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4680

오전 내내 시계를 힐긋대며 점심시간만 기다리던 한 실장이 정오가 되자마자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이 쌍놈 새끼! 누나가 그렇게 알아듣게 얘길 했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또 무슨 짓을 저질렀대! 아우 내가 못 살아. 진짜!'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파출소 경찰도 아니고, 경찰청 형사가, 그것도 강력계 형사가 찾아올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안 그래도 아버지 기일을 알리바이로 들이대 한대식을 병원에서 빼돌린 게 탄로 날까 봐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고 살던 한 실장이었다. 하아. 속에서 썩어 문드러진 한숨이 푹푹 터졌다.   '그나저나 민 대표랑 결판을 내러 올라 왔네, 제 앞가림 하려네 어쩌네 헛소리를 하더니, 헛소리만은 아니었나 보지? 언감생심 지가 거기가 어디라고 제일 갤러리에 매니저 자리를 꿰차냔 말이야….'   의아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 실장은 걸음을 바삐 놀리면서도 연신 남몰래 뒤를 살폈다. 혹시라도 잠복 중인 형사가 따라오는 건 아닐까 무서워 벌써 골목을 몇 번째 들락거리며 뱅뱅 돌았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인도로 냅다 뛰어나가 마침 막 들어오는 택시를 잡아탔다.   "청량리로 가주세요! 588번지."   택시가 출발하자, 그제야 한 실장은 등받이에 몸을 푹 떨구고 안도했다.   '거기 없기만 해봐 그냥!'   사창가는 을씨년스러웠다. 폐업하고 비어있는 업소가 즐비한 가운데 아직 영업 중인 업소도 드문드문 보였다. 출근하는지, 짙은 화장을 한 여자들이 진열장처럼 보이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보였다.   한 실장

신규 회원 꿀혜택 드림
스캔하여 APP 다운로드하기
Facebookexpand_more
  • author-avatar
    작가
  • chap_list목록
  • like선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