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화 - 바닥으로 떨어진 앞치마.

3856 Words
오늘도 귀문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다가 보는 줄리아와 앤버든의 눈 밑 다크써클은 지금 지구 한 바퀴를 돌 지경이었다. 하다는 미안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며 물었다. “두 분다 괜찮으세요? 괜히 저 때문에 더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괜찮아. 하다야… 내가 이 살인귀 가만 안 둔다…” 줄리아는 독이 바짝 올라와 있었다. 운명부에 묶여 있는 주제에 이렇게 늦는다고 가만 안 둔다는 등의 욕을 해댔다. 어느덧 귀문시간이 되어 손님들이 가게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서오세요.” 하다는 늘 그랬던 것처럼 손님들을 반겼고 줄리아는 주방으로 들어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극락주점에는 혼들의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저 앤버든씨?” 하다는 음식이 나오기 전 앤버든을 조용히 불러 세웠다. “무슨 일입니까. 살인귀라도 나타났습니까?” 앤버든은 혹시나 살인귀가 나타났는지 눈에 불을 키고 매장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하다의 말에 앤버든은 하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니요. 부탁할게 있어요.” “부탁?” 하다는 고개를 끄덕인 후 앤버든에게 자초지종 설명했다. 앤버든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안됩니다. 그건 반대합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에요.” “……” “네? 부탁드릴께요.” 하다의 부탁에도 앤버든은 곰곰이 생각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절대 죽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저 딱 한 번만 믿고 그렇게 해주세요.” 하지만 하다의 끈질긴 부탁에 앤버든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하다를 바라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다는 이상하게 알 수 있었다. ‘오늘이야. 내 느낌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하다는 속으로 생각하며 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다의 오랜 알바 경력(?)으로 촉이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늘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질 느낌이었다. ‘뭔가 너무 조용해. 평소랑 공기부터가 달라. 진상 손님이 오기 전의 느낌이야.’ 하다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때마침 줄리아 언니의 종소리가 들리고 앤버든이 음식을 가지러 갔다. 그 순간 홀 구석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하다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앤버든씨. 잠깐만요.” 하다는 음식을 가지고 서빙하던 앤버든을 하다는 붙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나가겠다고 하며 앤버든에게 눈짓을 했다. ‘앤버든씨, 온 거 같아요.’ 앤버든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홀에 있는 종을 눌렀다. 하다는 음식 서빙을 하는 척 한 손님에게 다가갔다. 쨍그랑- 하다는 살인귀 테이블 근처에 다가가 음식이 담긴 접시와 술이 담긴 잔을 깨트렸다. 그리곤 살인귀에게 말했다. “손님. 죄송하지만 오늘은 음식을 드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다는 손님이 앉아있던 테이블에 접시를 깨며 유리조각을 손에 쥐고는 손님 목에 가져다 댔다. 손님은 당황하지 않고 기분 나쁘게 웃기 시작했고, 주위에 있던 손님들은 부산스럽게 가게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손님으로 위장하고 온 살인귀가 맞았다. 하다는 알 수 있었다. “키킥킥. 어떡해 알았지? 역시 운명부에 얽혀 있어서 그런가?” 하다는 유리조각을 목에 더 깊숙히 가져다 대며 말했다. “함부로 운명부라고 말하지마. 기분 나쁘니까. 네 놈이랑 나랑은 운명부가 아닌 그저 살생부에 쓰여진 범죄자와 범죄자를 잡는 사람. 딱 그 정도일 뿐이야.” 하다의 말이 끝나자 마자 줄리아와 앤버든이 홀로 나와 하다와 살인귀가 같이 있는 걸 보고는 깜짝 놀래했다. “하다야!” 줄리아는 하다를 도우려고 다가가려 했지만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홀 구석에서 로브를 입은 사람 세명 중 한 명이 하다 목에 칼을 대고 있었다. “잠시 이거는 치워주실까요?” 살인귀는 하다의 손에 들려 있던 유리 조각을 검지 손가락으로 밀어내며 일어섰다. 그리곤 로브를 입은 나머지 두 명이 줄리아와 앤버든의 목에 칼을 대고 있었다. 줄리아와 앤버든 그리고 하다는 모두 목에 칼이 들어와 있었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살인귀 뿐이었다. 그리고 살인귀가 경고했다. “마도구를 꺼내든다면 이 아가씨 목이 댕강 날라갈 겁니다.” 살인귀는 줄리아와 앤버든에게 말하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준비하느라 많이 늦었습니다. 하다양? 극락주점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기에 저도 철저한 정보와 준비가 필요했거든요.” 살인귀는 재미있다는 듯 왔다 갔다 하며 말을 계속 했고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준비한 보람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렇게 쉽게 제압해 버리다니요!” 살인귀는 자신이 승리자인 듯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하다가 그의 말에 차갑게 물을 끼얹었다. “너만 준비한 줄 알아? 우리도 널 기다렸어.” “뭐라구요?” 살인귀는 하다를 노려보며 물었지만 하다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앤버든을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다는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앞치마를 풀러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한편 사장실에 있던 루이는 밖이 소란스러워 매장으로 나왔다. 루이는 얼른 기둥 뒤에 숨어 상황을 살폈다. ‘살인귀가 역시 혼자 오지는 않았군.’ 루이는 일이 조금 번거로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하다의 앞치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젠장. 이 상황에서 마도구를 버린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란 걸 잘 알면서…!’ 앤버든은 자신의 옆에 있던 로브를 쓴 자가 하다의 귀력에 시선이 빼앗기자 팔꿈치로 손목을 후려처 칼을 떨어트리게 했다. “읏!” 짧게 신음 소리를 내던 남자는 이내 앤버든에게 목이 비틀려 재로 변했다. 옆에서 자신의 동료가 당하자 잠시 정신을 팔던 남자는 줄리아의 무릎으로 복부를 강타당했다. “억!” 무릎을 꿇고 있던 남자의 목에 비녀를 꽂아 버린 줄리아에겐 자비란 없어 보였다. 순식간에 줄리아와 앤버든은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갑자기 비명소리가 가게안에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 하다를 붙들고 있던 혼령이 하다의 귀력을 흡수하기 위해 하다의 목을 물어 버렸다. 그 혼령은 미친 듯이 하다의 귀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인귀가 혼령을 향해 소리쳤다. “그만둬!!! 그 여잔 내꺼야!!! 네들의 먹잇감이 아니라고!” 살인귀가 같은 편인 남자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앤버든과 줄리아가 하다에게 움직이기 전 루이가 먼저 달려 나갔다. “이 세계에 기생하는 놈 따위가 감히 누굴 건드려?” 루이는 빠르게 달려가 하다의 목을 물고 있던 자의 등을 베어 버렸다. 순식간에 재로 변하자 하다는 비틀거리며 쓰러지려고 했다. “사장님…” 하다의 목에 선명하게 남은 이빨 자국을 보며 루이는 화가 잔 뜩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모한 짓 좀 하지 마. 잠깐 서있을 수 있겠어?” 하다는 창백한 얼굴로 테이블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는 땅에 떨어져 있는 하다의 앞치마를 주워 들고는 살인귀에게 다가가 가슴에 칼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살인귀는 이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네놈이 아무리 나를 찔러 봤자 난 죽지 않아!!!” 살인귀는 하다의 귀력을 느껴서 인지 흥분해 두 눈이 핏발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이렇게는 안되는 건가’ 루이는 칼을 뽑아 들고는 잠시 물러선 뒤 다시 하다 곁으로 빠르게 다가가 부축했다. 살인귀가 한걸음 한걸음 하다와 루이를 향해 다가왔다. “강하다.” “네?” “내 귀력을 방출하지 않고 네 귀력만 방출한 채 살인귀를 찌르니 죽지 않았어.” “이론이 틀린 건가요…?” “아니. 내 귀력을 방출시키면 이론은 맞아.” 루이는 자신의 칼에 검집을 하다의 앞치마로 칭칭 감아 묶었다. 루이의 마도구는 칼이 아니라 검집이었다. 그걸 본 하다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바보였네…’ 루이가 하다에게 말했다. “강하다. 마지막 시도야. 내 귀력을 느껴.” 그리곤 검집을 놓았다. 루이의 손에 들려있는 검에는 하다의 앞치마와 검집이 매달려 있었다. 극락주점은 지금 하다와 루이의 귀력이 뒤섞이고 있었다. 살인귀는 엄청난 귀력에 미쳐 날뛰기 직전이었다. “캬캬캭!! 엄청난 귀력이야!! 다 내가 먹어주지!!” 살인귀는 귀력에 더욱 광기를 내비췄다. 하다는 힘이 풀렸는지 주저 앉아버렸고 루이는 하다의 한쪽 어깨를 감싸며 한 쪽 무릎을 땅에 대고 꿇고 있었다. “편히 먹으라고 얌전히 있어 주는 군.” 살인귀는 웃으며 하다와 루이에게 말했다. 루이는 하다의 한 손을 자신의 검을 쥐어 주고는 그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개 올려 꽉 잡았다. “그까짓 검은 나에게 통하지 않아!!! 캬캬캭!!! 그럼 잘먹겠습니다!!!” 살인귀는 루이와 하다에게 뛰어올랐다. 검을 무시한 채 뛰어오른 살인귀의 가슴에 루이는 정확히 칼을 꽂았다. “몇 번을 말하지, 이까짓 검은…? 응?” 달려들던 살인귀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멈춰 섰다. 그리고 검에 매달려 있던 하다의 앞치마와 루이의 검집의 귀력이 칼을 타고 살인귀의 심장을 태우기 시작했다. “으아악!!! 뭐야!!!” 루이는 살인귀에게 칼이 통하는 걸 알고는 살인귀에게 다가가 가슴에 꽂힌 칼을 더욱 깊숙히 밀어 넣었다. 살인귀는 루이한테 떨어져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칼을 뽑기 위해 손을 칼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살인귀의 손이 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어떻게 된 일이야!!!!” 살인귀는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전부 타버리고 재만 남았다. 루이의 칼이 허공에서 땅바닥에 떨어졌다. 루이는 어느새 정신을 잃은 하다 곁으로 가 있었다. 하다는 루이의 품에 쓰러져 있었다. “하다야!!!” 줄리아는 하다에게 달려와 상태를 살펴봤고 앤버든은 칼을 챙겨 루이에게 가져다주었다. 칼을 받은 루이는 하다를 안은 채 일어났다. 그러자 줄리아가 말했다. “루이!! 하다는 지금…!” 루이는 줄리아의 말을 끊고 말했다. “심력을 사용할 거야. 잠시만 밖에 상황 좀 맡아줘.” 심력이라는 말에 줄리아와 앤버든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루이는 하다를 집무실로 데리고 들어가자마자 침대위에 눕혔다. 줄리아와 앤버든은 매장에 남아 둘의 귀력을 느끼며 다른 혼이나 살인귀들이 나타나지 않게 경계를 하고 있었다. 앤버든이 줄리아에게 물었다. “심력을 사용하면 괜찮아 지는 겁니까?” 줄리아는 앤버든의 물음에 다 끝났다는 듯 편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아 질거야. 하다의 귀력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루이의 귀력이 그만큼 강하잖아.” “전 하다양 앞치마가 바닥으로 떨어 질 거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자책 하지마. 앤버든.” “조금 자책은 하지만 하다양의 용기에 조금 놀랬습니다.” “용기... 바닥으로 떨어진 앞치마라…” 한편, 루이는 침대에 누운 하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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