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가 되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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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은 화려하게 발광하는 네온사인을 올려다보았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데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 애는 대체 어떤 앤지. 삼수째라고 했으니 엄밀히 말하면 애는 아니지만. 기가 막혀 아영은 다시 한번 위를 올려다보았다. 오아시스 나이트 태어나서 나이트는 두 번째 방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처음이다. 첫 번째는 갓 대학에 입학하고 노량진 입시 미술학원에서 보조 선생으로 알바를 뛸 때였다. 일을 시작하고 맞은 첫 회식이었다. 막내라 감히 먼저 빠질 수 없는 분위기였다. 2차까지 끌려다니다 결국 원장 손에 다들 붙들려 3차까지 반강제로 몰려갔었다. 무랑루주였다. 나이트라고 했다. 들어가서 보니 입장 연령대가 좀 높아 보이는 것만 빼면 듣던 대로였다. 음악 술 춤. 그리고 부킹. 댄스 홀 위 중년의 난리부르스는 가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나이트는 다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야 그곳이 캬베레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이미 나이트에 대한 없던 정마저 떨어진 후였다. "하아... 보통 애가 아니라더니. 초면에 사람을 그것도 과외선생을 이런 곳으로 모신다 이거지. 기가 막히네?" 과격한 날숨이 이마 위 잔머리를 푸우 날렸다. 문자 메시지 끝에 붙은 ㅋㅋㅋ의 의미가 뻔해졌다. 당황하는 꼴을 보시겠다? 의도가 뻔해지자 아영은 상대가 만만해졌다. 궁금해졌다.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래?" 내키지 않아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번의 수업이 2주 회원비를 갚을 수 있는 200만 원 짜리다. 아영은 입구에 늘어선 줄 뒤에 섰다. '그럼 회원비를 다 갚을 때까지 수업을 몇 번만 하면 되냐 하면... ' 어느새 희망적인 빚 청산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 때 아영의 눈에 불길한 장면이 포착되었다. 들어가는 사람 못 들어가는 사람. 입구에서 두 부류로 나뉘고 있었다. 불안했다. 아영은 못 들어가는 사람들을 빠르게 분석했다. 지극히 평범해 보였다. 뭐가 문제지? 제 차례가 오고 나서야 아영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멤버쉽 카드." "예? 멤버쉽이요?" "없어요?" "없는데요. 오늘 처음이라. 누굴 좀 만나러 왔.." "다음!" 아영이 떠밀려 났다. 불쾌했다. "저기요. 줄도 안 서고 들어가는 사람은 그럼 뭐죠?" 아영은 줄 선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도착하는 속속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발끈 항의했다. "보면 몰라요? VIP." "아..." 아영은 보안요원의 턱짓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미끈한 수퍼카에서 앳된 여자가 경쾌하게 내려, 안으로 총총 들어갔다.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게 더 자존심이 상했다. ㅋㅋㅋ는 이거였다. 입장 불가. 시작하기도 전에 좌절을 맛보게 하는 것. 그것도 빈부의 격차를 체감하게 해서 상대적 박탈감까지 교훈으로 남기는 것. 너무 저열하고 유치한 발상의 시도라 오히려 가소로워졌다. 아영은 픽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일하러 오기 전에 먹은 김밥과 오뎅 국물이 연쇄작용처럼 떠올라 입장 불가의 일 예가 되어주었다. 기분이 더럽고 비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오기가 발동했다. 아영은 휴대폰을 꺼냈다. 노아의 메시지를 보안요원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이거 확인 좀 해주실래요? 여기서 미팅이 있거든요." "노아? 낙원 아... 잠시만요. 확인해드리겠습니다." 보안요원의 말투가 공손해졌다. 귀에 꽂은 송수신기로 낙원의 입실 상황을 체크했다. 그리고 예의 바르게 돌아섰다. "들어가시죠." "감사합니다." 감사는 우쭐했고 도도했다. 아영은 안으로 들어갔다. 길고 검은 복도를 지나 안으로 깊이 들어가자 음악 소리가 붕붕 벽을 타고 울렸다. 멤버쉽을 끊어야 할 만큼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냥 검은 복도였다. 닭장 같은 철조망이 쳐진 창문으로 복도를 내다보던 보안요원이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아영을 발견하자 귀에 꽂은 송신기를 켰다. 그리고 이내 문을 열었다. 붕붕붕붕 음악 소리가 폭발했다. 눈앞에서 자동으로 열린 문보다 귀청을 찢을 것처럼 터져 나온 음악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아영의 어깨가 바짝 오그라들었다. 보안요원이 아영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2층 오른쪽 맨 끝 방입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아! 네... 감사합니다..." 아영이 움찔했다. 그 자세로 얼어붙어 한 발짝도 더 떼어놓지 못하고 아영은 얼빠진 얼굴로 홀 안을 둘러보았다. 돔형 천정에서 폭우처럼 쏟아지는 조명을 맞으며 사람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음악에 맞춰 붕붕 뛰고 있었다. 작두를 타는 것 같았다. 서로 엉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술에 취한 건지 흥에 날아오른 건지 희번덕대는 흰자위가 무아지경 속이었다. 엑스터시 그 자체였다. 아영은 귀를 막고 2층을 올려다보았다. 원형구장 같은 구조였다. 홀을 내려다볼 수 있게 전면이 유리로 된 방들이 2층에 둥글게 연결되어 있었다. 입이 떡 벌어질 광경이었다. "어! 쟤 뭐냐." "누구?" "저기. 입구에 서 있는 여자." 룸 안에 눈들이 아래층 입구 쪽으로 일제히 쏠렸다. "찬혁아 쟤 네가 불렀냐? 대리?" 찬혁이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광란의 춤판 옆에 아영이 두 귀를 틀어막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서 있었다. 하아! 헛웃음이 터졌다. "쟤 대리 아닌 것 같은데?" "야 김민혁. 뭐라는 거야? 아는 여자야?" "아는 건 아니고. 파라오에 찬혁이 온 날 미나 대타로 낚은 애. 대타 아니고 대리 뛴다더니, 아닌데? 여길 들어온 걸 보면 보통 빽은 아닌데." "찬혁이 넌 알 거 아니냐. 재가 대타였다며. 누구냐?" 시선이 찬혁에게 모였다. 찬혁은 아영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였다. "나랑 숨바꼭질하는 애." "뭐? 차. 놀고 있다 자식아. 그 나이에 재밌냐?" "아니. 재미없다." 찬혁이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너무 힘들고 지쳤다. 솔직히. 잡히기 싫대. 난 아니래.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런데 포기가 안 돼. 미치겠네. 미안해. 말고 미안하다는 말 아는 사람." "뭐래. 취했냐? 천하에 박찬혁이 잡고 싶은 여자도 있고.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래서. 지금은 누가 술래야. 쟤야? 여기 너 잡으러 왔나 본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찬혁이 반응했다. 아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딴 세상에 떨어진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아영은 마치 길을 잃은 사람처럼 보였다. 겁에 질린 것 같은 제스처가 딱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딴 거에 뻑 가는 순진한 여자 아니라더니,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쩔쩔매는 꼴이라니. 뻑이라는 비속어가 무슨 뜻인지는 알기나 하고 지껄인 건가. 별게 다 의문스러워지는 몰골이다. 같잖고 하찮기 그지없어 보이는 저 여자가 술래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는 제 꼴이란... 병신. 잡으러 올까 봐. 발각될까 봐. 조마조마 두근대고 있는 저를 바보 등신 새끼라 비꼬면서도 찬혁은 아영을 눈으로 좇으며 간절하게 바랐다. 아영이 술래가 되어주길. 아영은 벽에 딱 달라붙어 붕붕 뛰고 있는 사람들을 빙 둘렀다. 휘청대다 벽에 와 쿵 쿵 부딪히는 사람들에 질겁을 하며 홀을 돌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하나뿐이었다. 거기까지 반원을 그리며 가까스로 사람들을 피해 나아갔다. "살다 살다 내가 진짜 이런 진풍경을 다 본다. 와. 이런 구경을 다 해보네. 뭘 잘못 먹었길래 저러고 들 방방 뛰는 거야? 어머!" 손목을 낚아채려는 남자를 재빨리 피해 아영은 계단으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곧 다른 세상이 열렸다. 하얀 대리석 바닥도 아라베스크 풍 몰딩도 말 그대로 오아시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국적이었다.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시키는 중동 사막의 어느 고급 맨션을 모방해 놓은 것 같았다. 올라온 목적을 잊게 할 정도로 화려했다. 아영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2층 복도를 지나갔다. 7번 낙원 앞까지. 똑 똑 똑 똑 똑 똑 답이 없다. 아영은 문을 열었다. 서서히 열리는 문 뒤로 방 안의... 아영의 턱이 저절로 떨어졌다. 테이블 위에서 반라의 여자가 어머머 뛰어내렸다. 앳돼 보이는 얼굴을 한 남자들이 옆구리에 헐벗은 여자들을 끼고 몽롱한 얼굴로 담배를 뻐끔거리고 있었다. 매캐하게 끼치는 연기 사이로 라벤더 향이 훅 날아왔다. 너구리 잡는 굴이 따로 없다. 얼굴에 날아와 휘감기는 연기를 손으로 휘휘 날리며 아영이 오만상을 쓰고 괴롭게 켁켁 댔다. 방 안에서 웃음이 터졌다. 어느새 구경거리가 되어버렸다. "큭큭큭..." 아영은 따끔거리는 눈으로 조소가 날아온 쪽을 홱 쳐다보았다.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시선들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ㅋㅋㅋ의 장본인 임 노아. "왔어요? 용케 들어왔네. 깡 좋은데." "하아!" 기가 찼다. "첫 대면을 이런 데서 하고. 신고식이 좀 과하네. 어머니한테 얘기 들었지?" "누구야?" 옆구리에 달라붙은 여자가 노아를 반짝 올려다보았다. "노예." "노예?" 다시 방안에 웃음이 터졌다. 무례하고 막돼먹은 말버릇은 못 배운 티라고 차치하고도 아영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노예? 무슨 근거로? 아직 체결되지도 않은 근로 계약이 노예 계약이었는지는 몰랐네?" 같지도 않은 말장난에 아영의 입에서 차아! 헛웃음이 터졌다. "응. 노예. 노예근성 하난 인정. 웬만하면 입구에서 가던데. 시킨다고 진짜 왔네요? 자존심이고 뭐고 다 구기고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돈?" 정곡을 찔렸다. 아영은 아랫입술을 잘근 물었다. 사실이지만, 돈에 그나마 온전한 영혼까지 팔고 싶진 않았다. 저깟 놈의 노예로 전락할 순 없었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더니, 무슨 소린지 알겠다. 작품세계 한번 열어줄까 해서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와보길 잘했네. 수업은 없던 거로 하자. 방종과 일탈을 자유라고 착각하는 타락한 영혼은 예술로도 도저히 구제 불능 이거든." 아영은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켜고 사진을 찰칵 찍었다. 킬킬대던 분위기가 카메라 플래쉬에 험악해졌다. 그러나 끝이라고 생각하니 아영도 거리낄 게 없어졌다. "뭐 하는 짓이야!" "수업 취소 사유. 내 화려한 경력에 노아라는 무능력을 오점으로 남기면 안 되니까. 다 너 때문이다. 지금 어머님께 보낼게. 그럼 놀아." 아영은 메시지창을 띄워 놓고 보란 듯이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매몰차게 돌아섰다. 속이 다 시원했다. 쨍그랑! "악!" 문손잡이를 잡은 순간 술잔이 날아왔다. 문에 부딪혀 유리잔이 산산 조각났다. 파편이 날아와 아영의 팔에 꽂혔다.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이 개새끼들!" 찬혁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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