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석현이 없는 오후는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정호는 다시 서재에 들어가 보았다. 다시 봐도 정말 터무니없는 양의 책이었다. 이게 갑자기 쏟아져 내리기라도 하면 여기서 꼼짝없이 죽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별달리 할 일도 없던 정호는 찬찬히 책들을 살펴보았다. 어떤 발음인지조차 상상이 안 되는 낯선 언어들의 향연 속에 간간이 눈에 띄는 영어 제목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시간도 많은데 영어로 된 책이라도 읽어볼까.’ ‘모르는 건 석현 씨한테 물어보면서 읽으면 천천히나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정호는 눈을 부릅뜨고 필사적으로 영어로 된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중에 제일 쉽고 재미있어 보이는 걸 고르겠다는 일념으로. ‘기왕이면 아는 작품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어?” 놀란 나머지 멋대로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구석에 뒤집힌채 꽂혀있던 책을 아무 생각 없이 꺼냈는데 너무나도 잘 읽어지는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된 책이었다. 한국어를 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정호는 눈물이 날 것처럼 반가웠다. *** 석현이 통역을 끝내고 나올 즈음이면 배가 고플 것 같아 정호는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요리이기도 하고 제 집이 아닌지라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몰라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달칵, 정호가 막 완성된 파스타를 그릇에 옮겨 담고 있을 때, 석현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터덜터덜 거실로 나온 석현은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얼굴이었다. “잘 끝났어요? 이거 다 됐으니까 같이 먹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