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화 - 가게의 소란.

3889 Words
열심히 손님을 안내하던 하다는 음식이 나왔다는 종소리에 앤버든에게 다가갔다. “앤버든씨.” “……?” 하다는 들뜬 목소리로 앤버든에게 물었다. “음식을 제가 가지러 가도 될까요? 줄리아 언니의 음식 솜씨를 보고 싶어요!” “……고맙다.” 하다는 놀란 눈으로 앤버든을 쳐다보았다. ‘고맙다’라는 소리를 앤버든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시 정은 일하면서 쌓인다고 했던가.' 앤버든도 함께 일하면서 자신에게 마음을 조금이나마 연 거 같아 하다는 기분 좋게 주방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곧 틀린 생각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하다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보고 속으로 경악을 했다. “주…줄리아 언니. 음식이 이게 맞나요?” 하다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줄리아에게 물었다. “응 맞아.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지 음식이 아주 잘 됐어.” 줄리아는 자신의 음식에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기에 하다는 더 이상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언니. 이건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거에요.’ 정체모를 보라색 액체가 보글보글 끓어 넘치는 접시를 들고 손님에게 향했다. 하다는 그 접시를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이 음식을 손님이 먹어도 괜찮은 건가 고민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마침 앤버든 앞을 지날 때 하다는 알았다. 앤버든은 하다의 눈을 피해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앤버든, 저 빌어먹을…’ 하다는 무사히 손님에게 술과 음식을 서빙 했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괜찮아. 괜찮아. 원효대사도 해골 물 마셨잖아. 그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안 죽어. 괜찮아.’ 하다는 앤버든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향해 걸어가던 중 이었다. 그때 하다는 가게 안 구석 테이블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쳐다보자 후드를 뒤집어쓴 혼이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자신을 쳐다보며 웃는 기분이 들었다. ‘뭐… 마도구만 있으면 괜찮다고 줄리아 언니가 그랬으니까 문제는 없겠지.’ 하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넘겼고 마지막으로 그 손님에게 술과 음식만 나가면 끝이었다. “술 이랑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하다는 인사를 하고 뒤돌았다. 일이 터진 건 한순간이었다. 하다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던 혼이 하다의 허리에 매여 있던 끈을 잡아당기자 앞치마가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하다는 바닥에 떨어진 앞치마를 바라보며 기분이 나쁘다는 듯 손님에게 말했다. “손님, 이러시면 성폭행죄로 경찰서에 들어가실 수도 있어요! 철컹 철컹! 아시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경찰을…!” 하다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 순식간에 줄리아가 그 손님을 벽으로 몰아붙이며 비녀를 목에 가져다 댔다. “줄리아 언니!” 하다는 깜짝 놀라 줄리아를 말리기 위해 다가가려다 멈칫했다. 분명 후드를 뒤집어 써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게 느껴져 소름이 끼쳤다. 줄리아는 멍하니 서 있는 하다를 향해 소리쳤다. “하다! 넌 빨리 마도구 챙겨!” “마도구만 있으면 괜찮다고 분명…!” 줄리아는 비녀를 혼의 목에 더욱 깊숙히 가져다 대며 하다에게 말했다. “이 미친X이 일부러 장난 친 거야. 그것도 아주 소란스럽게.” 줄리아의 목소리엔 화가 잔뜩 베어 있었다. “하지만 왜…” “그거까지 내가 알아낼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지금 상황이 좋지 않거든.” 하다는 줄리아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앤버든이 하다의 앞을 막아 서 있었고 덩치 큰 앤버든의 어깨 너머로 본 풍경은 좀비라 해도 될 정도로 손님들이 다들 정신을 놓은 것만 같았다. 하다는 방금 전까지 술과 음식을 잘 먹고 있던 손님들이 왜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이…이게 도대체 무슨 일 이에요? 손님들이 다들 절 노리는 거 같은 건 저만 느끼는 건가요?” 하다의 말에 줄리아는 빠르게 말했다. “다들 귀력에 눈이 먼 거야. 하다 넌 얼른 마도구 챙겨!” 하다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앞치마를 얼른 다시 챙겨 들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귀력이니 뭐니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손님들이 비틀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강하다 인생, 현실에서 한번 죽고 여기서 또 죽게 되다니…흑’ 하다는 눈물을 머금으며 앞치마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큰 일이란 게 이런 거였으면 더 심각하게 얘기를 해줬어야지!’  이럴 줄 알았으면 마도구를 더욱 소중하게 여겼을 텐데 하다는 속으로 후회했다. 앤버든이 하다를 더욱 자기 뒤로 숨기며 줄리아를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다들 처리해야 할 거 같은데요?” 앤버든은 뒤로 몇 걸음 더 물러났고 줄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말이 끝나자마자 줄리아 손에 들려 있던 비녀는 혼의 목을 찔렀고 손님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하다는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너무 놀라면 소리도 안 나온다던 데 그게 사실이었다. 줄리아는 그런 하다를 보고 짧게 미소 지으며 한마디 거들고는 앤버든 옆에 섰다. “너무 놀라진 마. 첫 날부터 신고식을 제대로 치르네.” 이후에도 상황은 가히 충격적인 모습들이었다. 줄리아는 비녀를 이용하고 앤버든은 힘을 이용해 혼령들의 모가지를 비틀며 모두 재로 만들어 댔다. 하다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간신히 힘 주어 버티고 서있었다. “후. 이정도면 다 처리한 거 같은데?” 줄리아가 앤버든에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둘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어느정도 정리가 되자 하다는 떨리는 목소리로 줄리아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처음에 얌전했던 혼들이 왜 공격적으로 변한 건가요?” 줄리아는 하다의 손에 들려있던 마도구를 허리춤에 묶어주며 말했다. “다들 귀력에 눈이 먼 거야.” “귀력이요?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하다는 알게 모르게 자신이 무언가를 했는지 생각해 봤지만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말했던거 기억나? 마도구는 항상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하다는 기억을 더듬어 줄리아가 해준 말을 기억해 냈다. “네. 마도구가 주인의 몸에서 떨어지면 큰 일이 일어난다고……혹시 큰 일이라는 게 이런 상황을?” 줄리아는 하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마도구는 우리의 귀력을 감춰주고 유지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어. 근데 그런 마도구가 몸에서 떨어진다면 귀력은 소비되고 누군가는 방출되는 귀력을 느끼고 지금처럼 공격해 올 거야.” 줄리아는 하다의 앞치마를 묶어준 뒤 하다가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다행이 줄리아와 앤버든이 빠르게 혼들을 처리해 준 덕분에 하다는 무사할 수 있었다. “전 괜찮아요. 그나저나 줄리아 언니랑 앤버든씨도 괜찮으세요?” 줄리아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이 정도로는 끄떡없다고! 그렇지, 앤버든?” “물론입니다. 결국 원인 제공의 혼까지 처리하는 바람에 왜 이런 소동을 일으켰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앤버든의 말이 길어지자 줄리아는 귀찮은 듯 손을 휘 저었다. “아~ 알았다고, 알았어. 이제 그만 말해.” 줄리아의 말에 앤버든은 다시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을 하다는 알 것만 같았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보니 표정은 안 봐도 분명했다. 누가 먼저 말하기도 전에 앤버든은 루이에게 상황 설명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사장님. 잠시 가게에……” “잠깐.” 앤버든의 말은 끝마치지 못하고 루이의 말에 의해 끊겼다. “설명은 이 사건의 원인 제공 자에게 직접 듣도록 하지.” 그렇게 말을 끝낸 루이는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앤버든은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하다에게 말했다. “따라 들어가면 됩니다.” ‘앤버든, 저 빌어먹을…….” 하다는 앤버든을 쏘아보다가 집무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니! 그걸 누가 몰라서 이렇게 서 있냐고!’ 하다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루이의 집무실을 노크한 뒤 3초를 속으로 센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닫고 어쩔 줄 몰라하는 하다를 쳐다도 보지 않은 루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서 있을 거지? 자리에 앉지.” 손님 맞이용 소파에 앉은 하다는 이 상황에 소파가 푹신하다는 거에 속으로 감탄했다. 감탄도 잠시 루이는 서류가 쌓여 있는 책상에서 일어나 하다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맞은편에 앉았다. “처음 느껴보는 귀력이었어. 당연히 줄리아나 앤버든은 아니겠지. 그리고 그 둘은 마도구를 절대 소홀이 관리하지도 았았을테고.” 루이의 말에 하다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사장님이 느끼신 귀력은 아마도 제 귀력이 맞을 겁니다.” “그걸 물으려고 부른 게 아니란 걸 알텐데.” “네?” 루이의 말에 하다는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묻는 거다.” “아… 제 마도구를 혼이 풀어버리는 바람에……” “혼이 마도구를 풀어? 너의 마도구가 뭐지?” 루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하다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하다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앞치마 끝자락을 매만지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앞…치마요.” “뭐?” 루이는 잘못 들은 듯 되물었다. 하다는 눈을 질끈 감고 될 데로 되라는 식으로 말했다. “앞치마요! 앞치마! 지금 제 허리에 묶여 있는 이 쓸모없는 앞치마요!” 하다의 대답에 집무실 안은 잠시 정적이 흘렀다. 루이가 아무런 답이 없자 하다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제 쫓아내실 건가요?” 하다의 말에 루이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목소리만큼은 동요하지 않았다. “내가 왜 쫓아 낼 거라고 생각하지?” “쓸모없는 사람이 들어왔으니까요.” “……” 루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다를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난 널 쫓아낼 자격이 없어.” “네? 하지만 사장님이 잖아요.” “네가 이곳에서 일하는 걸 결정한 건 염라다. 그리고 이 가게에서 일을 할 지 안 할지에 대한 결정권은 너에게 있어.” “아……!” 하다는 루이의 말에 쫓겨날 걱정이 사라져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네?” 하다는 잘못들은 것 같아 되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위로의 말을 해 준 루이에게 너무 고마워 절로 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뭐가 감사하다는 거지?” “위로해 주셨잖아요.” 루이는 자신이 무슨 위로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난 위로 같은 거 한 적 없어. 사실을 말한 것 뿐이야.” “네!” 루이는 앞에서 밝게 미소 지으며 웃고 있는 하다를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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