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성적인 느낌이라든가 관계가 이미 완료된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그 순진하고 순수한 라미현이 먼저 한지우의 움막 안에 들어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던 한두리였다. 아무리 여자들 속은 여자도 모른다지만 한두리는 라미현을 정확히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이러실 거예요?”
작게 혀를 찬 주진태가 오리발을 내밀기에는 너무 늦었다 싶어 한두리에게 입을 열었다.
“왜 그래? 페어플레이해야지.”
“미현이한테 굳이 저렇게까지 하라고 조언하시는 게 페어플레이예요?”
“당연하지. 애가 연애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데. 쟤 소속사는 대체 어떻게 교육을 한 건지. 아무튼 너하고 지연 씨나 저기, 그저 지우 얼굴만 보면 해롱대기 바쁜 배유빈 씨와는 다르지.”
“절 도와주시면 안 돼요?”
“알아서 잘하더만. 야, 어제 물속 다 봤어.”
“…….”
“나는 사실 누구 편도 아니야. 따지고 보면 같은 남자인 지우 편이지. 난 그냥 지우가 맘에 들면 그걸로 그만이야. 난 지우의 선택지만 늘려주고 싶을 뿐이고.”
이미 주진태가 한지우에게 갖는 신뢰도가 90 후반에 다다르고 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한두리는 주진태의 말에 작게 상처받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섭섭해요. 저, 선배님께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섭섭은 무슨, 이게 생존하고 관련된 일이냐? 그냥 애정 문제잖아. 그리고 남녀 관계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저렇게 됐다고 해서 지우하고 미현이하고 사귀기라도 한대? 물어는 봤어? 그리고 사귀면? 그대로 포기할래? 아니잖아. 딱 보니까 그런 가벼운 감정은 이미 넘어선 것 같은데. 아니냐?”
“…….”
한두리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짚는 주진태의 말에 시선을 피하며 아랫입술을 작게 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진태가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이렇게 남자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경우가 처음이라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인데… 널 쫓아다녔던 남자들도 똑같은 기분이었을걸? 괜히 먼저 좋아하면 손해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야.”
그러다 캠프 한쪽에서 하품을 하며 배를 긁적이는 김지연을 턱짓으로 가리키는 주진태였다.
김지연은 한지우를 부르며 달려가더니 라미현과 사이에 파고들어 어깨동무를 한 채 가슴으로 끌어당기다 연못으로 풍덩 빠진다. 다른 사람들이 물에 빠져서 흠뻑 젖어있는 세 사람을 보면서 김지연에게 작게 환호를 한다. 그리고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물을 튀기며 물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라이벌은 라미현이 아닐 텐데?”
“알고 있어요.”
한두리도 알고는 있었다. 한지우와 김지연 사이에 무언가 일이 분명히 있었다. 그것도 꽤 스킨십이 자연스러워질 정도의. 주진태도 그 점을 꼬집는 것 같았다. 이미 후발 주자라는 사실을.
잠시 시무룩해하는 한두리를 바라보다 주진태가 중얼거렸다.
“조언을 해주자면 너만이 지우에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채워줘. 저렇게 이성이 주변에 많은 남자는 옆에서 애교나 피우는 것보다 그런 점이 더 인상에 남을 확률이 높아.”
“네…….”
“그리고 명심해라. 기회는 앞으로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 혹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네 연예인이라는 위치가 한지우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주진태의 말에 한두리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예단하긴 어렵지만… 아무튼 그렇게 여유 가질 시간 없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아무튼 너도 잘되길 바라마. 쉽지 않을 거야.”
주진태가 세수를 마친 후 얼굴을 쓸어내리며 물기를 바닥에 흩뿌린다. 그리고 손을 털며 한두리의 어깨를 툭툭 친 후 한창 물놀이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두리는 여전히 물장구를 치며 해맑은 웃음을 흘리고 있는 한지우를 보며 천천히 턱을 앙다물었다.
김지연 때문에 시작된 전쟁(?)은 주진태의 참전으로 구경만 하던 캠프 사람들이 하나둘 뛰어들며 커져갔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고개를 내밀었을 무렵 한두리의 외침으로 종료가 되었다.
“식사하세요!”
다들 노느라 정신이 없다가 한두리의 외침에 슬슬 배가 고파졌는지 물 밖으로 나오며 웃음을 흘린다. 꽤 많은 물세례를 받은 라미현이 휘청이자 뒤에서 받쳐준 후 라미현을 챙겨서 물가로 들어 올려주었다. 사람들의 뒤를 따라 나오는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있었다.
“혼자 다 한 거예요?”
“그냥 고기 넣고 소금만 넣고 끓인 건데요, 뭐.”
온몸에서 물기를 흘리며 나오자 조금은 찬 바람에 사람들이 모닥불에 옹기종기 모여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댔다. 노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침을 혼자서 준비하게 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 죽인다.”
어느새 보글보글 끓고 있던 반합에서 국물을 떠 입으로 가져간 김지연이 중얼거렸다. 나 역시도 라미현에게서 건네받은 그릇으로 국물을 조심스레 떠 입 안으로 가져가자 속이 풀리는 느낌에 절로 한숨을 쉬었다.
“그럼 오늘은 바로 남쪽으로 내려가려고?”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따스한 느낌을 즐기다 옆에서 주진태가 물었다.
“일단 오전 사냥 성과를 보고 나서요. 넉넉하다 싶으면 오후에는 멀리 내려가 볼 생각이에요.”
“너무 무리는 하지 마라. 사실 요즘 너무 풍족해서 살찌게 생겼어.”
너스레를 떠는 주진태의 제스처에 쓴웃음이 흘렀다.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주진태의 이야기에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국물을 입 안으로 떠 넣기 바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인데 다들 너무 고생하다 보니 겨우 이런 국물 하나만으로도 행복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