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화 - 극락주점.

3781 Words
하얀 불빛과 경적소리. 맞다. 나는 소설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교통사고를 당해 이세계로 왔다. 운이 안 좋았던 날이었는데 최악의 날이 되어 버리다니… 눈을 떴을 땐 모르는 길 한 가운데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다행히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기에 창피함을 누르며 일어섰다. 차에 치였지만 이상할 만큼 아픈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여기가 어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았지만 알 길이 없었다. 현실에서도 삼남매를 업어 키울 정도로 강한 만큼 이름도 강한 내 이름 강하다. 지금쯤 나만 찾고 있을 삼남매가 걱정되었다.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이 이상한 곳에서 빨리 현실세계로 돌아가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몸에 묻은 먼지를 털다가 허리춤에 매어 있는 앞치마를 보고는 고개가 기울어졌다. ‘응? 내가 퇴근할 때 앞치마를 안 벗고 퇴근 했었나?’ 앞치마에 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자 종이가 만져졌다. 꺼내서 펼쳐보니 전단지였다. [ 극락주점. 길을 잃었다면 이곳으로 찾아오세요. ] ‘극락주점?’ 하다는 전단지에 나와 있는 지도를 보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잘하고 있는 거 맞겠지……?’ 마치 극락주점으로 가라는 짜여진 각본 같아 불안감은 스쳤지만 하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지도를 보며 조금 더 걷자 극락주점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하다의 눈에 들어왔다. 하다는 조심스럽게 노크를 한 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실례합니다.” 가게 안은 운영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덕분에 그 곳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하다는 조심스럽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 물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물어볼 게 있어서……” 하다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앉아있던 여자가 하다를 향해 물었다. “어디 소속이지?” “네?” 하다는 뜻밖의 질문에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손에 들려 있던 전단지를 보여주기 위해 여자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같이 있던 남자가 경계심 많은 표정으로 하다의 어깨를 잡고는 저지했다. 당연히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졸지에 현행범이 된 것 같아 하다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하다가 화를 꾹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남자의 외모 덕분이었다. 그래. 이 남자 좀 생겼다. 인정한다. 단정한 흑갈색 머리카락에 밝은 갈색 눈동자를 가진 이 남자는 수려한 외모를 뿜뿜 풍기는 중이었고 심지어 몸도 좋아 보였다. ‘그래, 얼굴 봐서 한 번은 내가 넘어가 주지.’ 하다는 속으로 참을 인을 새기며 잡힌 어깨를 뿌리치고는 구겨진 옷을 탈탈 털어주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죄송하지만 소속은 몰라서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하다는 답을 해 주며 손에 들려 있던 구겨진 전단지를 펼쳐 보였다. 그리고 앉아 있던 여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지만 또다시 남자에 의해 저지당했다. 무슨 힘이 그렇게 센 건지, 이번에는 뿌리칠 수가 없었다. 하다는 낮은 신음을 내며 남자에게 말했다. “으읏… 알았어요. 아무래도 제가 가게를 잘못 찾아온 것 같네요.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하다는 아픈 팔을 빼내려고 버둥거렸지만 남자는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그때 마침 앉아있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붉은색 웨이브진 머리카락이 가슴 언저리까지 내려오고 있었고 주황색 눈동자 속에서 섹시미가 철철 흘러내리며 이목구비는 뚜렷했다. “앤버든 그만해. 그러다 우리 새로 온 알바님 잡겠어.” ‘앤버든?’ 마침 하다의 팔을 놓아주는 걸 보니 잘생긴 남자의 이름이 틀림없었다. 하다는 잘생긴 얼굴에 구멍이라도 뚫릴 기세로 아픈 팔을 쓸어내리며 쏘아보았다. “앤버든씨? 참 감사하네요. 아픈 걸 보니 덕분에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됐어요.” “……” 하다의 말에 앤버든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름이 특이하긴 했으나 하다는 그걸로 문제 삼을 세가 없었다. 지금 하다에게 필요한 건 조금이라도 빨리 이 이상한 곳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 게 더 급한 문제였다. “이름이 뭔 지 물어봐도 될까?” 여자의 말에 하다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하다요. 강하다. 저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좀 급해……” “이름이 특이하네.” 여자는 하다의 다급함은 안중에도 없는 듯 말을 잘랐다. “네. 이름이 특이하단 소리는 평소에도 많이 들어요. 하지만 여기에서 특이한 이름은……” “음… 그나저나 어쩌지?” 이번에도 여자는 하다의 말을 듣지 않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다는 무슨 큰 일이라도 벌어진 건지 걱정이 돼서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여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앤버든이라는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줄리아. 사장님은 금방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줄리아라고 불린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다를 향해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하다는 그 손을 바라보다가 우물쭈물 다가가 자신의 손을 내밀어 잡았다. 그러자 줄리아는 그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말했다. “반가워! 오늘부터 이 극락주점에서 일하게 된 걸 축하해!” “네에?!” 하다는 깜짝 놀라 손을 놓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 나무로 만든 의자에 주저 앉아 버렸다. 하다는 지금 긴 검은색 머리카락을 하얀 손으로 움켜 잡고는 검은 눈동자가 담긴 눈을 멍하니 떠 줄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줄리아의 외모도 뛰어났지만 하다의 외모 또한 뛰어난 편에 속했다. 그 모습을 미소 지은 채 바라보던 줄리아가 하다에게 말했다. “예쁘게 생겼구나. 나는 줄리아라고 해. 그리고 저기 서있는 남자는 앤버든이라고 편하게 부르면 돼.” “아, 네. 저는 강하다라고 합니다. 하다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줄리아 언니. 물어볼 게 있는데요.” “응. 뭐든 물어봐.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 거야.” 하다는 드디어 자신이 이 가게에 온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 하다는 두 주먹을 꽉 쥐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줄리아에게 물어봤다. 이번에야 말로 대답을 듣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고 그 표정에 줄리아는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작게 웃음을 내 뱉었다. “훗.” 하다는 의아한 표정으로 줄리아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집에서 제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집에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줄리아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집? 이제 집에 돌아갈 수 없어. 여기가 네가 지낼 곳이야. 만약 지금 상태로 집을 가겠다고 가게를 나가는 순간 넌 죽게 될 걸?” 하다는 눈썹을 찡그리며 줄리아에게 말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줄리아는 팔짱을 끼며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한 번 나가봐도 좋아.” 하다는 줄리아의 말에 인상을 쓰며 물었다. “지금 협박하시는 건가요?” “협박? 내가 널 협박해서 뭘 얻을 수 있지? 유희? 흥미? 미안하지만 난 누굴 놀리면서까지 그런 걸 즐기는 사람이 아니야.” 줄리아의 말에 하다는 조심스럽게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던 질문을 했다. “그럼 여긴 어디죠? 천국인가요, 지옥인가요? 아니면 다른 세계인가요?” 하다의 질문에 줄리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알바가 촉은 좋네. 여긴 천국도 지옥도 아닌 극락이라는 곳이야.” 줄리아의 말에 하다는 좌절했다. 현실에서 삼남매를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지만 결국 죽어서도 열심히 일만 하게 생겼으니 하다에겐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저에겐 이 곳은 지옥이에요.” 하다의 말에 줄리아는 어두워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웃음기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네?” 줄리아가 대답이 없자 이번엔 앤버든이 나서서 말을 이었다. “삼도천을 건너지 않았을 뿐 저희 모두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은 채 이 곳으로 오게  된 겁니다.” 앤버든은 말을 하며 하다와 줄리아가 앉아 있는 원형 목재 탁자로 다가와 의자에 앉았다. “이곳에선 ‘혼’과 ‘선택받은 자’로 분류되어 지내고 있습니다. ‘혼’은 말 그대로 죽은 사람을 뜻합니다.” 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앤버든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을 ‘선택받은 자’라고 불리고 있지.” “저희가 선택을 받았으면 혼과는 뭔가 다른 점이 있겠네요.” 줄리아는 하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혼은 진짜 현실에서도 죽은 사람들이지. 현실세계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하다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물었다. “그 말인 즉 저희는?” “현실 세계에서 죽지 못한 채 무언가로 인해 이곳으로 오게 된 사람들이고.” 하다는 이 말을 듣자 그 즉시 두 손을 모아 믿지도 않는 신들을 읊으며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다의 기뻐하는 표정을 보자 줄리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기뻐하지?” 하다는 기쁜 표정으로 줄리아에게 대답했다. “왜라뇨! 당연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기쁜 거죠.” 줄리아는 하다의 생각에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왜 결론이 그렇게 난 거지?” 하다는 기쁜 표정으로 줄리아에게 말했다. “현실세계에서 죽지 않았다면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지 않나요?!” 하다가 줄리아의 말에 대답을 하며 기뻐할 때 순간 하다의 뒤에서 가게 문이 열리며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그러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낯선 목소리에 하다는 고개를 돌렸다. 로브를 벗으며 은빛 머리카락을 헝클며 걸어 들어오는 한 남자를 보며 하다는 넋을 놓고 말았다. 어느새 해는 지고 달이 떠 있었고 그 은발은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만 같았다. 은빛 머리카락에 진회색 눈동자 사이로 오똑한 콧날이 뻗어 있었고 그 콧날을 따라 내려가다 보이는 입술은 피부에 비해 붉어 보였다. 넋을 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하다의 시선을 피하며 남자는 앤버든과 줄리아를 차례로 쳐다보며 물었다. “앤버든은 희망적인 얘기를 절대 하지 않았겠지, 그렇다면 줄리아?” “루이, 나도 아니야. 괜한 사람 잡지마.” 줄리아는 양손을 어깨를 위로 올렸다 내리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하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루이에게 한 손을 들어 올리며 힘차게 말했다. “접니다! 제가 스스로 생각해낸 거예요!” 루이는 그런 하다를 슬쩍 흘겨보고는 앤버든에게 로브를 건내며 한 마디 했다. “오랜만에 극락에 해가 떴다 했더니 우리 가게 사람이었군. 근데 하필이면 저런 애가 오다니.” 앤버든은 루이에게 다가가 로브를 받아 들고는 그 뒤를 따라 걸어갔다. 하다는 루이의 말에 팔에 힘이 스르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저런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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