봤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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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주변 조경 공사가 여전히 끝나지 않아 인부들의 작업이 분주했다. 언덕 아래 주차장 둘레로 외부 차량과 관계자 외 출입을 통제시키는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었다. 바리케이드 앞에서 차 창문이 내려지고, 안을 들여다본 경비가 거수경례를 올리며 간이 초소 쪽으로 손을 휘젓자, 차단 바가 번쩍 들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태가 심각한 것 같아 찬혁의 가슴이 갑갑해졌다. 완만한 경사로를 올라가자 절벽 위로 웅장한 호텔 전경이 떠올랐다. 호텔의 전 객실이 바다를 바라보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게 찬혁의 청사진이었다. 객실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은 각기 달라야 하지만, 바다는 반드시 파노라마처럼 연결되어야 하고, 그래서 매번 같은 호텔을 방문해도 객실이 다르면 올 때마다 다른 바다를 보고 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찬혁의 주장이었다. 그 구상을 그대로 구현한, 바다를 향해 볼록렌즈처럼 반원형으로 휘어진 호텔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리케이드에 막혔던 가슴이 그제야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차가 호텔 입구에 서자, 대기하고 있던 수행원이 뒷문을 열었다. 코끝에 짠 바다 내음이 확 끼쳤다. 금세 폐 속에 바다가 가득 밀려들었다. 절벽 아래서 밀고 올라온 돌풍이 찬혁의 연하늘색 린넨 재킷을 펄럭 들쳤다. 통이 낙낙한 흰 슬랙스 바짓단이 파닥파닥 날렸다. "아영이가 보면 좋아라 하겠네." 생각 없이 한마디가 불쑥 튀어 나왔다. 하긴. 생각이 필요했던 적이 있긴 했었나. 아영을 처음 본 순간부터 생각 따윈 할 겨를이 없었으니까. 죽어버리겠다고 울부짖는 어머니의 절규가 그날따라 왜 그리 덤덤하던지. 너무 오래 불러 식상해 빠진, 흔한 노래 18번, 그 뻔한 레퍼토리처럼, 어머니의 발악이 수화기 밖으로 왕왕 울렸다.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아득해서 이질적이기까지 했다. 지겨웠다. 소리를 질렀다. "맘대로 하세요!" 순간 수화기 너머에 정적이 흘렀다. 왜 그랬을까. 도망쳐버렸다. 산꼭대기 오두막에 숨었다. 진짜 죽어버릴까 봐 울었다. 너무 무서워서 주먹을 입에 처넣고 끅끅 짐승처럼 흐느꼈다. "저기... 산책하다가 오두막으로 올라가길래 인사하려고... 어머! 왜 그래? 괜찮아?" 열린 문가에 아영이 서 있었다. 저가 먼저 손을 내민 건지. 그녀가 먼저 다가온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아영의 팔에 매달려 울고 있었다. 난생처음 소리 내어 엉엉 울어봤다. 뒤에서 잠자코 기다리던 김 실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사장님, 그만 들어가시죠.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 들어갑시다.” “마음에 드십니까?” “완벽해 보입니다. 들어가서 자세히 봐야겠습니다.” “바위산 주차장 철거현장도 방문하시겠습니까?” “거기까지 제가 가봐야 합니까?” “아닙니다.” “호텔 둘러보고, 주차장 철거 대책 회의 후 올라갑니다. 그렇게 아시고 준비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찬혁은 입구에서 둥글게 휘어진 호텔 외관을 다시 한번 올려다보았다. 푸른 바다 빛을 그대로 받아 창문들이 일제히 번쩍였다. 장관이었다. 뿌듯했다. “야아아아! 이눔아! 우리 아들 살려내라아아아!!! 이 나쁜놈아아!” 순식간에 팔이 붙들려 찬혁이 뒤로 벌컥 밀려났다. “야! 다들 뭐 하는 거야! 잡아! 끌어내!”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수행원들이 몰려와 찬혁의 팔에 매달려 울고불고 늘어지는 한 노인을 떼어내느라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수행원들에 에워싸여 호텔 안으로 들어가며, 찬혁은 질질 끌려가는 노인을 돌아보았다. 죽을힘을 다해 뿌리치고 찬혁에게 다시 달려오던 노인이 수행원들에게 바짝 들려 앙상한 다리를 허공에서 허우적댔다. “아이고오오오! 불쌍한 내 새끼! 나라 지킨다고 군인 갔다 병신 돼 와도 언 놈 하나 봐주지도 않고! 이 애미 살린다고 아등바등 살았는데에에 아이고오! 불쌍한 내 아들! 나도 죽여라! 이 놈들아아!” 저만치 끌려가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노인이 목놓아 울었다. "누굽니까!" "분신을 시도한 사람 노모입니다! 들어가시죠!" 듬성듬성한 백발이, 텅 빈 잇몸으로 말려 들어간 쪼그라든 입술이, 깊게 패인 주름이 마천루처럼 우뚝 솟은 호텔 앞에서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다. 극과 극 두 세상 사이의 괴리감이 찬혁의 시신경을 아프게 찔렀다. 대책 회의는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하고 끝이 났다. 말없이 눈만 내리깐 채 생각에 빠진 찬혁의 눈치만 살피다 끝난 회의였다. 결국, 완공 날짜도, 철거 재개 시점도 미정인 상태로 회의는 다음으로 미뤄졌다. 회의장에 우두커니 홀로 남아 있던 찬혁이 휴대폰을 꺼냈다. 잘 잤어? 아침에 저가 아영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보고도 답이 없다. 전화는 다시 불통이다.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한 건 회의뿐만이 아니었다. "하아 신아영... 미치겠네." 찬혁은 느릿느릿 로비를 가로질러 호텔 밖으로 나갔다. 대리석 바닥이 뚜벅뚜벅 텅 빈 호텔에 공명했다. 절벽 끝 난간에 기대서서 새빨간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평선으로 떨어진 태양이 넘실대는 파도에 휩쓸려 붉게 멍들고 있었다. 제 심장 같았다. 아팠다. 지이잉 지이잉 찬혁은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재빨리 꺼냈다. 역시나 아영이 아니었다. "어 성호야. 왜." “목포 와있다며? 나 지금 목포다. 술이나 한잔하자.” “나 여기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냐.” “요즘 너 매스컴 많이 타더라.” “넌 여기 왜 왔어? 술 마시다 출동 탈 거면 꺼져. 너나 마셔." "나 비번이야. 잔말 말고 와 자식아." "어딘데." "너희 호텔 주차장 철거현장." "뭐? 네가 거긴 왜. 강력계 형사가 거기서 할 게 뭔데. 뭐 하냐고." "영미 도와주러 왔어. 영미는 고모 도우러 와있고. 고모님 여기서 포장마차 하셨다. 술 좀 비워주자고. 너도 빨리 와 거들어." "......" “여보세요? 야. 듣고 있는 거야?” “어.” “오늘 여기 쫑 낸다고 남은 거 다 먹어 치워야 한단다. 얼른 튀어와라. 끊자." 찬혁은 종료된 화면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난감했다. 넥타이를 당겨 느슨하게 풀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망설였다. “잘 해결했어?” 찬혁이 퍼뜩 고개를 돌렸다. “일은 잘 끝낸 거야?” “여긴 또 어쩐 일이야. 너 나 스토킹하는 거냐? 가는데 마다 나타나지?” “풉! 너 그 정도로 유명인 아니거든? 나도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고.” “그럼,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전시장 둘러보러 왔어. 작가들과 미팅도 있었고. 여기 내려온다고 한 건 너거든? 혹시나 하고 와봤지. 끝났어? 차는 어디 있어? 다들 어디 가고 혼자야?” “보냈어. 난 갈 데가 있어서. 안 바뻐? 그만 가.” “어디 가는데? 데려다줄게.” “택시 타면 돼.” “설마 택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지? 여기 택시가 오겠니? 개장도 안 한 호텔에? 택시 타려면 한참 돌아 나가야 해. 타. 데려다준다니까?” 더는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피곤했다. 찬혁은 차에 올랐다. "어디 가는데?” “주차장 철거현장. 어딘지 알지? 나 눈 좀 붙인다.” 찬혁은 등받이에 푹 기대앉았다. 피로감으로 무거워진 눈이 저절로 감겼다. “거길 왜 가? 이 시간에?” “친구 만나러." “친구? 친구 누구?” "누구라고 하면 알어?" “내가 모르는 친구도 있어? 혹시 요양 가 있을 때 만난?" "피곤해. 그만 캐물어. 앞에 봐. 운전해." “치이. 저녁은? 나 배고픈데 같이 저녁 먹을까?” “지금 저녁 먹으러 가는 거 안 보여? 같이 먹고 가든가.” “그래도 돼? 친구 소개시켜 줄 거야?” "원한다면.” 찬혁은 더 대꾸하지 않았다. 그다음 질문부터는 들리지 않았다. 잠 속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찬혁아, 다 왔어! 여기 아냐?” "어... 벌써 왔어? 아... 깜빡 잠들었네." 찬혁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창밖을 둘러보았다. 분신 사건 이후, 포장마차 영업은 금지되었다. 주차장 진입로에 온갖 집기들이 바리케이드처럼 쌓여 길을 막고 있었다. “어머머! 이게 다 뭐야? 이 사람들 진짜 미쳤나 봐! 남의 땅에 이게 다 뭐 하는 짓이지? 돈 없는 인간들이 양심이라도 있어야지! 이러니까 민폐 소리나 듣지!” 올라가는 내내 리나는 제 일처럼 분개했다. “근데 친구를 왜 이런 데서 만나? 친구가 시 관계자야? 같이 둘러보고 가게?” 찬혁은 폐허가 된 포장마차를 하나하나 눈으로 훑으며 말없이 올라갔다. 리나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대꾸 없는 찬혁도, 자갈길에 하이힐 뒷굽이 까이는 것도 짜증이 나 미칠 것 같았다. 길 끝 마지막 포장마차에 불이 켜져 있었다. 문 앞에 다다르자 찬혁이 드르륵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주방에서 열심히 칼질을 하고 있던 영미가 고무장갑을 벗으며 달려 나왔다. “찬혁아! 민호야 여기 찬혁이 왔어! 얼른 나와봐!” 반갑게 달려 나오던 영미가 찬혁의 뒤에 기겁한 표정의 리나를 보고 주춤했다. “왔다고? 야 자식! 너 왜 이제 와! 배고파 죽는 줄 알았... 네.” 창고에서 소주 박스를 들고나오던 민호가 눈알을 굴리고 있는 리나를 보고 흠칫 멈춰 섰다. “문 영미! 야 너 살아있었네!” “찬혁아~ 반갑다 친구야!” 찬혁이 성큼 들어가 영미를 덥석 안았다. 리나의 눈이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사납게 일그러졌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과 뒤엉켜 좋아하고 있는 찬혁의 모습이 기가 막혔다. "여기서 저녁을 먹겠다는 건... 아니지? 찬혁아?" “왔으면 들어와. 너도 먹고 가.” “뭐? 진심이니? 여기서? 이건 좀 심하게 아니잖아. 호텔 앞에 일식 레스토랑 많은데 굳이 여길 왜 와? 나 불결한 거 못 보는 거 몰라? 비위 약한 거 알잖아. 이거 혹시 몰래카메라야 뭐야? 나 찍고 있니?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와 진짜. 넌 먹고 오든가. 갈 때는 못 데려다주겠네. 택시 불러. 나 간다!” “그럴래? 그래 그럼. 태워다 줘서 고맙다. 살펴 가.” "야! 박찬혁! 너 어쩜... 차아!" 리나가 눈을 하얗게 떴다. 이 꼴 보자고 목포까지 쫓아온 건 아니었다. 코끝이 쌔 해졌다. “저기. 흥분하지 말고.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죠?" 뜻밖의 질문에 참았던 짜증이 폭발했다. 그럴 리가. 리나가 신경질적으로 성호를 돌아보았다. 시선까지 보란 듯이 위아래로 훑어줘 버렸다. “저를요? 누구신데요?” “서울 경찰청 양성호 경윕니다. 저 아시죠?" 성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기억이 올 듯 말듯 가물거렸다. “경찰이요? 아뇨. 몰라요. 기억하기엔 너무 흔한 얼굴이네요.” 리나가 팩 돌아섰다. 씩씩 걸어갔다. 점점 빨라지더니 뛰었다. 뾰족한 하이힐이 삐딱삐딱 위태로웠다. "우리 만난 적 있죠, 그거 바꿀 때도 되지 않았냐? 네가 쟤를 언제 봐. 헛다리 짚지 말고 들어와라. 너한테 걸려들 부류가 아니다." 찬혁이 코웃음 쳤다. “봤을 텐데.” 성호의 기억이 거슬러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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