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화 - 날아든 살생부

3919 Words
어느새 잠이 들었던 하다는 푹신한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자 무릎으로 담요가 떨어졌다. ‘누가 덮어준 거지? 줄리아 언니가 덮어주고 간 건가?’ 하다는 극락 주점에서 자신에게 담요를 덮어줄 사람은 줄리아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나 잔 건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개운함이었다. 하다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사장님은 어디 나가셨나?’ 일어났을 때 루이는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귀문시간까지 꽤 남아 있었다. 매장으로 나와 보니 줄리아와 앤버든 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간 거야?’ 하다는 매장 테이블에 엎드렸다. 현실 세계에서는 쉴 틈 없이 일만 하던 하다였기에 이렇게 하루 만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버리니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아… 지루해… 할 일이 너무 없어. 다른 알바를 찾기엔 이 세계는 모든 가게 운영시간이 똑같다고 했으니까 그건 불가능 하고…’ 하다는 지루함에 가게를 천천히 둘러보다 가게 구석에 있는 긴 나무 막대기를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 마도구가 검 이였지?’ 하다는 지난번 심력을 알려주려고 루이가 자신의 허리에서 풀러 낸 긴 검을 생각하며 혼자서 정보를 찾았다는 거에 좋아했다. 하다는 몸을 일으켜 세워 구석으로 걸어가 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하다는 검을 휘두르듯 긴 나무 막대기를 휘둘렀다. “이얏!” 한 손으로 들기 가벼운 무게였다. 하다는 재미있다는 듯 혼자서 검을 휘두른다는 생각으로 나무 막대기를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오, 생각보다 이거 재미있는데?’ 하다는 뒤를 돌며 막대기를 내리쳤다. 한편 그 곳에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정체모를 사람이 있었다. 이미 막대기를 멈추기에도 사람이 피하기에도 너무 늦었다. ‘위험해!’ 하다는 속으로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우지끈 소리가 나며 막대기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잠시 뒤에 눈을 살짝 떠보니 정체모를 남자가 단검집으로 나무 막대기를 막은 뒤였다. 하다는 안심하며 남자에게 물었다. “다행이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하다는 걱정이 되어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하다의 손을 쳐다 볼 뿐이였다. 그 시선을 따라 하다는 자신의 손을 봤는데 부러진 나무에 찔려 피가 나고 있었다. “아 저는 괜찮아요. 약 바르면 금방 나을 거에요. 이 세계는 약이 그렇게 잘 든데요.” 하다는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정체모를 남자는 조용히 하다를 바라보다가 우편물을 건냈다. “아. 감사합니다.” 하다는 얼른 우편물을 받아 들었다. 남자는 자신의 볼 일이 끝났 듯 고개를 짧게 숙이고는 가게를 나갔다. ‘여기도 우편물 배달부가 있구나.’ 하다는 신기한 듯 사라진 남자를 눈으로 쫓고는 우편물로 눈길을 돌렸다. 이것 저것 보다가 빨간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용 표시의 인장이 찍힌 우편물이었다. 발신인도 수신인도 없었다. ‘이런 편지는 판타지 세계에서나 봤는데… 한 번 뜯어봐도 되려나?’ 하다는 망설이다가 결국 호기심에 우편물을 뜯어봤다. 안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검은색 종이가 들어있었다. ‘뭐지?’ 종이를 꺼내 들고 앞 뒤로 확인하던 하다는 종이 위에 금색 글씨가 새겨는 걸 보자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살.생.부] - 극락주점 강하다. 살인귀 처리 1명. 특이사항 없음. 하다는 종이를 빠르게 빨간 봉투에 다시 집어넣었다가 뺐다가를 반복했지만 이미 새겨진 금색 글씨는 사라지질 않았다. 하다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 사고친거 맞지?’ 때마침 가게문을 열고 줄리아와 앤버든이 들어왔다. 앤버든의 품 안엔 짐이 한가득 있었다. 딱 봐도 전부 줄리아의 짐이었다. 줄리아가 하다를 보자 밝게 인사를 했다. “하다야. 일어났어? 내가 오늘 쇼핑을 하는 김에 네 옷도 같이 사 왔어! 이 곳에서 입을 옷이 필요 하잖아?” 줄리아의 밝은 목소리에 반면 하다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본 줄리아는 하다의 손에 든 걸 발견했다. “이런, 젠장... 앤버든!!” 앤버든은 짐을 테이블 위에 놓고 줄리아처럼 하다에 손에 든 명부를 발견했다. “이런, 젠장.” 하다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이게 살생부인지 몰랐어요.” 지금 줄리아와 앤버든과 하다는 셋이 테이블에 앉아 생각에 빠졌다. 살생부란 처음 개봉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저 이제 어떡하면 되죠? 제가 살인귀를 잡을 수 있을까요?” 하다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줄리아와 앤버든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절대 못 잡습니다..” 앤버든이 딱 잘라 얘기했다. “그럼 줄리아 언니나 앤버든씨가 대신 잡아주시면!” “살생부라는 건 운명부와 같은 거야. 그 살인귀랑 하다 너랑은 이제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가 잡아 둘 순 있어도 죽일 수는 없어.” “우리가 아무리 찌르고 죽여 봤자 그 녀석은 다시 살아날 겁니다.” 하다는 머리를 쥐어짰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하다는 살아남아야만 했다. “하다 너 혼자 찾으러 나가는 건 불가능해. 너랑 운명부에 묶여 있는 한 언젠간 그 녀석이 우리 주점에 찾아오게 될 거야. 그때를 노려 야해.” “줄리아 말대로 그때를 노리는 게 가장 맞지만 하다양이 과연 살인귀를 잡을 능력이 되느냐인데…” 하다는 갑자기 두 손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덕분에 줄리아와 앤버든은 깜짝 놀라 하다를 쳐다 봤다. 하다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줄리아 언니. 궁금한 게 있어요.” “응?” “방금 저에게 좋은 방법이 생각 났거든요!” 줄리아는 불안한 표정으로 하다에게 물었다. “네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왜 나는 불안감이 느껴질까?” 한편 루이는 업무를 마치고 잠들어 있는 하다에게 담요를 덮어주고는 조용히 방을 조용히 빠져나와 앨린이 운영하는 가게로 향했다. 앨린은 루이를 보며 밝게 웃으며 다가섰다. “어머, 어머! 루이든님! 이렇게 친히 저희 가게에 방문을 해주시다니요.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저희 직원들을 시켜 좋은 자리를 준비해 두었을 텐데요.” 앨린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루이든 옆에 가서 팔짱을 끼려고 했다. 하지만 지난번과 다르게 루이는 몸을 돌려 피하고선 앨린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할 말이 있어서 잠시 들렸습니다.” 루이의 행동에 당황한 앨린은 표정이 굳어지려 했으나 최대한 억지 미소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하...하실 말씀이란게…” “지난번 저희 가게에서 저희 직원에게 위협을 가하셨던 거 기억하십니까?” “위협이라니요?! 그건 위협이 아니라 그 애가 먼저…!” 앨린은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루이를 설득하려 했지만 루이는 앨린의 말을 자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저희 알바가 다쳤습니다.” “말도 안돼요. 저랑 루이든님 사이를 이간질시키려고 일부러 그런거에요!” 앨린의 말에 루이는 화난 표정을 지었다. 처음보는 표정에 앨린은 당황했다. 이러다 정말 루이든과 사이가 멀어질 것만 같았다. “다음부터 저희 가게에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뿌득- 앨린은 이가 갈렸다. 하지만 겉모습에 드러난 표정은 억지 미소를 지으려고 애쓰는 얼굴이었다. 앨린은 하다에게 화가 났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 극락에 온 지 하루도 안 된 여자애였다. 자신이 루이와 사이를 좁히려고 노력한 과정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그 애를 용서할 수 없었다. ‘이대로 물러 설 순 없어.’ 앨린은 루이에게 필요한 것을 미끼로 자신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게 만들려고 마지막까지 노력했다. “루이든님. 그럼 정보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 그렇다. 앨린은 루이든에게 정보를 주기 때문에 옆에 있을 수 있었다. 루이가 정보를 필요로 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은 그에게 언제 까지든 필요할 존재였다. ‘루이든 토베른. 아무리 너라도 정보가 필요한 이상 날 네 옆에서 내칠 순 없어.’ “정보는…” 앨린은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려고 꿈틀되는 걸 참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필요없습니다. 그럼 이만.” 앨린은 이제 억지 미소 지으려는 걸 포기했다. 아니. 지을 수가 없었다. 루이는 정중히 인사한 뒤 뒤돌아 나가려고 했다. “루이든님. 잠깐만요! 저번에 처음 느껴본 귀력을 가진 사람을 봤어요.” 앨린은 다급하게 루이를 잡으려고 내뱉었다. 하지만 루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정보는, 필요 없습니다.” 루이는 문을 열고 나갔다. 앨린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극락주점 네놈들. 가만 안 둘 꺼야. 특히 강하다 알바 나부랭이 주제에 감히…가만 안 둬.’ 루이는 가게를 나와 청원소로 가서 청원서를 부친 후 다시 극락 주점으로 향했다. 한편 극락 주점에서는 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중이었다. “줄리아 언니. 혹시 마도구와 마도구가 만나면 상대방의 마도구를 제 마도구처럼 사용할 수 있나요?” 하다의 말에 줄리아는 생각에 잠겼다. “음… 해보진 않았지만 이론상으론 가능해. 본래 마도구란 건 그 사람의 귀력이 깃든 거니까 심력을 거기에 적용해 보면 서로의 귀력이 융화 될 거야.” “그럼 해볼 만한 모험인 거 같아요.” 앤버든과 줄리아는 하다의 말뜻이 뭔 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다는 방금 자신이 생각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줄리아와 앤버든에게 설명했다. “제 마도구를 사장님의 마도구랑 합칠 거예요.” “사장님이랑?!” 앤버든이 놀라며 하다에게 되물었다. “네.” “왜 하필 루이야?” 줄리아의 질문에 하다는 단순하게 대답했다. “멀리서 공격하기 쉽잖아요.” 이유는 단순했다. 앤버든은 힘으로 혼을 잡는 걸 봐선 자신의 것과 융화되기엔 안 될 것 같았다. “그럼 내 마도구로는 안 될까?” 줄리아는 자신의 비녀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제 앞치마 무게를 견뎌 내기엔 위험 부담이 좀 커요. 중간에 떨어질 가능성도 있고.” “그럼 사장님 마도구랑은 어떡해하려고?” “사장님 칼에 제 유니폼을 묶어서 던질 거에요.” 앤버든과 줄리아는 깜짝 놀랐다. 가장 안전한 방법이긴 했지만 누구도 시도해 본적이 없어서 위험한 모험이었다. “그러다 맞지 않는다면…” “그걸 대비해서 줄리아 언니와 앤버든씨가 대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우선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법이긴 해.” 하지만 앤버든이 뒤이어 말했다. “하지만 사장님께서…” 앤버든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가게 문이 열려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루이의 등장에 다들 얼음장처럼 굳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루이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자신을 쳐다보는 세 명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너희 세 명이서 그런 눈으로 조용히 날 쳐다보면 항상 기분이 찝찝해 진단 말이지.” 아마도 루이는 셋이서 사고를 쳤거나 칠 예정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루이의 눈이 하다의 손으로 향했고 루이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역시나 맞군. 최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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