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0

813 Words
“석현 씨! 석현 씨!” ‘설마 이렇게 크게 부르는데 안 들리진 않겠지.’ 정호는 다년간의 연기로 다져진 발성을 백분 활용하여 배에 힘을 꾹 주고 연이어 석현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방문 너머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조심스레 노크를 몇 번 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정호는 조금 주저하다가 석현의 작업실 방문을 조용히 열었다. 정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큰 방이었다. 책이 빼곡하게 꽂힌 벽면을 보고 감탄하며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모니터가 여러 개 나란히 놓인 책상 앞에 앉아있는 석현의 뒷모습이 보였다. ‘설마…… 진짜로 해커인 건가?’ 정호는 왠지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어 숨을 죽이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석현은 쇼팽의 즉흥환상곡이라도 연주하는 듯이 엄청난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오른쪽에 놓인 모니터의 내용을 보며 입력하고 있었지만 석현이 입력하는 내용들은 왼쪽 모니터에 출력되고 있었다. 석현이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오른쪽 모니터의 문장들은 알파벳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영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 코드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정호가 모르는 어떤 외국어로 된 문장들이었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어 정호는 왼쪽 모니터를 자세히 보았다. 석현이 미친듯이 입력하고 있는 것은 영어로 된 문장들이었다. 이상할 만큼, 정말 이상할 만큼 속도가 빠를 뿐, 석현이 하고 있는 것은 해킹이 아닌 번역 작업이었다. 정호는 헛웃음이 나왔다. 석현은 정호가 바로 등 뒤까지 왔는데도 모른 채로 정말 연주라도 하듯 끊임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어깨 너머로 보이는 희고 긴 손가락이 유연하게 움직였다. 오른쪽 모니터로 빨려들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집중한 옆얼굴이 언뜻 보였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을 때와 똑같은 날이 선 눈이었다. ‘무언가에 집중을 하면 저런 얼굴을 하는구나, 석현 씨는.’ 잠자코 석현의 옆얼굴을 보던 정호는 작게 숨을 들이쉬고는 석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석현의 이름을 불렀다. “석현 씨.” 천천히 정호에게 고개를 돌린 석현의 눈동자가 금방 온도를 바꾸어 따뜻해졌다. 방금까지 날을 세운 듯한 눈을 하고 있던 사람과는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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