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는 눈 깜짝할 사이에 가뭇없이 사라지고, 밤이 되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런 밤바람과 같이 맞장구를 쳐주는 듯 매미 소리가 외청을 때렸고. 붉은 새총알이 밤 공기를 휘릭 갈랐다. 그리고 지저귀는 매미에 적중하면서 딱 소리가 났다. 대단한 새총 솜씨였다. 이윽고 시끄러웠던 밤 공기가 적적해지는 듯 싶었으나 뒤따라 오는 건 거친 숨소리였다. 최아는 새총을 바닥에 던져버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죽림 속에서 대나무 잎들이 바람에 서로 스치는 소리가 사락사락 들려왔다. 그중에는 어느 새부터인가 또다시 매미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
“휴... 끝도 없네...”
최아는 혼자 계속 숨을 내뱉으며 맘속의 평정을 되찾아려 애썼다. 하지만 이 고요함 속에 예사롭지 못한 소리를 감지하고는 머리를 뒤로 홱 돌렸다.
뭐지?
뒤에는 자신을 뒤따라 오던 몇몇 하인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건... 하인들이 내는 소리가 아니야! 그녀는 미심쩍은 생각에 하인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어?”
하인들은 일동 고개를 저었다.
착각인가...? 그러나 최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뭔가가 있다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목을 빼 들고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대나무 잎들이 널브러져 있는 땅을 밟으면 절로 사락사락 소리가 나는 거긴 한데... 진짜로 착각이었나? 그러다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접니다.”
희미한 그림자가 대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눈에 들어왔다. 강하익이었다. 널찍한 옷이 밤바람에 하늘하늘 거리며 촘촘히 나 있는 대나무한테 매달리었다. 느린 발걸음으로 최아한테까지 걸어와 간단히 인사를 올리고 말을 건네오는 거였다. 맑은 두 눈은 거뭇한 밤하늘 아래 최아를 꼳꼳이 잡고 있었다.
역시 인기척이 났다니깐!
최아는 긴장을 풀고 태연하게 강하익을 보며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여기에 웬일로 온 거야?”
혼사에 관해서는 두 나라의 합의를 끝으로 쏜살같이 진행되었다. 행여나 변덕스러운 최아의 맘이 바뀌기라도 할까 봐 더 빨리 진행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비록 황제 폐하는 이에 대해 많이 언짢아했지만 최아가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랐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최아가 손을 벌리면 뭐든 손아귀에 넣어야만 적성이라 황제는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강하익도 그중 하나였다. 최아의 한마디 말에 물건마냥 옆에 붙여져서 놀잇거리 취급을 당하였지만 현재 혼사가 결정 난 이상 그만 도로 놓아주었었다. 게다가 약속대로 박탈해버렸었던 과거 급제의 자격을 회복까지 해주었는데 웬일인지 도로 자발로 다시 찾아온 거였다. 그토록 하고 싶었을 학문도 실컷 하게 해 주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애당초 최아는 궁금해 하면서도 만나고 싶다는 강하익의 요구를 거절했었는데 한 번이고 두 번이고 계속 청을 드리는 강하익에 제대로 넌더리가 나버리고 말았다. 전에 겪었던 일들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래 평생 학문을 닦았던 이였는데 그런 취급을 받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래서 저렇게 신경질적일지도, 라는 생각을 깃털처럼 하고 있었다.
또한 난생처음 해보는 혼사에 어머니도 없고 대신 일을 도맡아 해주는 왕후한테마저 눈칫밥을 먹고 있었느니.
‘화친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이었어?’
최아는 종일 이런 생각에 휘말려서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러다 겨우 시간을 내고 아랫사람들과 같이 지친 마음을 달래려고 하는 참에 강하익의 얼굴을 보게 되었으니 놀랍기도 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전 그냥 제희님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러는 겁니다.”
그러다 강하익은 뒤따르던 하인들을 스윽 훑어보다 다시 눈길을 최아에게 돌렸다. 자리를 내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최아는 손을 휘휘 저으면서 대꾸했다.
“이미 나한테 혀가 다 뽑은 사람들인지라 걱정하지 마. 함부로 어디 가서 발설하지 않을 거야. 그냥 할 말 있으면 어서 해. 묻고 싶은 것이 뭔데?”
최아는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세상 잔인한 얘기를 차갑게 뱉고 있었다.
서늘하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고, 강하익은 최아의 교염한 얼굴을 보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
“제희님은 제 얼굴이 진짜로 출중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이렇게 묻겠습니다. 실로 강한류 그자와 혼사를 치르려고 하시는 겁니까?”
사락사락 최아의 소리가 더 거세진다. 밤 공기가 거칠게 불어오는 건가? 최아는 엄숙했고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너한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강하익의 맘속에는 이미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살기가 느껴진다. 이름 할 수 없는 강렬한 살기! 마구 요동칠 기세로 일렁이던 파도가 어느새부터인가 다시 조용해지고. 강하익이 다시 눈길을 위로 향해 최아를 흘겼을 때 최아가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저 도리 머리가 뭘 뜻하는지, 강하익은 한순간 알아차리었다.
은은히 들려오던 매미 소리가 다시 귀청을 때리면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야밤의 매미는 날개가 돋아나도 그저 남은 목숨을 겨우 부지해 나가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그 대나무 숲을 벗어나지는 못하는 운명이었나. 어쩌면 아침저녁 기껍게 보낸다 한들, 대나무 숲은 커녕 매달려 있던 그 한그루의 참대에서조차 도망칠 수 없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