학교에 가는 날 박성일 변호사가 소아를 데리고 학교에 갔다. 학기가 시작하는 날이기에 학부모는 가지 않지만 태준이 특별히 부탁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이학년으로 서울 일반고로 전학했지만 고등학교 일학년 성적이 좋았기에 새로운 수업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크지 않았고 전학한 그 해 일년 동안 무탈하고 평안한 시간을 보냈다. 이천십일 년 사월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어 대학 진학을 위한 학부모 상담에는 소아를 만나본 적도 없는 태준이 직접 학교를 방문했다. 박 변호사를 통해 학교 생활과 성적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태준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성적과 학교 생활에 대한 얘기도 직접 듣고, 지원 가능한 학교와 선생님이 추천하는 학과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담임선생님은 이날 소아를 야간 자율학습에서 제외 시켜 주었고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태준은 소아가 교문을 나오자 근처 카페로 향했다. 태준은 교복 입은 소아를, 소아는 저를 후원하는 태준을 처음으로 대면하는 날이었다. “이제 고 삼이니 제일 힘든 시기가 남았네요” “안 힘들다고 하면 제수 없는 거겠죠?” 태준은 옆 사람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소아를 보며 웃었다. “같은 고 삼 친구들한테는 그렇겠지만 나한테는 괜찮아요” “다른 친구들처럼 성적으로 압박하는 부모님이 안 계셔서 그런지 마음이 편해서 힘들지는 않아요” “혼자 외롭지는 않아요?” “저한테는 허락되지 않았을 시간인데 덕분에 덤으로 얻은 시간들이라 공부만 하기에도 빠듯해서 그런 생각할 틈이 없어요. 무엇보다 변호사님 사모님이 일주일에 두세 번 찾아오셔서 집안 정리도 도와주시고 반찬도 챙겨 주셔서 괜찮아요” 보육원에서 봤을 때 보다 조금 더 안정돼 보이는 소아 얼굴을 보며 태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박 변호사 부인은 소아보다 서너 살 위인 아들이 둘 이나 있어서 그런지 엄마이면서 여자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소아에게 마음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찾아 왔었다고 변호사님한테 이야기를 들었는데 요즘은 괜찮아요?” “네, 서울로 오면서 접근금지 신청도 해주시고 제가 어디 있는지 아직 못 찾았나 봐요” “다행이네요, 혹시라도 또 그런 일 있으면 연락해요” “네” 앳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 소아를 바라보면서 태준이 물었다. “커피를 자주 마시는 건 아니죠?” 소아는 입에 물고 있던 빨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답했다. “공부할 때 졸리면 한잔씩 마시기는 해요. 시험 기간에 잠을 자면 안되니까...”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건 알지만 몸에 안 좋은 거 먹으면서 하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태준의 말에 소아는 빨대를 입에 문채 머리를 끄덕였다. “커피도 하루 한잔만 마시는 걸로 해요” “노력해 볼게요” 소아는 태준을 바라보고 싱긋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야간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집에 가면 늘 혼자였기에 웃을 일이 많지 않았는데 오늘은 착한 마음만큼이나 얼굴도 무척이나 착하게 생긴 태준을 보고 있으니 십대 소녀인 그녀는 어느 때보다 정말 많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학원은 다닐 만 해요?” “네, 학원은 사모님께서 직접 알아봐 주셨어요. 등록금이랑 생활비만으로도 다른 친구들에 비해 엄청 많이 도움 받고 있는데 학원까지 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이에요. 나는 열심히 하는 안소아 학생에게 아주 조금 도움을 주고 있을 뿐이에요. 지금도 앞으로도 자신을 구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거 잊지 말아요” 빨대로 커피를 마시던 소아는 머리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차를 마시면서 작게 머리를 끄덕이고는 손목에 있는 시계를 확인한 태준은 소아에게 제 명함을 건넸다. “회사 들어가 봐야 해서 오늘은 그만 가야 될 거 같아요. 연락할 일이 있으면 명함에 있는 핸드폰으로 연락해요” “변호사님 연락처 있어요” “알아요. 혹시 나한테 연락할 일이 생길 수 있을 테니까 가지고 있어요” “네” “핸드폰 가지고 있죠? 여기에 번호 저장해 줄래요?” 태준은 제 핸드폰을 소아에게 건네 주었고 소아는 제 연락처를 저장해 그에게 다시 건네 주었다. “바쁘신데 되도록이면 연락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게요” “바쁘긴 하지만 어른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요” 태준과 소아의 첫 만남은 그렇게 커피 한잔 마시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 태준이 소아 학교를 다녀간 이후 몇 일 동안 그녀는 친구들에게 삼촌에 대한 질문을 받느라 피곤한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 얼굴이 세상 누구보다 착하게 생긴 태준에 대해 친구들은 무척이나 궁금한 게 많았지만 자신이 알고 내용은 박변호사님을 통해 들은 게 전부였던 소아는 친구들 질문에 말을 아낄 수 밖에 없었다. 고 삼 학생들에게 중요한 유월 모의고사를 이틀 앞두고 주말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소아는 저녁을 먹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중요한 시험인 만큼 새벽 한 시가 가까워 오는데도 책상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혼자 조용히 공부를 하고 있던 소아 귀에 현관 도어 락 비밀번호를 누군가 계속해서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박변호사님이나 사모님이 저를 찾아오게 되면 미리 연락을 할뿐더러 비밀번호도 알고 있기 때문에 오류로 들어오지 못하는 일은 생길 수가 없었다. 이리 늦은 새벽에 자신을 찾아 올 사람은 없었기에 소아는 순간 모든 동작을 멈추고 현관을 노려 보듯 바라보았다. 밖에 있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거나 제가 만나길 원치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온몸에 신경이 곤두섰다. 발뒤꿈치를 들고 현관 문으로 다가간 소아는 문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을 하려고 했지만 어디 숨어 있는지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현관 앞에서 잠시 고민하던 소아는 거실로 돌아와 인터폰으로 복도를 확인했다. 이년 동안 잠잠했던 아빠가 저를 찾아 와 도어락 숫자를 연신 누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끄럽게 문을 두드리거나 고함을 치면 건물에 사는 누군가 신고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아빠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숫자를 조합해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소아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뒤꿈치를 들고 핸드폰이 있는 책상으로 조용히 달려가 박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육원 소동 이후 찾아오지 않았던 아빠 얼굴을 본 순간 소아 머리 속에는 문을 열고 저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기에 전화를 하는 손은 떨리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소아 양 이 시간에 무슨 일 이에요?” 잠자리에 누웠던 박성일 변호사는 늦은 시간에 울리는 핸드폰 화면에 소아 이름이 보이자 그녀에게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가 왔어요. 집안에 들어오려고 현관 비밀 번호를 계속 누르고 계세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떨림에 박변호사는 소아를 먼저 안정시켰다. “경찰에 연락할 테니까 내가 도착할 때까지 방안에 조용히 있어요” “네” “오 분이면 경찰 도착할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감사합니다” 를 걸었다. 새벽 한시가 가까워진 시간이라 침대에 몸을 눕히던 태준도 진동 소리에 핸드폰을 들었다. “늦은 시간에 변호사님이 어쩐 일이세요” “안진우 씨가 나타났네요” “지금요?” “방금 연락 와서 순찰차 바로 보내달라고 연락해 놨어요. 나는 지금 출발해요" “저도 바로 출발 할게요” 소아 아빠와 계모가 시도 때도 없이 아이를 때리는 소리에 진절머리를 치던 주인 집 아주머니는 그냥 지나치기 힘들 정도로 울리는 아이 울음소리에 경찰에 신고를 했고 그날 두 사람은 바로 구속이 되었다. 그날 소아는 어깨가 탈골 되고 다리가 찢어졌고 무자비하한 폭행으로 어디 한군데도 성한 곳이 없었지만 아빠와 계모는 지은 죄에 비해 길지 않은 각각 삼 년 육 개월과 육 개월이라는 짧은 형량을 받았다. 소아와 통화를 마친 변호사는 곧바로 관할 파출소에 전화를 해 순찰차를 바로 보내달라고 요청 한 후 태준에게도 전화 만기 출소 한 아빠는 그녀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금방 알아낼 수 있었고 바로 보육원을 찾아가 제 딸을 데려가겠다며 소란을 피우다 원장님 신고로 쫓겨 났었다. 그 후 고등학교 앞에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강제로 끌고 가려다 학교 보안관에게 붙잡혀 경찰에 인계 되기도 했다. 서울로 전학을 하면서 박성일 변호사가 접근금지 신청을 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어디서 주소를 확인했는지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태준과 변호사가 소아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경찰은 먼저 도착해 소아 아빠를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경찰차에 태워지는 그를 지켜 보았다. “연락 드렸던 박성일 변호사 입니다. 집안에 있던 학생은 어디에 있습니까?” “변호사님 도착할 때까지 그대로 있겠다고 해서 집안에 있습니다” 변호사와 태준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소아가 살고 있는 집으로 올라가니 현관 앞에는 여성순경이 대기하고 있었다. 태준이 비밀번호를 풀고 집안으로 들어가니 거실 책상에는 공부하던 책들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고 소아는 보이지 않았다. 변호사는 태준에게 방안에 들어가보라고 하고는 자신은 거실을 둘러본 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경찰에게 향했다. 태준은 닫혀있는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며 그녀를 불렀다. “안에 있으면 문 좀 열어볼래요?” 후원을 하기로 했을 때 태준도 가진 것이 없었기에 소아가 지금 살고 있는 작은 원룸을 계약할 때 대출을 받았었다. 평안하고 무탈하게 혼자서도 행복한 생활을 하길 바라며 마련해 준 집을 방문하는 이유가 오늘처럼 좋지 않은 날이 아니길 바랐기에 작은 문틈으로 보여지는 소아 얼굴을 보는 순간 태준의 마음은 무겁고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학교에서 만난 날 보였던 밝고 생기 있던 십대 소녀 모습은 사라지고 불안하고 침울해진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소아를 보자 태준은 두 사람 사이를 막고 있는 방문을 천천히 밀어내고 그녀를 품 안으로 천천히 끌어 안아 한 손바닥으로 가려질 만큼 작은 등을 부드럽게 두드려 주었다. 다시 만나게 된 어둡고 불안한 과거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방에서 혼자 애쓰고 있던 소아는 아무 말없이 자신을 안아주는 부드러운 손길에 안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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