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37

917 Words

제37화 정호는 얻어맞은 듯 멍한 머리로 창밖을 보았다. 비행기에서 늘 보이는 익숙한 구름 가득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눈 덮인 평원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석현과 함께 지냈던 이국의 풍경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호는 한숨을 내쉬며 제 손에 든 종이를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끝났다고 생각한 편지의 뒷장에 이어지는 문장이 얼핏 보였다. 시트에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켜 앉아 뒷장을 확인했다. 정호 씨,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꾹 눌러 쓴 글씨였다. ‘좋아해요’, 석현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노래하는 듯한 그 목소리로 직접. 정호는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전해 듣고 싶은 건 아니었다. 속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해 입술을 연신 깨물었다. 수많은 석현의 표정들이 떠올랐다. 저를 지긋이 보던 짙은 갈색의 눈동자, 해사한 웃는 얼굴, 제가 발작을 일으켰던 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자기 탓을 하던 모습, 저를 꼭 껴안고 놓지 않던 저녁. 정호는 그것들이 모두 거짓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 석현 씨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처음 만난 날 대뜸 ‘소정호 씨, 팬입니다’라고 했더라면, 나는 과연 마음 편하게 석현 씨 집에서 지낼 수 있었을까. 편하게 지내기는커녕 안심하고 내 정보를 건네주고 회사에 연락이나 할 수 있었을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정호는 문득 어느 정도는 납득이 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제가 아는 석현이라면, 분명 저를 위해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가장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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