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부(68)-4

2007 Words
쓰게 웃고 있는 나를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카밀라는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헤실헤실 웃으며 얼굴을 닦아주는 내 손길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 고양이 같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일로 카밀라에게 부채 의식이 조금 생겨버렸다. 카밀라의 얼굴을 정돈해 준 뒤 품에 안자 카밀라가 쏙 파고들면서 내 가슴을 만지작거린다. 단단한 느낌이 신기한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내 옆구리에 기댄 채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박현지를 바라보며 카밀라와 똑같이 빗물을 받아 얼굴을 정돈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충이라도 실금한 부위에 물을 흘려 냄새만이라도 가시게 해두었다. ‘아무래도 유혹안을 어떻게 해야겠어.’ 처음엔 색욕의 눈과 유혹안의 시너지가 기대됐지만 막상 현실은 달랐다. 김지연처럼 정신력이 C등급만 되더라도 유혹안은 충분히 저항할 수 있었기에 스탯이 좋은 여성들에겐 없는 스킬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정신력이 낮고 스탯도 그다지 높지 않은 여성들에게는 오히려 너무나 과하게 시너지가 발생했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박현지는 내게 안길 여지가 보이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탕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마 정신이 든 후 박현지는 스스로를 이해 못 하면서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박현지를 안지 않은 건 그녀가 유부녀인 점도 걸렸지만 굳이 베타테스터까지 등록시킬 정도로 뛰어난 스탯과 스킬, 잠재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한 시기였지만 그렇다고 되는대로 아무나 등록시켜 인원수만 부풀릴 생각은 없었다. 귀국 이후엔 소울까지 투자해 가며 키워나가야 할 동료들인데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성장 기대치가 높은 사람들을 먼저 등록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길 때쯤 김지연이 이곳으로 돌아오는 발소리가 빗소리 너머로 들려왔다. “왔어요?” “응. 하나는 완전 새까맣게 타버렸던데?” “그래요? 역시 그쪽으로 벼락이 떨어졌나 보네요.” “응. 아무래도 충전 용도로는 못 쓸 것 같더라. 배터리나 반사각 잡는 모터가 죄다 타버렸을걸? 그래도 피뢰침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굳이 뽑지는 않았어.” 지붕 안으로 들어오는 김지연의 온몸이 젖어있었다. 내 품에 안겨 꾸벅꾸벅 졸고 있는 카밀라와 잠을 자는 듯 쌕쌕 숨을 쉬는 박현지를 바라보며 김지연이 입을 열었다. “뭐야, 언니 벌써 자?” “많이 피곤했나 봐요.” “어? 언니 얼굴이 붉은데 열나는 거 아냐?” 여전히 얼굴이 불그스름해진 채 숨을 내쉬는 박현지의 모습은 영락없이 감기 몸살에 괴로워하는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아무래도 비도 맞았으니… 내일 컨디션 지켜보죠.” “걱정되는데…….” 박현지의 얼굴을 쓸면서 열을 재던 김지연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해열제도 있고 하니까… 일어나서 나아지길 바라야죠.” “날씨가 이래서야… 뭐, 별수 없겠지. 걱정한다고 언니가 낫는 것도 아니고. 으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여전히 김지연의 얼굴엔 걱정스러움이 가득했다. 박현지와 카밀라를 보며 여기저기 둘러보던 김지연이 카밀라의 반대편으로 무릎걸음으로 이동해서 내 허벅지를 베개 삼아 드러누웠다. “누나, 그러다 감기 걸려요.” “추우면 일어날게. 나 머리 쓸어주라. 언니처럼 아프기 전에.” “참 나.”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김지연의 젖은 머리를 천천히 쓸어내리며 물기를 흘려냈다. 내 손길과 체온이 기분 좋다는 듯 눈을 감은 채 즐기던 김지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킁킁거리기 시작한다. “응? 어디서 지린내 나지 않아?” “비가 와서 그런 모양이죠. 땅에서 올라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가? 여기 고양이들도 있나? 무슨 고양이 오줌 냄새 비슷한데…….” “전 잘 모르겠네요.” “흠, 네가 더 감각이 예민하니까 네 말이 맞겠지. 이상하네. 뭐, 됐어.” 김지연의 물음에 애써 둘러댄 나는 김지연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더욱 신경 쓰기 시작했다. 이내 눈을 감고 손길을 즐기다 고른 숨소리를 내뱉는 김지연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지우야.” “으음…….” 아무래도 김지연의 머리를 쓸어주다가 까무룩 잠든 모양이다. 귓가에 속삭이는 김지연의 목소리에 인상을 쓰며 눈을 뜨려 하자 내 미간을 문지르는 손길이 느껴진다. “그렇게 일어날 때마다 인상 쓰면 나중에 주름 생긴다, 너.” “일어나셨어요?” 그 말을 들으며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두 다리가 무거워 실눈을 떠보니 카밀라와 박현지가 내 허벅지를 베고서 잠에 빠져있었다. 잠든 두 사람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레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했다. 찌뿌둥하기는커녕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지쳤던 모양인지 조금은 머리가 쑤신다. “비 그쳤네요.” “응. 나도 정신 차려보니 갰더라.” 시야에 잡힌 숲에는 잎사귀마다 빗물이 맺혀있었고 아침 햇살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언제 그렇게 폭우가 쏟아졌냐는 듯 평온해 보이는 광경에 기가 막혔다. 김지연 역시 내 마음을 알겠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게 여기 매력이잖아.” “그건 그런데 오늘 새벽엔 정떨어질 뻔했어요.” 그때 우리가 속닥이는 소리에 카밀라가 꾸물거리며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몸을 일으킨 카밀라는 눈을 비비며 입을 연다. “언니, 나 쉬.” 순간 내 시선이 박현지에게 향했지만 어제의 일 때문에 깊은 잠에 빠졌는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고른 숨을 뱉고 있었다. 박현지가 카밀라를 거의 매일 관리해 주었기에 난 순간 당황했지만 김지연은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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