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넘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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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차량이 검문소를 지났다는 보고를 받은 여진은 초희에게 줄 교과서든 가방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핸드폰으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고등학교 수학을 예습하고 있던 초희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봤다. 방문이 열리고 성원재 안주인인 이사장님이 들어오는 모습을 본 초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부하고 있었나 봐요” “입학 전에 예습을 많이 해야 하는데 저는 이제야 시작하는 중이에요” 초희가 있는 책상으로 다가간 여진은 핸드폰 화면에 인터넷강가 멈춰져 있는 것을 보고는 소파에 앉으라며 초희를 데리고 소파로 갔다. 초희와 소파에 나란히 앉은 여진을 들고 온 가방을 초희에게 건네며 예인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라고 이야기했다. “가방 안에 예인고등학교 교과서가 들어 있으니 책상에 정리해 둬요” “감사합니다” “예인고등학교는 교복이랑 책가방까지 정해져 있으니까 그 방으로 사용하면 돼요” “네” “교복은 옷장에 넣어두었는데 사이즈 맞는지 입어 봤어요?” “아직 못 입어 봤어요” “자기 전에 입어 보고 크거나 작으면 최윤희실장한테 말해요. 그러면 바로 교체해 줄 거에요” “네” “문제집이랑 참고서는 다음주에 도착하니까 그때까지는 책이랑 인터넷강의로 공부하고 있어요” “문제집이랑 참고서까지 준비해 주지 않으셔도 되요” “사교육 없이 전학년 일등 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지만 고등학교는 여러 문제를 많이 풀어 볼수록 도움이 될 거에요. 그리고 내신을 잘 받으려면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교제와 맞는 문제집으로 공부를 해야 도움이 될 거에요” “아.. 네” “이 방에 있는 물건은 초희 학생 사용하라고 가져다 놓은 거니까 인터넷 강의는 핸드폰 말고 저기 있는 노트북으로 편하게 시청하도록 하고 라디오나 티브이도 편하게 사용해요” 초희는 여진이 가리키는 곳에 놓여 있는 노트북을 바라보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저녁식사 시간은 일곱 시니까 공부하다 시간 맞춰서 식당으로 내려와요. 식당 어디 있는지는 최 실장한테 안내 받았죠?" “네” “그럼 이따 식사시간에 봐요” 초희는 이사장님 뒤를 따라가 문밖까지 배웅한 후 책상으로 다시 돌아갔다. 변종현실장과 성원재로 들어 온 차희태는 이사장을 대신해 최윤희실장 안내를 받으며 자신이 지내게 될 방으로 향했다. “이사장님께서는 집에 중요한 손님이 오셔서 그분과 말씀 중이십니다. 별채보다는 본채에서 지내시는 게 편하실 거라고 이 방을 사용하시라는 말씀 전하셨습니다” “성원재에 손님이 들어왔다고?” “네, 도련님이 직접 들이신 손님으로 각별히 부탁한다고 말씀 하셔서 이사장님도 각별하게 챙기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성원재에 외부인을 들인 적이 한번도 없던 우빈과 나여진이사장이 손님을 들였다는 말에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더는 물어보지 않고 최윤희실장에게 나가보라며 차희태는 손짓했다. 최윤희실장이 방을 나가자 의자에 앉으며 차희태는 제 처지가 불쌍하다는 듯 말했다. "우빈이 손님한테 내가 밀린 거지, 변 실장" "도련님이 들이고 각별히 부탁까지 했다고 하니 이사장님이 특별히 신경 쓰시는 거야 당연한 일 아닙니까! 별채가 아니라 본채에 방을 내어주셨으니 섭섭하게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이 집에서 서열이 얼마쯤 되어 보이나?" "도련님이 언제나 일순위라는 것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겁니다" "허어, 내가 그리 힘이 없는 존재였어" “대한민국에서 결혼해 자식을 둔 남자들 중 일순위인 사람은 없습니다. 집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게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이 엄마한테는 아이들이 늘 일순위입니다” “그런가? 나는 내 결혼생활만 그런 줄 알았더니 다들 그렇게 살고 있었구만” “사람 사는 거야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어렵게 얻은 아드님 회장님도 많이 아낀다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응접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최윤희실장은 이사장님이 이층에서 내려오는 것이 보이자 계단아래로 가 대기하고 있다 이사장이 계단아래로 내려서자 준비된 방으로 회장님을 모셨다고 보고 했다. “저녁식사부터 은초희 학생도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할 테니까 한자리 더 만들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변종현실장이 같이 들어왔는데, 자리 하나 더 놓을까요?” “그렇게 하세요” 이사장님 말대로 방에 있던 노트북으로 인터넷 강의를 듣던 초희는 저녁시간을 알리는 알람 소리에 강의를 정지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정리해놓고 방을 나섰다. 최윤희실장님과 성원재를 둘러볼 때도 느꼈지만 내실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많은 것과는 상반되게 실내는 발걸음 소리 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잔잔한 바다처럼 평온 하기만한 내부를 바라보던 초희는 이층계단을 내려가 식당으로 들어갔다가 아직 아무도 내려오지 않을 것을 보고는 식당 안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문 안쪽으로 들어가니 주방인 듯 직원들이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고 초희는 일하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성원재 서열 일순위인 도련님 손님이 주방으로 들어와 인사를 건네자 음식을 만들고 있던 김 여사와 주방직원들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손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어서 오세요. 식전에 드실 따뜻한 차를 준비할 테니 식당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바쁘신데 저 때문에 일부러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초희 학생이 먼저 내려 왔네요” 회장님이 성원재로 복귀한 첫날이기에 저녁식사에 신경을 쓴 여진은 식사준비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조금 일찍 내려왔다가 초희가 주방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는 주방으로 들어오며 초희를 불렀다. 손님 뒤로 이사장님 목소리가 들리자 주방직원들은 입구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고 초희도 몸을 돌려 이사장님을 보았다. “혼자 차 마시려면 심심했는데 이렇게 만났으니까 식사 전에 따뜻한 차 한잔 할까요?” 이사장님 말에 김 여사는 이사장님과 손님이 드실 식전 차를 준비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함께 살게 될 초희와 몇 년 만에 집으로 들어온 회장님까지 함께하는 식사자리였기에 식전 차가 준비되는 동안 여진은 준비된 음식들을 찬찬히 살폈다. 주방 입구에서 이사장님이 음식을 살피고 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초희는 자신이 지금까지 봐 왔던 사람들과 달리 부드럽지만 절도 있고 우아한 이사장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준비된 음식들을 모두 살핀 여진은 식전 차가 준비되자 초희에게 다가가 그녀를 데리고 식당으로 나가 테이블에 있는 의자를 꺼내며 초희에게 앉으라고 말했다. “여기는 회장님 자리 왼쪽 옆자리는 우빈이 자리 그리고 오른쪽 옆자리는 내 자리에요. 초희 학생은 내 옆자리에 앉으면 되니까 식당에 먼저 내려오게 되면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돼요” "네" "저녁은 일곱시에 시작이지만 시간이 가능하면 조금 일찍 내려와서 오늘처럼 따뜻한 차를 먼저 마시면 소화에 도움이 될 거에요” 여진과 나란히 앉은 초희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찻잔을 들어 향을 맡으니 알싸한 향이 코 끝을 자극했다. 그런 초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여진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 식전 차는 생강차인데 초희 학생 입맛에는 안 맞을 수 있겠지만 식사 전에 따뜻한 생강차를 마시면 소화에 도움을 줘요” 초희는 머리를 끄덕이며 옆에 앉아 있는 이사장님을 돌아보았다. "초희 학생도 즐겨 마시는 차가 있어요?” "가끔 커피를 마실 때는 있지만 차를 마셔 본적은 없어요" "우리 집에는 커피도 다양하게 있고 차도 다양하게 있으니 마시다 보면 마음에 드는 걸 찾을 수 있을 거에요" “네” 여진이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뒤이어 초희도 찻잔을 들어 알싸한 향이 풍기는 생강차를 한 모금 마셨다. ***** 사채업자 사무실을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낸 송도와 원일은 직원들을 데리고 벙커로 돌아왔다. 현장지원을 나갔던 직원들이 돌아오자 순길은 송도와 원일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은 휴게실에서 쉬도록 하고 두 사람은 제 사무실로 불렀다. “사무실에서 찾아낸 건” “서류는 파란 박스에 담아 왔고, 내부에 숨겨져 있던 금고랑 현금은 테이핑해서 들고 왔습니다” “고생했다. 밤에 블랙접수 하러 걸 거니까 아무도 퇴근하지 말고 휴게실에서 대기하고 있어” “블랙? 블랙클럽 말씀하시는 거에요?” “응” “갑자기요?” “블랙을 접수하려면 이 숫자로는 어림없으니 애들을 더 불러야 되는 거 아닙니까!” “도련님이 이미 준비시켜 놨으니까 걱정 말고 가서 애들 식사랑 먹을 거 잘 챙겨줘” “알겠습니다” 송도와 원일이 사무실을 나가자 순길은 사무실에서 가져 온 서류를 살피기 위해 책상으로 향했다. 사채업자들이 작성한 거래장부와 핸드폰으로 주고 받은 메시지 중 전필용이나 그의 비서와 연락한 내용들을 우선 순으로 정리하던 순길은 핸드폰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에 보던 자료들을 그대로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직원이 다가왔다. “성원재에 남아 있던 애들은 출발했는지 확인했어?” “네, 오분 뒤면 벙커 앞에 도착합니다" “송도한테 십분 뒤에 나간다고 준비하라고 하고 원일이는 여기로 불러와” “알겠습니다” 순길의 호출을 받은 원일은 휴게실에서 사무실까지 숨도 안 쉬고 빠르게 달려 왔다. “다른 지역에서 올라온 서류하고 물품들은 어디에 뒀니?” “삼번 하고 사번 방에 지역 명으로 구분해서 정리해 뒀습니다” “나는 현장으로 나가니까 내가 자리 비운 동안 여기는 네가 맡는다” “네" "백호가 우리보다 먼저 돌아올 수 있으니까 독방에 있는 놈들도 잘 감시하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그 정도는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한테도 백호한테도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입단속 잘하고 있어" “네!” 밤 열한시가 조금 넘은 시각 성원재 직원숙소에 있는 직원들 중 절반을 불러낸 순길은 블랙클럽이 있는 장연동으로 출발했다. 클럽근처에 도착한 순길은 자신이 데리고 온 직원들과 골드볼 직원들을 선별해 일부는 손님으로 위장해 클럽 안으로 들여 보냈고 나머지는 눈에 띄지 않도록 차량과 클럽주변 상가로 분산 시켰다. ***** 세시간 째 쉬지 않고 게임을 하던 최두식은 나이가 들어 피곤하니 잠시 쉬자고 제안했고 계속된 우빈의 승리에 기분이 상해 있던 전필용도 그러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이어 돈을 잃은 전필용은 술자리가 준비되어 있는 자리로 옮겨가서는 빈 잔에 위스키를 가득 채워 연거푸 마시며 언짢은 마음을 달랬다. 위스키 병에 들어 있는 술이 바닥을 보이자 우빈은 자신들을 시중들고 있는 직원들에게 휴게실을 비우라며 손짓했고 직원들은 도련님 손짓에 일사분란 하게 휴게실을 나가며 문을 닫았다. 돈을 잃고 많이 속상한지 똥 씹은 듯한 표정으로 연속해서 술을 마시는 전필용을 향해 우빈은 무겁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한테 진 빚 다 갚으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겨우 세장 잃어 놓고 그렇게 화난 얼굴로 계시면 곤란해요” 뜬금없이 제가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전필용 입으로 가지고 가던 술잔을 든 손을 아래로 내리며 우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차우빈이라는 사람뿐만 아니라 너와 관련된 사람들 누구에게도 돈을 빌린 적이 없는데 갚아야 할 빚이 많다는 게 무슨 말이야?” 위스키 한 병을 거의 비웠기에 초점이 흔들리지는 했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은 알아들 수 있는 상태였기에 소파에 몸을 기댄 전필용은 우빈에게 물었다. “십년 전부터 큰 빚을 지고 계시잖아요” 십년 전이라는 말에 술잔을 들고 있던 전필용 손에 힘이 들어가졌고 옆에서 듣고 있던 최두식전무 미간에도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십년 전부터 빚을 지고 있다니!” “십년 전에 저 납치해서 회장님한테 몸 값으로 십억이나 챙기셨잖아요. 십년 전에 그렇게 큰 돈을 뒤로 챙기셨으면서 아닌 척 모르는 척 하시는 연기 별로에요” 지금까지도 범인에 대해 경찰에서 조차 아무것도 찾지 못했는데 납치 당사자인 우빈이 제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자신이 범인이라 말하자 술에 취해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강하게 흔들렸다. 여유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전필용을 보고 있던 우빈은 팔을 뻗어 술잔을 들어올려서는 한번에 잔을 비우고 빈잔을 도로 내려 놓았다. 그런 우빈을 전필용은 말없이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자신을 떠보는 것이라 생각하는 듯 눈치를 보고 있는 전필용을 본 우빈은 자신이 어떻게 범인을 알고 있는지 알려 주었다. “일을 벌일 생각이었으면 더 일찍 했어야죠. 평범한 일상이 무료해 스릴과 모험을 찾아 다니는 중학교남자아이를 데리고 일을 벌인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어요. 열넷이면 부모와 떨어졌다고 울면서 오줌 쌀 때가 아니라 신나는 경험을 하게 됐다며 좋아할 나이에요. 그리고 눈을 가려준 덕분에 청각과 후각이 예민해져서 그 때 당신이 사람들과 나눴던 말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읊을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본인 아니라고 발뺌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납치를 당한 순간부터 범인을 누구인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십년 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술을 마셔 붉어졌던 얼굴이 한순 간에 밀랍인형처럼 메말라 갔다. “그렇게 굳으실 필요 없어요. 그 빚을 청산하기 위해 내가 원하는 건 딱한 가지에요. 강령! 저한테 넘기세요” 십년 전 일을 알고 있다는 말보다 더 의외인 요구조건에 전필용은 표정변화도 변하지 않고 아무 말도 없이 대화를 듣고만 있는 최두식전무에게 시선을 돌려서는 이 자리가 거래를 위한 자리인지 알고 있었는지 물었다. “최두식전무는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알고 있었나 봅니다. 너무 조용한 게” 대화를 들으며 술을 마시고 있던 최두식은 술잔을 내려 놓으며 평소와는 달리 냉정한 눈빛으로 전필용을 바라 보았다. “이 자리로 우리 둘을 초대한 건 전사장이야. 전사장이 초대할 줄 어떻게 알고 우리가 계획을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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