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개

1510 Words
도명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 건물 옥상에는 아네크와 도명 둘 뿐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누군가 둘을 미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네크, 일단 각자 흩어지는게 맞는 것 같아." "다치지마."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점프해서 다른 건물로 사라졌다. 아네크는 뒤돌아보았으나, 미행하는 사람들은 도명을 따라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띵- 도명은 얼굴을 철저히 숨기고 편의점에 들어섰다. 담배한갑을 사고 나오려는데, 편의점 문이 잠겨서 열리지 않았다. "뭐야 이거..." 서늘한 뒷통수에 도명은 몸귀퉁이를 얻어맞았다. 냉장실로 질질 끌려갔다. 몇시간이 지났을까... 도명이 눈을 뜨니 냉장실은 열려 있고 아무도 없었다. 문을 살짝 여니 핏자국이 보였다. 누가 죽었나? 싶었는데 희귀한 광경에 입을 틀어막았다. 아네크가 시체가 된 채로 편의점의 음식을 입에 쑤셔넣고 있었다. 좀비인가 싶었지만 도명을 따라오진 않았다. 아네크의 움직임을 파악하다가 반대편에서 툭 하며 작은 총알 소리가 들렸다. "아네크, 냉장실 문 닫고 오렴." 아네크는 마치 개처럼 보였다. 주인의 말을 순종하고 복종하다 못해 날이 선 사나운 개. 문을 세게 잠가버려서 도명은 냉장실에 다시 갇혀버렸다. 목소리의 정체는 누구인가... 편의점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머리를 감싸안았다. 복잡해진 생각 속 도명은 미쳐갈 것만 같았다. 주인공들은 서사가 화려하고 숨겨진 과거가 있다고들 많이 생각하지만, 도명은 전혀 아니었다. 집안 사정도 나름 좋았고, 가족관계도 화목한 편이었다. 도명은 갇힌 냉장실에서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평범한 인생살이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다. 그 때 냉장실 문이 열렸다. 아까와 다르게 여자가 서있었다. 익숙하고 낯익다. 혹시 차유정? "이도명, 일단 여기를 나가자. 나가고 다 생각하는거라고." "하... 다 알고 있구나. 관련된 비밀들을..." "비밀이라고 할 건 딱히 없어.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유정은 일단 긴장을 풀어보려는 눈치였다. 도명도 썩 싫지는 않은지 유정을 쳐다봤다. 유정은 그 때부터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란 사람. 기억나지? ...시발 아직 살아있어." "뭐? 그 때 죽은거 아니었어?" "그건 모르겠고 미친개로 악명높다는데 더 미친게 뭔지 알아?" "...?" "그 새끼 너 죽이려 찾고 있어." "날 왜 찾는건데?" 유정은 도명의 턱을 손가락으로 살짝 올렸다. 고개를 양옆으로 돌리다가 탁 놓았다. 도명은 불쾌했지만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걸 내가 알겠냐? 그 이유를 알면 이렇게 답답하게도 있지 않겠죠. 그나저나 갈곳이 있어." "왜 넌 의심이 들게 만드냐. 신뢰성이 하나도 없다." "이도명, 우리 고등학교 때 기억 나?" "잘 기억은 안나, 너랑 나랑 같이 한게 없으니까." "맞아 그게 포인트야. 차유정과 이도명은 괴물이거든. 근데 웃긴게 뭐냐하면, 복불복이라는거." 순간적으로 유정은 도명에게 키스했다. 도명은 점점 더 깊은 감명을 받았으나, 단 한순간이었다. 두 눈을 뜬 순간, 도명의 눈에 들어온 건, 초록색 칠판이었다. 도명은 수차례 볼을 꼬집어봤지만, 현실이다. 책상 서랍에는 쪽지가 들어있었는데, 열어보니 헉 하는 소리가 났다. "당신을 알아. 아주 자세히. 전생과 미래까지도." 또박또박 적힌 글귀였지만 여성인지 남성인지 적은 사람의 성별은 알수 없었다. 도명은 어깨를 툭 치는 친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뭐 그리 보냐? 이새끼 지혼자 좋은거 하네.?" "조성민, 내놔라." 뭐지? 쟤 이름을 내가 왜 알고 있는거야. 자동으로 나오는 발음. 성민은 쪽지를 다 들리게 읽었다. 배꼽을 잡고 얼굴을 젖혀 웃었다. "하 시발 소설쓰고 자빠졌네. 이새끼 6모 끝나고 돌아버린거 같은데?" 다른 덩치 큰 친구도 도명에게 다가왔다. 예상치 못한 말을 내뱉었다. "야 니동생 유정이 나 소개좀." 뭐? 유정이가 내 동생...? 이건 무슨 개소리야. 설마 차유정은 아니겠지? "유정이라고?" "그래, 존나 예쁜 네 동생 차유정. 한번만 만나게 해줘!!!" 그랬다.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감이 안잡힌 다는 것. 모든게 엉클어졌다. 이게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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