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화 - 저는 알바가 아니라 강하다 입니다.

3895 Words
하다가 문을 열고 나가자 앤버든이 문 앞에 서 있었다. 하다는 앤버든에게 살짝 고개만 숙이고 인사를 한 뒤 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곳에 줄리아 언니만 있는 줄 알았지만 앨린도 함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줄리아 옆에 앉은 하다는 지금 앨린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앨린이란 여자는 하다의 앞에 앉아 팔짱을 끼고 노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하다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마침 줄리아가 말을 걸어 하다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다야. 루이하고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줄리아의 질문에 하다는 민망한 상황만 빼고 모든 부분을 설명했다. “제 마도구와 사장님의 마도구가 풀렸었어요. 그리고 사장님이 말씀하시길 나가면 줄리아 언니가 친절하게 설명해 줄 거라고 하셨어요. ” “루이 이런…! 후… 그래서 둘의 귀력이 같이 느껴졌던 거구나.” 줄리아는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욕을 삼키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하다는 앨린이란 여자의 눈초리가 따가워 힐끔 쳐다보고 다시 줄리아에게 말했다. “사장님이 저한테 주는 첫번째 정보라고 하셨어요. 이게 무슨 뜻이죠?” “아마도 심력이란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 같은데, 약간 무식한 방법으로 알려줬네. 원래 그렇게 알려주는 애가 아닌데.” 줄리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하다는 줄리아의 말에 ‘심력’이라는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심력이요? 귀력이랑 심력이랑 차이가 있나요?” “물론이지, 개인의 몸에서 나오는 귀력을 서로 뒤섞으면 심력이 되는거야. 심력을 사용하는 중에는 누가 누군가에게 귀력을 나눠주는 걸 뜻해. 아마 방금 전에는 루이가 너에게 귀력을 줬을 거야. ” 하다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되물었다. “귀력을 나눠 줄 수도 있나요?” 줄리아는 찝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하지만 그 과정 중에 한 쪽이 귀력이 다하면 죽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일이야. ” 옆에 있던 앨린이 말에 가시가 있게 덧붙여 설명해 줬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심력을 사용하지 않아. 사장님이랑 입을 맞췄니?” “네?!” “앨린!”                하다는 앨린의 뜬금없는 질문에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줄리아는 앨린의 말을 막고는 하다에게 마저 설명했다. “앨린의 말 뜻은 별거 아니야. 마도구가 풀린 상태에서도 귀력이 섞여 심력을 사용 할 수 있지만 입을 맞추면 귀력을 더 많이 빨리 나눌 수가 있어. 서로의 귀력에 서로의 귀력이 깃드는 거지.” “아뇨. 당연히 입을 맞추지 않았어요.” 하다는 고개를 저으며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줄리아에게 말했다. 그러자 앨린이 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럼 네가 혹시 사장님에게 귀력을 달라고 졸랐니?” “네?” 하다는 앨린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앨린! 하다는 심력이 뭔지도 모르는데, 상식적으로 생각이란 걸 하고 말해!” 줄리아의 말에 앨린이 발끈하며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섰다. “뭐라고?! 안 그래도 저 알바 여자랑 우리 루이든님이랑 귀력이 섞였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나쁜데 뭐? 생각이란 걸 하고 말해?” 줄리아도 자리를 박차며 앨린과 마주보며 일어섰다. 둘의 기싸움이 팽팽해졌다. “그래, 생각! 루이만 생각하고 아무 생각없이 말할 때 보면 너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니? 앞 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고?” 둘의 싸움이 또 시작되었다. 잘못 하다가는 불똥이 하다에게 튀기 마련이라 하다는 자리를 뜨기로 마음먹었을 때였다. 하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봐, 알바?!” 앨린이 하다를 알바라고 부르며 불러 세웠다. “저요?” 하다는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 너!” 하다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역시 자신밖에 없다는 걸 알고는 몸을 바로 세웠다. “왜 그러시죠?” 앨린은 하다의 앞에 와서 섰고 눈을 치켜 뜨며 하다를 노려보았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하다의 한쪽 어깨를 꾹꾹 눌러가며 말했다. “알바가. 사장님한테. 왜라고. 이유를. 묻는 게. 잘못된 거. 아닌가?” 앨린의 행동에 줄리아는 깜짝 놀라 앨린의 손을 잡고 하다 앞에 막아서며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너도 똑같아. 줄리아. 알바 주제에 사장한테 대들고, 반말이나 하고.” 이번엔 참을 인을 세길 수가 없었다. 하다는 어깨가 쑤시는 걸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하시죠.” 앨린은 잘못 들은 듯 하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그만 하시라구요.” 하다는 화가 잔뜩 난 얼굴을 한 채 앨린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억울하고 화가 나 정신줄을 놓아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강하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리고 저는 알바가 아니라 강하다 입니다.” 앨린은 하다의 표정에 덜컥 겁이 났지만 순간 자신이 하다에게 느낀 귀력 때문에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앨린이 느낀 귀력은 방금 전 하다의 귀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당황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마도구가 있는데 귀력을 느낄 수가 없잖아.’ 한편 집무실에 있던 루이 또한 이상한 귀력을 느껴 매장으로 나왔더니 기둥 뒤에 숨어 있는 앤버든을 발견했다. “앤버든. 여기서 뭐하는 중인가?” 앤버든은 깜짝 놀라며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듯 입을 가렸다. 루이는 앤버든의 저런 모습에 당황했다. 앤버든은 여자들 싸움에 끼면 얼마나 피곤한지 알기에 나설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방금 이상한 귀력이 느껴지지 않았나?” 앤버든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귀력이요? 아니요. 전 저기 여자들 기 싸움이 무서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 했는데요.” 루이는 홀에 상황을 보기 위해 몸을 내밀었다. 당황한 루이는 재빨리 중재에 나섰다. “그만하시죠. 이제 그만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앨린은 하얀 양산 끝을 하다의 심장에 가져다 대고 있었고 줄리아는 비녀로 앨린의 목을 찌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루이는 앤버든의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게 여자들의 기 싸움이라고?’ “루이든님!” 앨린은 울먹이며 하얀 양산을 내렸고 줄리아도 앨린의 목에 댔던 비녀를 거뒀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됐습니다. 앨린. 이만 돌아가 주세요.” 앨린은 다음에 또 오겠다며 철판 깔린 말을 하고는 매장을 나갔다. 루이는 우뚝 서 있는 하다에게 다가가 몸을 돌려 세웠다. “다친 곳은 없는…?!!” 순간 이였지만 아까 느낀 귀력이 살짝 남아있었다. 루이는 너무 놀라 몸이 멈췄고 그 순간 줄리아가 달려와 하다를 꼬옥 안아 주었다. “하다야. 이제 괜찮아.” 앨린이 돌아가고 나자 매장엔 평화가 찾아왔다. 하다는 아직도 앨린이 손가락으로 찌른 어깨가 아팠다. 어느새 귀문 시간이 다시 돌아왔지만 매장엔 앤버든과 줄리아만 남아 있었다. 집무실에 있는 하다는 그들에게 미안했다. ‘아니 손가락이 쇠 손가락도 아니고 뭐 이렇게 아퍼.’ 하다는 서류를 정리하는 루이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물어봤다. 이 곳에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게 너무 불편했다. “저… 혹시 지금이라도 나가서 일을 하면 안 될까요?” “안돼. 저번처럼 소란이 벌어지면 처리해야 할 일이 늘어나지. 한마디로 내가 보.고.서.작.성을 미친듯이 해야 한다는 거야.” 보고서 작성이 죽기보다도 싫었는지 루이는 하다를 방 쇼파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다친 건가?” “네?” 갑작스런 루이의 질문에 하다는 놀라 대답했다. 하다는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어깨를 만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뇨. 그냥 살짝 아픈 정도에요. 다치지 않았어요.” 루이는 신경이 쓰였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안되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하다에게 다가왔다. “어어!! 어어!!” 하다는 루이를 보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런 하다를 보며 루이는 자신이 한 짓이 생각이 났다. 바보 같은 짓. “안해. 지금 밖에 귀력을 노리는 자들이 많은데 내가 그런 짓을 왜 하겠어.” 지금은 귀문시간이라 만약 방금 전과 같이 귀력을 개방한다면 밖에 있는 혼들이 정신을 잃고 달려들 게 분명했다. “아시죠? 사장님과 저와의 벽.” 하다는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기라도 하겠다는 듯 허공에다가 손으로 선을 긋고 있었다. 루이는 하는 수 없이 서랍 안에서 약통을 꺼내 보였다. “치료의 목적이라고 해두지.” 하다는 그제서야 덜 의심이 가는지 루이가 옆에 앉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상처를 봐야 하니까 블라우스 단추 좀 풀어줘.” “네!?” 하다는 두 손으로 엑스자를 만들며 몸을 가렸다. “치료의 목적.” 루이는 다시 한번 하다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하다는 더듬더듬 블라우스 단추 두 개를 풀었다. 그리곤 루이가 어깨를 볼 수 있게 한 쪽으로 내려 주었다. 하다의 새하얀 목과 어깨가 드러났다. “멍이 들었군.” 어깨엔 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었다. 루이는 연고를 손에 묻혀 하다의 어깨에 발라 주었다. “다친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군.” 루이는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방 나을거야. 내가 이 세계에서 가장 칭찬하는 건 약이 아주 잘 듣는다는 거, 그거 딱 하나지.” “감사합니다.” 하다는 옷을 올리고는 단추를 다시 잠그며 루이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다정하시네요.” 하다의 말에 루이의 한 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다정하다? 처음 듣는 말이로군.” “칭찬이에요.” 하다는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 지었다. “강하다는 이름처럼 강하지 않군.” “칭찬이 아니네요.” 루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다는 삼남매를 키우느라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해 마른 체형이었다. 루이는 툭하면 부러질 것 같은 하다의 손목을 쳐다보곤 말했다. “너의 세계에선 가난했나? 너무 말랐군.” “가난에 정도를 두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마음은 풍족했죠. 가족이 있었으니까.” 하다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루이는 자리로 돌아가 다시 서류를 보았다. 그리고 뭔가 생각 난 듯 한마디 덧붙였다. “아. 그리고 누가 단추 풀라고 하면 풀지 마.” “네?” 하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루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충분히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때 풀어.” “!!! 치료의 목적이라면 서요!” “물론 나는 그렇지. 하지만 다른 남자들은 아닐 수도 있어.” ‘지금 사장님이 제일 위험하게 느껴지는데요.’ 하다는 두 손으로 팔을 감싸 안았다. “아. 미리 말해두지만, 난 마음 없는 거엔 관심을 안 두니까 괜한 걱정 하지마.” 하다는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서재를 구경하고 있었다. 루이는 서류를 보고 있었지만 사실 방금 전 하다에게 느껴진 귀력을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귀력이 느껴졌었어. 처음 느껴보는 귀력이었는데…’ 루이는 슬쩍 하다를 쳐다보고는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럴 리 없지. 저 아이에게 그런 힘이 있을 리가 없어.’     루이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서류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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