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영광의 귀환

1647 Words
국경선. 새하얀 눈 위에 깃발이 빽빽하다. 이날 국경선은 보기 드물게 고요했다. 이때 군용차 한 대가 천천히 그곳을 빠져나간다. "군신을 배웅합니다!" 한 사람이 크게 외치자 수천 명의 병사들이 경례를 하며 똑같이 외쳤다. "군신을 배웅합니다!" 함성이 하늘까지 울려 퍼졌다. "정말 떠나는 겁니까?" 사나운 얼굴을 한 남자가 물었다. "…이제 이곳에 난 필요 없어." 하준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 속 아름다운 여인은 큰 눈망울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수아 씨, 조금만 기다려요." 하준이 사진을 어루만졌다. 수아는 SU 그룹의 딸이자 재계를 주름잡는 총재이다. 하지만 SU 그룹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수아는 모함을 당해 SU 그룹의 명성을 잃게 했다. 이렇게 SU 그룹의 아가씨 수아가 가난한 하준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혼 다음 날 하준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고 전쟁터로 보내졌다. "수아 씨, 잘 지내고 있죠?" 하준은 사진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3일 후, 비행기 안. "왜 굳이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 겁니까? 전투기를 타면 빠를 텐데." 명호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유난 떨고 싶지 않아. 그리고 앞으로 날 군신이라고 부르지 마." 하준의 말이 끝나자 명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때, 앞쪽에서 욕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금 장신구를 두른 남자가 한 노인을 가리키며 욕을 하고 있었다. "눈을 어디에 달고 다니는 거야?!"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는 걸 본 준우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뭘 봐! 싸움 구경났어?! 내가 누군지 알아? 나 LR 그룹 아들이야." LR 그룹이라니! 시끄러웠던 비행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준우를 바라보던 승객들도 자신이 이 일에 연루될까 두려워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가뜩이나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노인은 LR 그룹이라는 얘기를 듣자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정, 정말 죄송합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제가 깨끗이 닦겠습니다." 준우는 노인을 땅에 밀었다. "이 바지가 얼만지나 알고 하는 말이야? 천만 원이 넘는 옷이야! 당장 배상해!" 천만 원이라는 액수를 듣자 노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준우가 사납게 웃자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두 명이 일어서더니 주먹을 쥐고 노인에게 다가갔다. 주위의 승객은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봤다. 두 경호원은 얼마나 건장한지, 한 대라도 맞는다면 노인은 물론이고 젊은이도 목숨을 잃을 정도였다. 경호원 중 한 명이 사납게 웃으며 주먹을 노인을 향해 내리쳤다. 승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눈을 감았다. 타악 경호원이 내리치려던 주먹이 다른 사람의 손에 꽉 잡혔다. "뭐야?!" 안색이 어두워진 준우는 갑자기 나타난 명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쉬는 걸 방해했잖아요." 하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이것 좀 놓고 얘기하세요!" 경호원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명호는 그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해치워버려!" 준우가 명령했다. 그제야 경호원이 공격을 하기 시작했고 그중 한 명은 명호를 피해 하준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준은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한 손으로 경호원의 주먹을 쥐고 테이블을 내리쳤다. 빠직 테이블과 함께 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테이블 파편과 함께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으악!" 경호원의 팔은 책상에 걸려있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테이블의 파편이 피부 안으로 들어왔다. 명호는 손을 떼고 준우를 매섭게 바라보았고 준우는 놀라 침을 꿀꺽 삼켰다. 두 사람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준우는 도착하기만 하면 죽여줄 거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자리로 돌아가자 명호가 하준에게 물었다. "형님, 처리할까요?" 하준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정해. 여긴 전쟁터가 아니잖아." 그들을 처리하는 건 개미를 죽이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지만 하준은 참고 또 참았다. 하준이 원하는 건 수아와 함께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것뿐이었으며 더 이상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머지않아 비행기가 착륙했다. 준우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부하에게 하준을 따라가라고 명령했다. 한편, 롤스로이스 한 대가 공항 입구에 멈춰 섰다. 한 중년 남자가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 운전기사로 보이는 이 중년 남자는 김포의 최고 갑부 김지호이다. 이런 갑부가 다른 사람에게 굽신거리다니. 차 문이 열리고 갈색 옷을 입은 노인이 차에서 내렸다. 노인이 손에 든 용머리 지팡이는 마치 용이 살아있는 거 같았고 용눈에는 루비가 두 개 박혀있었다. "도착하셨겠지?" 늙은 노인이었지만 목소리는 우렁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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