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비 운지는 가을의 햇볕을 무릅쓰고 가마에서 내려 궁문 앞에서부터 걸었다. 오늘은 원후의 기일이라 그녀는 이황자와 함께 구전에서 향을 사르고 황급히 궁문으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얼굴엔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녀가 하인과 궁벽가에 서서 휴식할 때 마침 지나가는 황후와 마주쳤다. 황후는 황금 날개가 달린 봉황머리 장식을 하고 이마에는 손가락 마디 크기의 구슬을 하고 있었는데 귀티가 물씬 풍겼다. 황후는 커튼을 걷고 냉혹한 표정을 숨기고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황비, 누굴 만나러 이렇게 황급히 가는 거야? 참, 제희가 오늘 궁 밖에서 연회를 연다는데 그쪽도 초대했겠지?” “제회가 폐하의 총애를 받아 오만해져서 하인을 배려할 줄 모른다니까. 이렇게 더운 날씨에 마중 나오지도 않다니. 내가 사람 파견해서 널 데려다줄게.” 황후는 최아가 운지를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하인으로 비꼬아 말했다. 하지만 운지는 웃음을 지으며 단정하게 거절했다. “마마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제가 받을 복이 없습니다.” 황후는 말문이 막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너희들이 언제까지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지 보겠어.” 황후의 예리한 시선이 위아래로 째려보았지만 운지는 여전히 공수하고 웃으며 조금의 허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공격해도 소용이 없자 황후는 재미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최아가 바보라고 생각했다. ‘운지가 비위를 맞추는 것도 모르고 이렇게 멋대로 미움을 사다니.’ 황후가 커튼을 내리자 수레는 운지 앞으로 지나갔다. 운지가 황급히 궁문을 나서자 이황자 저택의 마차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