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의 분위기가 뜨거워지고, 야진국의 무녀들도 하늘하늘 박자에 맞춰 춤을 췄다. 하얀 비단옷은 은색의 테에 반짝이며 빛을 발하면서 그 아래 가려진 뽀얀 살결을 보일락 말락 하게 드러내며 상상을 자극했다. 사람들은 뜨거운 열기에 심취하며 서로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한창 상기되어 있는 황제폐하는 왕후의 눈치도 삼간 채 무녀들을 끌어안고 있었고.
다만 최아만이 황제폐하의 바로 아래에서 좌우로 몸을 비틀거리며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거 마냥 조금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거였다. 그러다 순간 술잔을 들고 슬금슬금 황제폐하인 최명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잔을 들었다. 기분이 들떠있던 최명은 최아를 보더니 몸을 일으켜 잔을 받았다.
최아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말했다.
“부황께서 말하기를 야진인들이 소녀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최명은 떨떠름해서 답했다.
“음... 그래, 뭐가 갖고 싶은 거냐?”
야진에서는 각종 보석이랑 주옥들이 많았다. 그건 많은 여인의 환심을 사기에 딱 좋은 물건이었고 더군다나 최아는 나라의 공주님으로 당연히 이런 것들을 원한다고 생각했던 최명이었다. 하지만 최아의 대답은 꽤 예상을 빗나가게 되고.
까르르 웃음을 짓던 최아는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거였다.
“소녀 야진국 대군의 아들인 한강류를 원합니다.”
이때 강하익의 손이 강하게 떨렸다. 허공에 들려있던 술잔의 술도 흔들리며 밖으로 새여 나와 옷을 적시였다. 경악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으로 위에 앉아있는 최아를 뚫어지라 보았다. 현란한 색채가 눈부시는 옷을 입고 태연자약하게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최아를. 오직 강하익만이 최아의 술잔에 감긴 손가락이 조금 위로 치켜세워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자신의 몸에 걸린 장신구처럼.
그 찰나, 아까 최아가 했던 그 의미심장한 말이 떠오른다. 자격을 회복해주겠다더라... 과연 그런 뜻일 지도? 입이 떡 벌어진 채 벙쪄진 강하익은 말을 하지 못하였다. 연회를 즐기던 사람들의 시선은 아직도 최아의 몸에 나란히 멈춰져 있었다. 가히 상식에 어그러진 광언이라 할 수 있겠다. 하나 단 한 사람만 제외였으니. 바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설강이었다. 그는 지금 강하익과 마찬가지로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최아의 말소리가 깃털처럼 앉은 거 둥둥 떠다니다 마침내 바닥에 툭 떨어졌다. 고요해진 정적이 얼마 지속하지도 못하고 야진의 시찰단속에서 묵묵히 앉은 거 소년이 순간적으로 뛰쳐나왔다. 하얀 천으로 둘린 소년은 몸이 금빛의 장신구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오로지 텅 비워진 이마와 금발의 곱슬머리만 정갈하게 묶여서 휘날리었는데. 하지만 금발은 결코 정교한 얼굴을 가릴 수 없었다.
한강류의 시선은 화살같이 최아의 가슴팍에 팍 꽂아졌다. 그 뒤 표준적인 서오의 말투로 윽박질렀다.
“불가능하다!”
이건 한강류의 처음이었고 또한 최아의 처음이기도 했다. 야진국 대군의 아들이라, 사람들은 그를 사막의 하얀 초승달이라 칭했다.
최아는 국자감에 다닐 때 줄곧 그다지 진지하지 않았고, 머리 속에서 궤짝을 뒤져도 상대방의 미모를 형용할 수 있는 칭찬할 만한 몇 마디가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최아는 눈을 깜빡이더니 소년한테 찬란한 미소를 날렸다.
“어디서 난리법석이야!”
적적해진 공기는 단숨에 얼어붙었다.
대신들은 그 분노의 부르짖음에 저마다 몸을 숙이고 꿇어앉았다.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장신구들이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가 쨍그랑거렸다. 서오의 발단한 염색기술을 겸하고 있었다. 대신들은 저마다 알락달락한 옷들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그런 옷들은 지금 이 순간 일순에 무너져버리는 무지개처럼 바닥에 와락 쏟아져 있었다.
기껍던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최명은 몸을 일으켜 대립하고 있는 둘을 번갈아 보며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최아는 두 눈을 번뜩이며 겁먹은 고양이처럼 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명을 보며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눈빛으로 말했다. 아리따운 얼굴에 흐릿한 빛깔이 한층 겹 씌워져 왕후인 어머니를 연상케 했다. 그걸 본 황제폐하는 한참을 머뭇거리며 글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거였다.
“어험...”
드디어 최명은 황후의 마른기침을 들며 주의를 사고는 운을 떼려고 하는데 문뜩 최현이 먼저 일어나 선수를 쳤다. 최현은 최아를 보며 따끔하게 말했다.
“네 신하도 아니고, 어디 그러는 법이 있어?”
하지만 미간을 찌프린 최아는 전혀 그 말뜻을 터득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되려 그 말을 들은 한강류와 강하익은 최아보다 먼저 자신의 분수를 알아차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