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부(55)-3

2014 Words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나머진 내일 드시기로 해요. 오늘은 충분히 배 채우셨잖아요. 내일은 무조건 토끼탕이니까 어서 빨리 잠자리에 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내 말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었고 주진태가 덧붙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다시피 이젠 타로도 굽는 게 아니라 충분히 삶을 수 있고 조개들도 구워 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국물을 내서 먹을 수 있게 됐어. 양도 불릴 수 있고. 그러니 앞으로 식량 확보를 지우에게만 의존하지 말고 우리도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그 말에 이동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최대한 빨리 캠프 건설을 마치죠. 아직 소금은 충분하니까 염전은 미뤄두고 캠프 건설에 협조하겠습니다.” “그래 주면 좋지. 그럼 잘하면 내일 오후 안에는 완료할 수 있을지도 몰라.” “목책까지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박영철이 옆에서 거들었다. 단 하나의 반합으로 만든 따뜻한 국물 덕분에 사람들의 에너지를 가득 채워준 것 같았다. 꽤 정력적으로 움직이는 아저씨, 아니 형들이었다. “오늘 불침번 순서가 어떻게 돼?” 주진태가 묻자 박영철이 대답했다. “동걸이 형, 저, 그리고 지연이 이렇게 세 명이면 될 것 같습니다.” “지연이 오늘 꽤 힘들었을 텐데. 그러지 말고 지연이 빼고… 두리나 미현이를 넣자.” “그럼 미현이로 하죠. 두리도 오늘 꽤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 일단 오늘은 그렇게 세 명이서 해보고 힘들면 한 명 더 추가하도록 하자.” 계속 이어지는 주진태와 이동걸, 그리고 박영철의 대화를 듣던 사람들은 다들 포만감과 함께 찾아온 졸음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모닥불에서 떠나갔고 대화를 마친 주진태는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지우야, 일단 네 움막 먼저 대충이나마 지어놨어.” “아니, 그러실 것 없는데…….” “아냐. 다들 같은 의견이었어. 너는 여기서 최대한 조금이라도 푹 쉬어야 하는 입장이니깐.” “감사합니다.” “당연한 거니까 그럴 거 없어. 연못 왼쪽으로 도니까 꽤 땅이 단단한 잡초지가 있던데?” “아, 거기요? 네.” “응. 거기에다 지어뒀으니까 가서 봐봐. 조금 모닥불에서 떨어진 게 걸리기는 하는데 차라리 조용히 쉬기엔 적당해 보이더라. 그리고 완성한 건 아니고 급한 대로 대충 세운 거니까 너무 타박은 하지 마라.” “타박은요, 무슨. 감사합니다.” “그래. 어서 들어가 쉬어라. 이거 내일 아침까지 얼마 못 쉬겠는데?” “형도 어서 쉬세요.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 뭘. 너도 오늘 고생했다. 쉬어라.” “네.” 주진태는 내게 손을 흔들며 등을 돌려 사라졌고 묘한 미소가 주진태의 입가에 걸려있는 건 미처 보지 못했다. “꽤 떨어져 있는데?” 막상 움막에 도착해서 캠프를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거의 연못의 끝과 끝인 것 같다. 처음 머물 때는 이렇게까지 떨어져 있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막상 모닥불의 크기가 꽤 작아진 게 보이니 내 기억이 조금은 미화되었나 싶었다. “대충은 무슨, 엄청 신경 쓰셨네.” 주변 잡초지의 잡초들을 모조리 베어놓은 데다 모닥불을 피울 만한 구덩이까지 파놓았다. 워낙 단단한 곳이라 이렇게 파기도 꽤 손이 많이 갔을 텐데 싶다. 심지어 움막은 거의 오두막 수준이었다. 거의 보급품 컨테이너 크기의 반 정도 되는 넓이의 오두막이었는데 내가 혼자서 지었던 움막보다 훨씬 컸다. 거기다 일일이 벽면을 나무들로 묶어서 세우고 나뭇잎들을 사이사이 끼워두고 외부까지 덧대놓은 게 상당히 오래 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입구까지 여닫을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감사합니다.”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내가 움막을 지어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이렇게 손이 많이 갈 게 뻔한 오두막을 보고도 감동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오두막 안까지 나뭇잎들을 채워둔 모습이 보인다.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한쪽에 내려둔 후 차분하게 움막 안에 몸을 뉘었다. 목침으로 쓰라고 둔 것 같은 나무토막을 뒤통수에 대고서 가만히 누워있다 보니 나무 기둥 사이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게 꽤 기분이 좋아 절로 눈꺼풀이 감긴다. ‘음……?’ 순간 내 숨결과 다른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려 잠에서 깨어난 나는 순간 긴장감이 들었다. 내 캠프라는 이유 때문인지 불침번이 있다는 이유 때문인지 너무 긴장감을 과하게 풀어버린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을 뜨려다 겨우 참아낸 후 천천히 귀에 감각을 집중하니 나완 다른 누군가가 내 옆에 앉아서 숨 쉬고 있었다. ‘누구지? 누난가?’ 하지만 김지연이었다면 내 곁에 곧장 누워버렸을 게 뻔하니 김지연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상황을 파악하는 도중 콩콩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그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움막 입구로 발걸음을 옮기다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안 돼, 이건 아니야. 미쳤어, 진짜.” ‘미현이?’ 누군지 알게 된 내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을 뜨려던 순간 라미현이 발길을 옮겨 다시 내 곁에 살포시 앉는다. ‘이런, 타이밍을…….’ 괜히 눈을 뜰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이대로 잠든 척해야 했다. 그리고 라미현의 이어진 행동에 나도 깜짝 놀랐다. “후우, 후우. 그, 그래. 그냥 잠만 자는 거야, 두리 언니처럼.” 그렇게 재차 다짐하던 라미현이 천천히 내 팔 위에 머리를 대면서 몸을 눕혔다. 한두리나 김지연이었다면 모를까, 라미현이 이런 대담한 짓을 하자 나도 왠지 심장이 두근거린다. 전혀 이럴 것 같지 않던 라미현의 행동이 내겐 꽤 자극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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