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화 - 하다의 마도구.

3761 Words
줄리아는 그런 하다의 기분을 눈치 챘는지 안쓰러운 표정으로 하다에게 말했다. “너무 신경쓰지마. 원래 저 정도는 아닌데 오늘 숲에 다녀와서 더 예민한 건 가봐.” “숲이요?” 하다는 줄리아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앉았다. “응. 여긴 마물이 나오는 숲이 있어. 자세한 건 나중에 차차 알게 될 거야. 그나저나 이 세계에 왔을 때 뭔가 달라진 점 없었어?” “달라진 점이요?” 하다는 줄리아의 말 뜻이 이해가 가질 않아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응. 예를 들어 없던 물건이 생겼다거나……” 줄리아는 하다를 위아래로 쓰윽 훑어보며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음……” 하다는 고개를 숙이고 처음 깨어났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던 물건이 생긴 건 전단지 뿐이었고, 허리에 묶여 있던 앞치마 뿐이었다. 하다는 손가락 끝으로 앞치마 끝자락을 매만지며 혼잣말을 했다. “이걸 말하는 건가?” 그 말을 들은 줄리아는 눈을 빛내며 하다의 말을 더 자세히 듣기 위해 허리를 숙여 가까이 다가갔다. “뭔데?” 하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묶여 있는 앞치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앞치마요. 원래 없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전단지가 이 앞치마 주머니에서 나왔거든요.” 하다의 말에 줄리아는 입을 가리고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런 줄리아의 반응에 하다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줄리아의 반응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왜요. 줄리아 언니. 이 앞치마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하다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줄리아에게 물었다. 그리고 허리에 묶여 있던 앞치마를 풀기위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줄리아는 다급하게 손을 저으며 하다의 행동을 말렸다. “안돼! 풀면 안돼. 그대로 납 둬.” “왜 그러시는데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 아니에요?” 하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줄리아에게 물었다. 줄리아는 하다에게 앉으라고 손짓한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그게 너의 마도구 일 확률이 커.” “마도구요?” 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한 표정으로 하다에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마도구는 선택 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무기야.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에는……” 줄리아는 입고 있던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고 허벅지에 차여 있던 비녀를 꺼내 들었다. “이 물건을 비녀라고 부르더라.” 줄리아는 하다에게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비녀를 꺼내 보여주었다. 일반적인 비녀보다는 끝이 많이 뾰족했지만 하다는 그게 비녀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줄리아는 하다에게 보여주고는 마도구를 다시 허벅지에 넣어두고 말을 이었다. “개인의 마도구에는 다 능력치가 있어.” “능력치요?” “응. 그리고 그 마도구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며 이 극락이란 세계에서 살아가는 거지. 너의 마도구에도 능력치가 있을 거야. 아마도.” 하다는 줄리아의 말 끝에 붙여진 ‘아마도’라는 단어에 신경이 쓰였다. “아마도라면……” 하다는 질문을 했지만 알 수 있었다. 이 앞치마에 도대체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저 천 쪼가리에 불가한 것을. 줄리아는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도 그런 마도구는 처음 보거든.” 하다는 분명 그런 마도구 앞에 ‘쓸모없는’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마도구가 쓸모없다면 분명 자신은 이 가게에 민폐만 끼칠 게 확실했다. 하다의 머릿속에 순간 사장님인 루이의 싸늘했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콕 집어 ‘저런 애’라는 말까지 했는데 마도구까지 이 모양이면 안 봐도 상상이 됐다. 분명 자신의 마도구를 보면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잘하면 쫓겨날 수도 있어.’ 하다는 마음속에 불안감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줄리아에게 애타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이 마도구는 누가 정해주는 거죠? 저한테는 왜 이 앞치마를 준 건가요?” 하다의 질문에 줄리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세계로 넘어 올 때 염라가 직접 정해주는 거야.” “염라요? 제가 생각하는 그 염라 대왕 말인가요?” 하다가 되묻자 줄리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에 있어야 할 염라대왕이 왜 이 극락에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하다에게 있어서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려면 이 세계에서는 죽지 말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마도구가 이 앞치마라는 게 문제였다. 하다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앤버든이 루이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앤버든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 하다를 보고는 줄이아에게 물었다. “줄리아.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줄리아는 하다를 슬쩍 바라보고는 앤버든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다의 마도구 때문이야.” “아. 마도구요. 마도구가 뭐길래 저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있는 겁니까?” 줄리아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하다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자 하다는 심각한 목소리로 앤버든의 물음에 직접 대답해 주었다. “앞치마요.” “설마……” “네. 맞아요. 앤버든이 생각하는 거 맞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이 앞치마가 마도구에요.” 앤버든은 하다의 말을 듣고는 눈이 커지며 말을 잇지 못했다. “거짓말 같지만 진짜 앞치마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여기로 올 때 앞치마를 하고 있지 않았어요.” 아무리 정이 없어 보이는 앤버든도 하다의 말을 듣고는 안쓰러운 표정을 내비췄다. 그 표정 때문에 한 번 더 상처받은 하다는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마도구를 바꾸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었다. ‘그래. 마도구를 바꿔 달라고 하는 거야.’ “줄리아 언니. 앤버든씨. 아무래도 저 마도구를 바꿔야 겠어요.” 하다는 큰 결심을 한 듯 줄리아와 앤버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깜짝 놀란 줄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다에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뭐?! 그건 안돼! 이미 한 번 정해진 마도구는 바꿀 수 없어!” “그건 누가 정한 거죠?” 하다는 줄리아와 다르게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히 이 세계의 염라가 정한 거지.” “그럼 염라에게 말하면 되겠네요. 저의 마도구를 바꿔 달라고.” 줄리아는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저었고 옆에서 듣고 있던 앤버든이 하다에게 말했다. “극락 세계에서 그런 이례적인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마도구로는 절 보호할 수도 지킬 수도 없어요!” 하다는 답답한 듯 외쳤지만 앤버든은 단호한 듯 고개를 저었다. “조만간 하다양의 마도구에 대한 능력치는 염라가 있는 탑에서 편지가 날라올 겁니다.” 앤버든의 말에 하다는 답답한 듯 말했다. “그때까지 아무 능력 없는 이 마도구를 가진 채 지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하다의 말에 앤버든이 대답했다. “그때까지는 마도구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일단 기다리세요.” 앤버든의 말에 하다는 어떠한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이 마도구에 어떤 능력이 있을 지는 그때까지 모를 일이니까. 앤버든은 조용해진 하다를 잠시 바라보고는 말했다. “사장님께는 제가 보고하겠습니다.” 앤버든이 자리에서 일어나 루이의 집무실로 가려고 하자 하다는 재빨리 앤버든의 팔을 잡고는 말했다. “저 사장님께 꼭 보고 해야 하나요?” 앤버든은 하다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하다를 그저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하다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의 마도구 얘기를 들으시면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어날 것 같아서요. 그리고 방금 보니까 피곤해 보이시는 거 같기도 하고……” 하다는 말끝을 흐리며 도와 달라는 눈빛으로 줄리아를 바라보았다. 줄리아는 하다의 표정을 읽었는지 하다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래. 앤버든. 오늘은 루이도 이만 쉬어야지.” 줄이아의 말에 앤버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이내 곧 고개를 끄덕이며 줄리아의 말에 동의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이 드는 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하다양의 마도구 보고는 오늘이 지나고 보고 하겠습니다.” 줄리아는 앤버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곧 귀문 시간이야. 영업 준비 해야지?” 줄리아의 말에 하다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귀문 시간이요?” “응. 혼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귀력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은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야. 그때 동안만 가게 운영을 하고 있어. 그걸 귀문 시간이라고 불러.” “아 그렇군요. 귀력이란 게 정확히 뭔가요?”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면 돼. 말하자면 Hp와 같은 역할을 하지.” “그렇다면 만약 귀력이 다 하게 된다면……” “이곳에 있을 수 없어. 삼도천을 넘어가야 한다는 소리야.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고.” “귀력이란 건 정말 중요한 거네요.” 하다가 심각하게 묻자 줄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귀력은 혼 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해. 혼은 현실에서 조차 죽은 존재이지만 우리 같은 선택 받은 자들은 현실에 육체는 죽지 않은 채 숨만 붙어 있는 존재이니까.” “현실에서는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존재 군요. 저희는.” “응. 마도구가 있어 괜찮긴 하지만 그래도 혼이라고 해도 너무 쉽게 보진 마.” 하다는 줄리아의 말 뜻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럼 이제 귀문시간인데 저는 무얼 하면 될까요?” 그러자 줄리아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주방에서 요리를 담당하고 있어. 하다는 앤버든과 같이 홀을 담당해 주면 될 거 같아.” “네, 알겠습니다!” 하다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다. 비록 지금 마도구의 능력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도구의 능력보다는 일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귀문 시간이 되자 가게 운영시간을 알리는 벨 소리와 함께 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다는 눈이 커지며 옆에 서 있던 앤버든에게 물었다. “혼들은 저희랑 다르게 긴 로브만 입고 구분할 수 없다는 걸 왜 설명해 주지 않으셨나요?” 앤버든이 하다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알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다는 황당한 표정으로 앤버든을 바라보았다. 혼들은 전부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긴 로브를 입고 벽을 통과하며 들어오고 있었다. 하다는 이제서야 이곳이 현실세계가 아닌 극락 세계라는 걸 확실히 느껴 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은 일. 하다는 밝게 웃으며 벽을 통과해 들어오는 혼들을 향해 인사했다. “극락 주점에 어서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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