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전**-4

2012 Words
“먹을 거거든.” 빨간 머리통을 밀어내고 터진 노른자로 범벅이 된 계란 프라이의 사체를 한입에 쓸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돼지.” “돼지라 배부르고 좋다.” 배를 두들기며 대꾸해 주었다. 확실히 배식 양이 늘었다. 아마 병력 보강 덕분이겠지. 며칠간 온갖 고생을 다 하긴 했지만 이런 변화는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어, 왔다.” 창가에 앉아있던 시종들이 웅성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귀를 기울이자 우웅거리는 비행선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야, 보러 가자.” “난 아직 다 안 먹었는데.” “식판 들고 와.” 시큰둥한 태오를 끌고 창문가로 다가갔다. “외계인이 올 수도 있다며.” 변방 약소국의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자라 외계인에 대한 존재는 소문으로만 접해봤다. 본성인 지구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는 나에게 이종족에 대한 호기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본 적 없어? 그래도 수도나 아카데미에선 종종 봤을 텐데.” “나 수도에 가본 적 없어. 영지 안에서만 살았거든.” 앞선 사람들을 밀치며 가까이 가 고개를 내밀었다. 키가 큰 편이라 다행이다. 거치적거리는 거 없이 창밖이 훤히 보였다. 뒤에서 태오가 투덜거리는 게 들렸지만 무시했다. 거대한 비행선이 며칠 전 내가 개고생을 하며 닦아놓은 잔디밭 위로 착륙했다. 곧바로 탑승구가 열리고 수많은 인원이 줄지어 하선했다. “어우, 징그러.” 고개를 뾰족 세운 태오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무슨 느낌인지 알 거 같다. 하나같이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시커먼 군복을 입고 우글거리고 있으니 군집 생활을 하는 괴생명체 같고 뭐 그랬다. “외계인 용병은 별로 없네.” “그러게.” 대답하는 목소리에 실망감이 서렸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존재가 몇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형에 가까운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 속에서 듣던, 거대한 두족류를 닮은 종족이나 반쯤 투명하고 수십 가지 색으로 빛난다는 종족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뭐, 따지고 보면 나도 인조 외계인 같은 거니까.’ 외계인이라지만 용병 일을 하면서 인간들과 부대낀다는 것은 어느 정도 비슷한 생활 방식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동화 속 신비로운 존재들과는 거리가 먼 게 당연했다. “너 요정 같은 거 생각했지.” 태오가 후식으로 나온 팩 주스를 빨면서 물었다.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만 해도 땀 냄새가 나는 것 같은 험악한 용병 떼는, 경비대장의 지시에 따라 각자 각양각색의 짐 가방을 들고 서관으로 향했다. “…이제 저런 사람들이랑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거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좋아하지만 이런 건 좀 경우가 다르다. 나의 씁쓸한 질문에 태오가 등을 토닥였다. * * * “저기… 담당 업무를 바꿀 수는 없나요?” 내 말에 옆에 선 태오도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우리 앞에 선 조장의 표정은 늘 그렇듯 엄격한 로봇처럼 굳어있었다. “너 말이야, 요리도 못하고 세탁도 못하고,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꼬장꼬장한 조장의 손가락이 정확히 나를 가리켰다. 물론 내가 전문 일꾼들에 비해 모자라는 건 사실이지만……. “네게 청소를 맡기는 것도 썩 내키지 않거든? 그나마 서관 기숙사 정도면 일을 망친다 해도 큰 문제는 없을 테니까 겨우 정한 거야.” 용병이 들어오면서 하인들의 담당 업무에도 변화가 생겼다. 문제는 나와 태오가 서관 지하 1층 기숙사, 그러니까 용병들의 생활 공간 관리를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흉악한 사내놈들로 바글바글한 숙소를 관리해야 한다니……. 예전에 동네 어르신에게서 군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냄새가 그렇게 고약했다고……. “근데 저는 왜요?” 태오가 반항적으로 외쳤다. “네가 이놈 뒤치다꺼리 담당 아니었어?” 아악!! 태오가 머리를 감싸며 나에게만 들릴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나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고통을 같이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하루 한 번 화장실 청소, 샤워실 청소, 공동 쓰레기통 정리, 복도 청소를 처리하면 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생활관 청소를 할 거야. 대청소까지는 필요 없으니 죽상 쓰지 마. 적어도 세탁물 수거는 안 시키잖아.” 화장실 청소라니……. 비위가 절로 상했다. 지상층의 생활 공간은 모두 자동화 설비가 되어있어 특별한 관리 없이도 위생적인 상태를 유지하지만, 서관 지하 기숙사는 여전히 구식 시스템을 자랑하고 있었다. “오늘 오후부터 업무 시작하고, 끝나면 보고해.” 휴대용 태블릿에 무언가를 휘갈겨 적은 조장은 말을 마친 후 쌩하니 사라졌다. 관리 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은 것은 나와 태오, 둘뿐이었다. “내가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 태오는 잽싼 몸놀림으로 주로 성안의 심부름꾼 노릇을 했다고 했다. 기거하는 사람이 적은 만큼 업무의 양 또한 많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편한 일 하면서 농땡이나 치다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았다는 뜻이다. “…야, 일단 복도 청소나 하자. 아까 보니까 다들 진흙 발이더라.” 태오는 죽상을 하면서도 대걸레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오늘부터 매일 거길 청소해야 한다는 거지……. 한숨을 내쉬며 양동이를 건네받았다. * * * 지하 층계를 내려가자 뜻밖의 인물 둘이 복도 한쪽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보였다. 한 명은 경비대장인 제이고, 다른 한 명은 피트다. ‘으으…….’ 나를 발견하자마자 피트의 낯빛이 확 바뀌었다. 그 성벽만큼이나 집요하고 끈질긴 시선이 들러붙었다. “아하, 너희들이 이 돼지우리 청소 담당이구나?” 경비대장이 나와 태오를 보며 짓궂게 물었다. “노동 같은 건 못 하겠다고 생떼나 부릴 줄 알았는데 의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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