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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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벌이라도 서는지, 아영이 벽에 머리를 박고 서 있었다. 헤드폰을 쓰고 있어서 문이 열리는 소리도 못 듣고. 문소리와 동시에 돌아 보고 허어억 놀라 넘어가야 하는데, 김빠지게, 벽면수행이라도 하는지 벽과 물아일체 경지다. 찬혁은 재킷을 벗어 소파 위에 풀석 던졌다. 넥타이를 훅 당겨 잡아 빼 재킷 위에 떨구고, 소매를 둥둥 걷어 올렸다. 셔츠 단추를 풀어 가슴 앞을 헤쳐 놓고, 그 상태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 삐딱하게 선채로, 작업인지 고행인지 모를 희한한 광경을 두고 보기로 했다. 벽 한쪽 귀퉁이 앞에 붙어 서서, 아영은 그림에 혼을 불어넣는 중이었다. 섬세하고 정교한 터치를 요하는 잉크 작업이라, 펜대를 바짝 쥐고 그림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붙어 서서 집중해야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자야지. 아. 손목아. 내 무릎아. 그동안 잘했잖니. 아 눈아…." 당 떨어지는 몸뚱이를 독려해가며 오늘 작업 목표량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잘하고 있어. 아. 어깨야. 죽겠네. 조금만. 드디어. 한 줄만 더하면. 끝!" 앓는 소리 끝에 아영이 마침내 펜 작업을 마쳤다. 끝! 환호와 함께 양팔이 저절로 번쩍 만세를 불렀다. 밥 먹는 시간 빼고 꼬박 10시간! 인간승리의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하늘을 찌른 자세 그대로 어깨가 움척 움척 흥을 탔다. 오리 궁둥이처럼 동그랗게 내민 엉덩이를 움씰움씰 곰살맞게 튕기며, 두 발로 물감 흥건한 바닥 위를 미끄러져 삼류도 울고 갈 문워크를 춰댔다. 소울이 충만해지자, 또 밑도 끝도 없는 욕심이 일었다. 이러다 늘 밤을 꼴딱 새우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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