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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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자신이 나누는 이야기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는 순길이 식당에 가장 늦게 들어왔지만 여진은 제가 아들이 하는 말을 믿어도 될지 순길에게 물었다. “순길아, 우빈이가 하는 저 말을 내가 믿어도 되겠니?” “입학서류는 제가 준비했으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귀인 따님이라 도련님이 상당히 높은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사장님이 생각하시는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귀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중요한 일은 뭐니? 혹시 너희들 어제 새벽에 나갔다 온 일이랑 관련 있는 거야?” “비밀을 요하는 일이라 자세하게 설명 드리지 못하니까 최 실장한테 이층 방 깨끗하게 정리하라고 꼭 얘기해 주세요” 비밀이라며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는 아들 말에 여진은 한숨을 내쉬며 김 여사를 불러 음식을 마저 올리라고 말했다. 주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은 빠르게 음식을 옮기며 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식사준비가 끝낸 직원들이 주방으로 모두 물러나자 물잔을 들고 물을 마시려던 우빈은 엄마에게 아들을 쓰레기로 보고 있냐며 삐쳤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명색이 지성인인데 민증도 안 나온 꼬마를 침대에 눕혔을까! 생각해보니까 나여진여사 아들에 대한 믿음이 너무 없으시네” “지성인답게 사생활도 모범적이었으면 아들에 대한 믿음도 깊었을 텐데 엄마도 아쉽다” “나니까 나여진여사 밑에서 구김살 없이 자랐지 웬만한 애들은 주눅들어서 눈도 못 맞추면서 자랐을 거야” “네 말대로면 네가 엄마보다 기가 더 세다는 거야. 그러니 엄마한테 그런 말도 막하는 거지” “그러게 처음부터 설명을 잘했으면 이사장님이 추궁할 일도 없었는데 왜 건성으로 말을 해서는 네 무덤을 네가 팠어” 제가 더 이상 추궁 받지 않도록 순길이 엄마 편을 드는 말을 하자 우빈은 웃었다. “그래서 학생은 언제 오는데?” “점심 먹고 순길이가 데리고 올 거야. 나는 일이 있어서 아침 먹고 나갔다 저녁 늦게 들어오니까 엄마가 나 대신 잘 챙겨줘” “미리 말을 했으면 준비를 좀 했을 거 아니야. 우리 집에는 여학생이 쓸 만한 물건들도 없는데” “필요한 건 내일 저랑 같이 나가서 사고 오늘은 하루는 있는 걸로만 준비해 주세요” “뭘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그래” “이 집에 처음 들어오는 손님이 나 때문에 들어오게 됐으니 신경 써야지” “순길아, 네가 보기에도 우빈이가 지나치게 관심을 두는 것 같지 않니!” “귀인의 따님이라 신경이 많이 쓰이나 봅니다” 자신을 놀리는 듯한 순길의 말에 우빈은 웃으며 식사를 시작했고 여진과 순길도 늦은 아침을 시작했다. ***** 초희가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겨울방학 특강을 등록한 초선은 새벽까지 공부하고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학원을 가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부자리에서 벗어났다. 평소와 달리 집안 분위기가 밝아졌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고 학원갈 준비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하던 초선은 거실에 있는 엄마를 보고는 학원 갈 준비를 마치고 나오는 시간에 맞춰 식사를 내달라는 말을 남기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가르치는 아이들 시험지를 채점하고 있던 엄마는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점심 이후 자신을 데리러 오겠다며 꼭 필요한 물품 위주로 간단하게 짐을 꾸리라는 메시지를 받은 초희는 공부하느라 늦게 잠들었던 언니가 씻으려고 욕실로 들어가자 그제서야 짐을 꾸리기 위해 작은 방으로 들어가 언니가 욕실에서 나오기 전에 빠르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고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채 방으로 들어온 초선은 짐 가방을 챙기고 있는 초희를 흘긋 바라보더니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하고 다섯 명이 앉으면 꽉 차는 좁은 거실로 나가서는 밥상 앞에 혼자 앉았다. 다른 가족들은 상관없이 스케줄을 위해 먼저 식사를 한 초선은 식사가 끝나자 학원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 엄마랑 마지막으로 함께한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던 초희는 저를 데리러 오기로 한 최순길이라는 사람이 집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보내오자 서둘러 설거지를 끝내고 챙겨준 가방을 어깨에 메고는 엄마 아빠와 인사를 했다. “나 이제 갈게” “데리러 온다고 한 사람은 왔어?” “집 앞에 도착했다고 문자 와서 지금 나가면 돼" "아빠는 언제 출발해?” “월요일 아침에 출발한다고 연락 왔어” “거기 가서 또 사고 치면 엄마가 이혼한다고 했으니까 절대 사고 치지 마. 또 사고 치면 나도 더는 아빠 못 도와줘” “걱정하지마. 아빠 이제 사고 안 칠 테니까 너도 가서 공부만 열심히 해” “아빠는 오늘도 밖에 나가면 안되는 거 알지?” “알고 있어. 아빠 걱정 그만해” “아빠가 가는 곳에서 일 열심히 한다는 소식 들으면 그 때부터는 안 할게” “엄마 혼자 찬이랑 언니까지 챙겨야 하는 데 괜찮겠어?” “네 아빠만 사고 안 치면 엄마도 걱정 할 일 없어. 찬이도 그렇고 초선이도 자기 일은 알아서 잘하잖아” 작은 대문을 열리고 은초희 학생이 밖으로 나오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순길은 초희 손에 들려있는 짐 가방을 건네 받은 후 자동차 뒷문을 열고 초희 학생을 먼저 태운 후 트렁크를 열고 짐 가방을 넣었다. 어린 딸을 배웅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엄마 아빠는 비싼 자동차를 끌고 와 제 딸을 데리고 가는 남자에게 잘 부탁한다며 허리 숙여 인사했다. ***** 최순길이라고 했던 남자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가는 초희는 앞으로 제가 살게 될 ‘성원재’에 대한 소문을 머리 속에 떠올렸다. 산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유럽 성처럼 높은 담만 보이는 곳으로 강령에서 가장 존경 받는 PA그룹 오너가 살고 있는 곳으로 달과 별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었다. 짙은 썬팅이 되어있는 블랙세단이 검문소 입구에 모습을 보이자 근무를 서고 있던 경호원들이 목례 후 차단기를 열어 차량을 통과 시켰다. 검문소를 지나서도 말끔하게 정돈된 길을 계속 달리는 자동차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숲이 무성한 산을 바라보던 초희는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이 산에 내가 들어왔네' 검문소를 지나고도 꽤 산길을 달린 자동차가 높은 철문이 멀리 보이자 서서히 속도를 줄이다 철문 앞에 멈춰 섰다. 자동차가 철문 앞에 멈춰 서자 커다란 철문이 서서히 열렸고 순길은 다시 운전해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철문 안으로 들어 간 차량은 잘 닦인 길을 따라 계속해서 안쪽으로 들어갔고 차량이 다니는 길 양 옆으로는 관리가 잘 된 잔디와 크고 높은 나무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끈 순길은 뒷좌석에 앉아 있는 은초희 학생에게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본채 앞에 차량이 멈춰 서자 건물 앞에서 근무를 서고 있던 경호원들이 일사 분란하게 차량으로 다가왔다. 경호원이 뒷문으로 다가와 손님이 내릴 수 있도록 자동차 문을 열어주는 사이 트렁크에서 짐을 꺼낸 다른 경호원은 운전석에서 최순길실장이 내리자 그에게 자동차 키를 받고 자동차에 올랐다. 경호원이 트렁크에서 꺼낸 짐이 본채 현관문 앞에 놓여져 있는 것을 확인한 순길은 앞에 대기하고 있는 경호원에게 이사장님이 있는지 물었다. “이사장님 본채 안에 계시지?” “예. 응접실에 계십니다” 이사장님 동선을 확인 한 순길은 이제는 한 집에서 살게 될 은초희 학생을 데리고 본채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지나 중문을 열고 초희를 먼저 안으로 들인 순길은 중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초희에게 저를 따라 오라고 하고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이사장님에게 다가갔다. “손님 도착하셨습니다” “어서 와요, 이쪽으로 앉아요” 순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여진은 순길보다 몇 걸음 뒤에 서 있는 초희에게 가까이와 앉으라고 하고는 순길을 올려다 보았다. “순길이도 바로 나가야 하니?” “네.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도련님이랑 같이 움직여야 해서 저도 늦게 들어올 겁니다” “얼마나 늦을 것 같니?” “새벽은 되어야 돌아올 수 있으니 기다리지 말고 일찍 주무세요” “회장님이 너희한테 일 맡겼니?” “아닙니다. 도련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알았다. 무슨 일을 하길래 그 시간에 집에 들어오는지 모르지만 몸 조심해” “알겠습니다. 도련님이 새로 작업하는 일이 있어서 그런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너희들 어디 또 매장 오픈 하는 거야?” “네..” 사실대로 말을 할 수 없으니 순길은 짧은 한 단어로 답을 했다. “일을 하더라도 식사는 꼭 챙기도록 하고” “네,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순길이 인사를 하고 응접실을 나서자 여진은 제 앞에 앉아 있는 초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이라고요?” “네” “은초희 학생을 여기로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죠?” “네, 차우빈씨한테 직접 들었습니다” “우빈이가 은초희 학생 입학지원서를 가지고 와서 예인고등학교로 전학처리 해달라고 해서 아침에 학교로 서류 넘겼어요. 그러니 예인고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하면 돼요” “저, 예인고등학교에 입학하나요?” “몰랐어요?” 사채 얘기 말고는 들은 것이 없었던 초희는 고등학교 얘기는 처음 듣는 말이라 머리를 끄덕였고 여진은 학생 아버지와 우빈 사이에서 나온 얘기라면 당사자인 아이가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은초희 학생이 우리 집에 온다는 걸 아침 식사자리에서 들었으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해서 준비할 것이 많은 아버님이 정신 없으셔서 말씀을 못하셨나 보네요” “아.. 네” “중학교 생활기록부랑 성적표를 모두 봤어요. 전학년 일등에다 수석으로 졸업했으니 예인고등학교에서도 기대가 커요” “일반 학교와 예인재단 학교 학업수준 차이가 크다는 소문 많이 들었습니다. 도와주신 분들께 폐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은초희 학생 성적이면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뜻이니 어디에서든 빛을 발할 거라고 생각해요. 고등학교에서도 중학교 때처럼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을 거에요” “감사합니다” 저를 정중하게 대하는 어른과 눈을 마주한 초희는 앞에 있는 사람이 예인재단 이사장님이자 성원재의 안주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리조트에 찾아와 만났던 차우빈이라는 사람 얼굴이 앞에 있는 이사장님과 많이 닳았지만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초희 학생이 지낼 곳은 이층이에요. 새로운 식구가 온다는 말을 아침에서야 들어서 우선은 있는 것들로 꾸며 놨으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메모해 둬요. 우빈이가 내일 같이 사러 간다고 했으니까 불편해도 오늘 하루만 참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이랑 비슷한 연배시니 편하게 말씀하세요” “처음 만나는 사이에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말을 놓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은초희 학생이 편하게 말을 해달라고 했으니 앞으로는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초희와 길지 않은 대화를 마친 여진은 최윤희실장을 불러 손님을 이층으로 모시고가 짐을 푸는 것을 도와주라 일렀다. “이층으로 모시고 가서 사용할 방 먼저 보여드리고 집안내부도 안내 해줘서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줘요” “네” “학생이 들고 온 짐 가방은 경호원 불러서 올려달라고 하고 내실직원 불러서 짐은 정리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낯선 곳에 와서 나이 많은 어른이랑 오래 얘기하는 것도 불편한 일이니 오늘은 그만 올라가서 쉬어요. 저녁시간은 일곱시니 그때 식당에서 만나요”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초희는 이사장님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제가 메고 온 가방을 들고 실장님이라는 사람을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여진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초희 모습을 지긋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어리고 풋풋한 모습이 보여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이라기 보다는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처럼 어리게 보였지만 대화를 나누는 내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자세히 살펴보니 뚜렷한 이목구비와 깊은 눈매가 몽환적이면서도 이지적인 느낌이 나는 귀한 얼굴이었다. 이제 열일곱살이 되는 아이에게서 나타나기 힘든 몽환적이고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니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운 우빈이 관심을 갖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재단을 운영하고 상류층 사람들과 교류하면서도 자주 볼 수 없는 바르고 정갈한 모습에 자신도 빨려들 정도였다. 평범한 가정에서 안온하게 자랐다면 철이 빨리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나이에 보이기 어려운 점잖고 진중한 분위기를 가진 초희가 마음에 든 여진은 제 집에 들어온 어린 여학생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성원재가 영산 동쪽에 위치해 있다면 반대편인 서쪽 위에는 우빈이 설계한 벙커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빈이 벙커에 모습을 보인 건 순길이 꼬마아가씨를 성원재로 데려오기 위해 시내로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제 눈을 단번에 사로잡은 꼬마아가씨를 순길에게 제 자동차로 데려오라고 했던 우빈은 순길이 출발했다는 메시지를 보내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순길의 메시지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벤트 장소로 진입한다는 현장보고가 도착하자 우빈은 벙커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몇 달 전부터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과 오늘 일에 대해 자세하게 공유했기에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자신은 이곳에서 결과 보고만 받으면 되었다. 꼬마아가씨를 성원재로 데려다 놓은 순길이 벙커 사무실로 들어오자 우빈은 앉으라고 말했다. “별일 없었어?” “지난 밤 몸 싸움으로 다 잡혀 들어가서 그랬는지 조용했습니다. 주변에 있었다고 해도 백업하는 애들이 있었으니 근처에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어머니는 다른 말씀은 안 하셨어?” “특별하게 물어보거나 하지는 않으셨는데 마음에 드시는 눈치입니다” "어머니 마음에 들었다면 좋은 징조지" 벙커에서 대기한지 두 시간이 지나고 지역 분대장들로부터 마무리 보고가 들어오자 순길은 직접 보고를 받았고 취합된 내용을 정리해 도련님에게 보고하기 위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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