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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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빛나던 달은 조유승과 유정의 사이를 밝혀주고 있었다.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인 듯 유정과 조유승에게 다가왔고, 둘은 서로의 눈빛을 알아보고서 눈물을 글썽인다. “도령.” “나를 기억하느냐?”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보고 싶었다.” 그리움에 갈 길이 없었던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에게 맞닿아 눈빛에 스며들고 어느새 서로의 품에 안긴다. “왜 이제야 나타나신 것입니까.” “내가 너무 늦게 왔구나. 다신, 널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안도감의 눈물이었을까. 그리움의 눈물이었을까. 그동안 쌓여왔던 서글픔을 말해주듯 유정의 눈에서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울지 말거라. 네가 이리 울면, 내 마음이 아프다.” “너무 좋아 그런 겁니다.” 유정의 머리를 쓰다듬던 조유승은 품에 지니고 있던 부채를 꺼내 유정의 손에 쥐어준다. “도령, 이것은.” “어릴 적, 단령에서 네가 나에게 준 것이다. 기억하느냐?”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여태 품에 지니고 계신겁니까?” “이제 알겠느냐. 난, 하루도 너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조유승은 소정에게 맞아 빨개진 유정의 왼쪽 볼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는 유정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한다. “아프지 않느냐.” “괜찮습니다.” “이제 아무도 너를 아프게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 어찌 해야 합니까.”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은 너를 잊지 않으려, 잠에 들지 못한 밤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저 또한, 도령이 저를 잊었을까. 혹 다른 여인과 이미 혼인을 하지 않았을까. 얼마나 그리웠는지 아십니까.” “유정, 너의 이름을 아는 것조차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도령,.” “처음만난 것처럼,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러니, 아파하지 말거라. 너의 신분이 기생이든 평민이든 노비든, 나는 상관없다. 그러니, 울지 말거라.” 그리워하던 이를 만나 느꼈던 기쁨도 잠시인 듯, 유정과 조유승은 기생과 양반이라는 둘 사이 신분에 가로막혀 있다는 생각에 조금씩 몰려오는 슬픔을 느낀다.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야 겨우 만나게 되었는데.” “왜 이리 떠는 것이냐. 추운 것이냐? 얘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자꾸나. 지금 당장, 이 아이와 함께 있을 방으로 마련하거라.” 눈앞에서 펼쳐진 조유승과 유정의 재회에 당황스러움을 머금은 채 어찌 할 줄 몰랐던 소정은 자신의 여자를 지키려는 조유승의 모습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유정은 저와 따로 할 얘기가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아이를 불러드리겠습니다.” “다른 이는 필요 없다.” “도령. 여긴 사랑채가 아닙니다. 엄연히 손님을 맞이하는 곳입니다.” “얼마를 치르던 상관없다. 부르는 값을 줄 테니, 이 아이와 같이 있을 것이다.” “그건.. 아니 됩니다.” 유정의 뺨을 때린 소정이 얄밉게 보였던 조유승은 소정에게 날카롭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소정은 다른 남정네들과는 다르게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는 조유승이 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뛰고 있었다. "보통 사내가 아니구나. 이런 사내가 어떻게 유정을.." 그때, 소단가로 들어 와 있던 박승조는 유정의 뒷모습을 알아보고는 유정이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어둠이 걸린 그날,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던 박승조는 옆에 있는 사내가 조유승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얼른 유정을 자신에게 데려올 생각에 걸음이 빨라진다. ‘유정이 다른 사내와 손을 잡고 있는 것인가?’ 유정에게 다가가던 박승조는 눈앞에 있는 사내가 조유승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조유승 자네가 여긴 어떻게..” “승조가 자네 아닌가. 이걸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찾았다네. 내가 어릴 적 만났던 그 아이를.” 박승조를 바라보며 조유승은 활짝 미소 짓는다. 조유승의 옆에 서 있는 유정은 수줍은 듯 볼이 붉어져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박승조는 속에서 불이 나는 것 만 같았다. “자네가 찾던 아이가.. 옆에 있는 아이인가?” “그렇다네. 사연은 들어 봐야 알지만, 이리 가까이 있었다니 믿겨지지가 않는다네.” “자네가 찾던 아이가 유정이라니.” “자네 유정을 알고 있는 건가?” “소단가에 들려 가끔 보아 얼굴은 알고 있었다네.” 박승조는 조유승의 옆에 있는 유정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유정은 박승조의 뜨거운 시선에 손을 잡고 있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조유승의 옷깃을 붙잡는다. “추운 것이냐? 얼른 들어가야겠다. 여기 이 사람들과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거라.” 일이 커질 것 같은 느낌에 소정은 할 수 없이 조유승의 말을 따른다. “네. 그러지요.” 소정은 어느 순간부터 유정과 손을 잡고 있는 조유승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는 감정들에 휩싸여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아랫입술을 깨문다. “제가 음식과 아이들을 데려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그러시오.” 소정을 처음 본 순간부터 눈을 떼지 못했던 김조생만이 소정의 말에 대답 한다. 조유승과 나란히 앉은 유정은 평소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감이 낯설어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함을 느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말해 줄 수 있느냐?”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겁이 납니다.” “이제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제 곁에 있어 주실 수 있으신 겁니까.” “내가 있을 곳은 너인데. 너를 두고 내가 어딜 가겠느냐.” “이런 제 모습에 실망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동안의 일은 내게 상관없는 일이다. 너만, 내 곁에만 있어주면 된다.”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도령은 모를 실겁니다.” “부채를 들고 나무 아래에서 춤을 추던 너의 모습이 이리도 눈에서 선한데. 지금 내 앞에 있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 불이 켜진 방안에서 유정은 조유승을 바라보고는 어릴 적 단령에서 본 조유승의 모습이 겹쳐 보여 피식 웃는다. “내 얼굴에 뭐가 묻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저.” “그저?” “어릴 적 단령에서 본 도령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나온 것뿐입니다.” “너는 변함없이 어여쁜 꽃 같구나.”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 순정을 담고 있는 갈색 눈동자 그리고 붉은 입술은 어여쁜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런 유정의 모습을 눈에 담은 조유승은 심장이 미칠 듯이 뛰기 시작한다. “이리도 좋은데. 그동안 너에게서 멀어져 갔던 내가 밉구나.” 조유승은 유정의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다 유정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유정과 조유승의 애틋함을 앞에 앉아 지켜보고 있던 박승조는 질투심에 휩싸여 술을 벌컥 들이킨다. “유정. 여기 앞에 앉은 자는 박승조라고 하고, 나의 오랜 벗이기도 하지.” “인사 올립니다. 승조 도령.” 어제까지도 자신의 품에 안겼던 유정이 조유승의 품에 안겨 있자, 박승조는 가슴이 아려와 통증을 느낀다. “자네가 찾던 사람이 기생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승조.” “자네 아버님이 이 일을 아신다면, 가만히 있지 않으실 걸세.”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네. 허나, 아버님께 말씀드려 이 아이를 집으로 들일 걸세.” “그게 가당키나 할 것 같나? 자네 아버님이?”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일세.” “자네가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는가?” “승조, 오늘 농이 지나친 것 같네.” “지금 농을 하는 것이 아니네. 기생을 집으로 들인 다라, 첩으로 삼아 노리개로 삼을 작정인가?” “지금 무슨 말은 하는 건가!” “내 말이 틀린 말이 아니지 않은가. 저 아이는 결국 첩이나 노비 밖에 되지 못할 걸세. 절절한 마음 따위 얼마나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자네같이 명문가 집안에 기생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이미 술에 취해 있었던 박승조는 조유승과 유정의 마음 따위 신경 쓰지 않은 채, 상처받은 자신의 마음을 메우려 조유승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이어갔다. 그 말을 듣던 조유승은 유정을 바라본다. “유정, 잠시만 나가 있어라.” “도령,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잠시만 나가 있어라. 금방 볼 것이니.” “네. 그럼 나가 있겠습니다.” 조유승의 말에 유정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하늘에 떠있는 별을 바라본다. 평소와 달리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닿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에, 별들을 향해 손을 뻗는다. “닿지 않는구나. 눈앞에 있어도 잡히지 않는구나.”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기생과 양반이라는 신분이란 벽에, 애달픔을 느끼고 있는 유정을 발견한 홍초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유정에게 다가간다. “유정, 문지방에게 옷감은 가져다주었어?” “응. 닷새 뒤에 가면 될 것이야.” “근데 여기서 무얼 하고 있었던 게야?” “그게.. 안에 계신 도령들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셔서.” “그래? 남정네 하나 다룰 줄 몰라서야.” 유정이 방문을 열고 나간 뒤, 조유승은 박승조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술 한 잔을 마시고는 박승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승조, 자네도 이 소단가에 마음이 가는 이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자네는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줄 알았네. 헌데, 왜 이리 말에 날이 서있는 건가?” “그걸 내입으로 굳이 말을 해야 하는가.” “그게 무슨 말인가?” “저 아이가 내가 마음에 품은 아이었다네.” “지금 무슨 말은 하는 건가..” “듣지 못하였는가? 저 아이가 내가 마음에 품은 아이라고 말을 한 걸세.” 박승조의 말을 듣던 조유승은 당황스러움에 말을 잇지 못하고, 박승조는 답답한 마음에 방문을 열어젖히며, 조유승에게 한마디를 던지고는 밖으로 나간다.   “유승, 오늘 자네를 보고 알았다네. 유정을 향한 내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평소, 유정과 밖에 서 있던 홍초는 밖으로 나온 박승조를 보고, 달려가 팔짱을 낀다. “도령, 안 그래도 지금 찾아뵈러 가던 참이었는데.” “이거 놓아라.” “아직 밤이 그리 깊지 않았으니, 한잔만 더 하시고 가시지요.” “이거 놓으래도!” “승조 도령..” 박승조에게 내쳐진 홍초는 바닥에 내팽겨진다. 그 뒤로 조유승이 밖으로 나와 박승조의 이름을 부른다. “승조, 멈추시오.” 조유승은 박승조를 애타게 불러보지만, 박승조는 어느새 소단가에서 자취를 감춘다. “무슨 일이십니까. 도령.” “아무 일도 아니니, 걱정 말거라. 유정. 그리고 방에서 들은 얘기는 걱정할 거 없다. 너를 반드시 내 옆에 둘 것이니, 걱정하지 말란 말이다. 내 말 알아듣겠느냐?” “그럼,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기다리고 있으면 도령을 볼 수 있는 거지요?” “당연한 걸 왜 묻는 것이냐. 매일 너를 보러 올 것이다.” “저 때문에 도령이 다치실까 두렵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유정을 본 조유승은 유정의 두 팔을 잡고서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유정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이 부채는 이제 네가 가지고 있어라. 네가 이걸 놓지 않는다면, 언제나 나는 네 곁에 있을 것이다.” “도령,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눈을 보거라. 유정." "도령은 두렵지 않습니까." "내겐 널 다시 잃을까 두려운 마음뿐이다." "저 때문에 도령이 다치실까 두렵습니다." "무엇을 염려하는지 안다. 허나, 지금 네 앞에는 내가 있지 않느냐.. 왜 내 눈을 피하는 것이냐." "눈물이 나와 그런것뿐이옵니다." "잘들어라. 유정. 난 이제 널 놓지 않을 것이다. 너 또한 그래주겠느냐?" "..........." "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냐.." "저를 한번만 안아주세요." 혼란스러운 마음에 대답을 하지 못한 유정은 조유승에게 안긴다. 서로가 서로를 향한 마음이 라는게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 조유승과 유정은 서로의 온기에 가슴이 뛴다. "이리도 좋은데, 널 두고 내가 어딜 갈 수 있겠느냐."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도령." 유정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던 조유승은 유정의 머리뒤쪽을 한팔로 휘감고 눈물이 떨어진 유정의 볼에 입을 맞춘다. 조유승의 입맞춤에 유정은 손끝에서 부터 오는 설렘을 느끼느라 움직일수 없었다. 조유승의 입이 살짝 떨어지자 둘 사이를 감싸고 있던 긴장감으로 주변 공기가 무거워진다. 두사람은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것만 같았다.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도령을 만난 지금에서야 꿈에서 깨어난 것 같습니다." "나도 꿈만 갔구나.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 내일 날이 밝으면 아버님께 말씀 드릴 생각이다. 너를 여기서 데려 올 것이다." "그럴 수 있습니까? 제가 도령 곁으로 갈 수 있을까요.." "조금만 기달려다오." "지금, 여기서 무얼 하시는 거죠?" 음식과 아이들을 데려온 소정은 밖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조유승과 유정을 보게된다. "그게, 오늘은 이만 가보겠소. 답례는 방안에 놓아 두었소." "답례라. 그러시지요. 도령." "유정, 이걸 보며 나를 생각해다오." "네. 조심히 가세요. 도령." 유정의 손에 쥐어진 부채를 가리키며 조유승은 다음을 기약하고 서둘러 소단가를 나간다. 말없이 옆에서 모든것을 지켜보고 있던 소정은 조유승이 소단가를 나가자 유정를 향한 질투심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유정, 잠시 나와 얘기좀하자구나. 그리고 너희들은 이만 들어가서 쉬어도 좋다." 유정을 데리고 소정의 방 앞에 있는 작은 연못가 앞으로 간 소정은 유정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소정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소정은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내린다. 유정이 눈을 아래로 내리자 보이는 풍성한 속눈썹 마저 소정에게는 질투가 날 것만 같았다. "고개를 들어라. 어서!" "무엇을 물어 보실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무엇을 물어 볼 것 같으냐." "조유승 도령은 저와 어릴 적 마음을 나누었던 분이십니다." "마음을 나눴더라. 어릴 적, 마음을 나누었던 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허나! 내가 널 이리로 부른 연유가 뭔지 아느냐. 유정?" "저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연유가 있으신겁니까? 제게 말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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