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혁씨. 나오세요."
유치장 구석에 웅크리고 새우잠에 빠져있던 찬혁이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치기만 하고 받은 기억은 없는데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사람처럼 온몸이 뻐근했다. 차갑고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온몸이 배겨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느라 밤새 잠을 설친 탓이다. 하룻밤을 취객의 몰골로 유치장에서 뒹굴 줄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저절로 오만상이 미간에 모였다. 늘어진 셔츠 앞을 바지에 신경질적으로 구겨 넣으며 찬혁이 유치장을 나왔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기다리고 있던 김 실장과 윤 비서가 달려갔다. 낙원을 다 때려 부수고 상대를 병원에 입원시킨 사람이라 하기에 하자 없이 너무나 말짱한 모습으로 찬혁이 걸어 나왔다. 그런데 살풀이를 못다 한 사람처럼 험악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씩씩 걸어왔다. 김 실장이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습니까! 내가 유치장에서 1박을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법무팀 일 이렇게밖에 못해요? 윤변은 어디 있습니까?"
"아, 예... 윤 변호사는 급한 소송 준비 중에 달려 나온 터라 조금 전에 다시 로펌으로 들어갔습니다. 임 의원 측에서 워낙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일단 나가시죠 사장님."
윤 비서가 먼저 달려나가 경찰서 입구에 차를 댔다. 입구에 선 찬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손으로 해를 가렸다. 햇살이 눈 부셨다. 단 몇 시간 자유의 박탈이 태양을 새삼 우러러보게 했다. 차. 그러고 회개 자의 얼굴로 경찰서 입구에 선 제 꼴이 기가 차 헛웃음이 터졌다. 찬혁은 덧정 없이 차에 올라탔다.
"신아영 씨는 호텔로 잘 데려갔습니까?"
"아 모시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떠나시고 안 계신 후였습니다."
"떠나요?"
이게 진짜! 아영이 또 말썽이다. 그것도 유치장에 갇혀있는 사이에 내빼? 어이가 없네! 찬혁이 휴대폰을 꺼내려 안주머니를 더듬댔다. 아 씨. 자켓을 낙원 바닥에 벗어 던지고 와버렸다.
"예. 제일 갤러리 민영환 대표가 오셔서 모셔간 거로 전해 들었습니다."
부질없이 휴대폰 자리를 더듬던 찬혁의 손이 맥없이 툭 떨어졌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타난 민 선배도 놀랍지만 가자고 한다고 쫄래쫄래 따라갔을 아영을 상상하자 소름이 끼쳤다. 설마. 말 한마디 없이 갔다고? 에이 설마! 차에서 한 건 그럼 뭐야. 목에 매달려 입술을 물고 빨던 걔는 그럼 누구야. 그래 놓고 설마. 유치장 간수한테 메모 남긴 걸 못 받았나? 전해 준다는 걸 깜박 한 거야? 의혹과 부인이 결국 유치장으로 다시 가볼까 하는 데까지 미치자 그제야 경찰서로 돌아서려는 정신 줄을 붙들었다. 등신 새끼. 그랬다. 토를 달 수가 없었다. 반복되는 악순환에 찬혁의 심장이 급속히 냉각되어갔다. 이번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지금 시간이... 아. 지금쯤이면 출근하셨을 것 같은데, 민 대표께 연락을 드려볼까요?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 실장이 허둥댔다. 점점 냉기를 뿜어내는 찬혁의 옆자리는 말 그대로 얼음 송곳방석이었다. 자신의 일신을 살피기보다 신아영 씨를 호텔로 모셔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사장이었다. 일생일대의 미션처럼 재차 삼차 집요하게 명한 임무가 불발로 끝나버렸다. 추궁이 뒤따라 올까 봐 지레 선수를 치느라 김 실장이 재빨리 휴대폰을 들었다.
"실장님."
얼어붙은 줄 알았던 찬혁의 입이 떨어졌다. 입을 열자 빙하기의 된서리가 차 안을 하얗게 얼렸다. 한기가 오싹하게 끼쳐지는 와중에도 진땀이 삐질 배어 나왔다. 김 실장이 이마를 쓸어냈다.
"예 사장님!"
"됐습니다. 이제 그만하죠."
"예? 무엇을 말씀이신지..."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김 실장은 찬혁이 미션 철회를 재차 승인해주길 기다렸다. 이것은 엄연히 제삼자의 개입에 의한! 예측 불허 불가항력에 의한!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서...
"목포 건설 현장 최종 결론 낼 테니, 회의 소집하세요. 도착하면 바로 시작합니다.”
“예? 아! 예! 지금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순간 김 실장이 움찔했다. 찬혁의 지시가 다른 방향으로 급선회를 했다. 김 실장은 그제야 추궁에 대비한 변명의 합리화와 정당성 주장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저절로 안도의 숨이 후 새어 나왔다. 김 실장은 곧장 비서실로 전화를 돌렸다.
찬혁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건물 사이에 끼어있던 태양이 마침내 허공으로 둥실 밀려 올라갔다. 떠오른 태양을 응시했다. 눈이 부셨다. 그러나 찬혁의 동공은 동굴처럼 깊고 어두웠다. 텅 빈 채 공허했다. 감흥을 잃은 심장은 어두운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아영이라는 허상이 그 위에 퇴적물처럼 쌓였다. 허무했다. 십 년을 악착같이 움켜쥐고 있던 손을 펼쳤다. 허무. 빈손이 쥐고 있는 두 글자였다. 찬혁은 피가 튀어 검게 얼룩진 바지 위에 손바닥을 싹싹 문질렀다. 허벅지에 대고 허무를 박박 밀어댔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게 울컥 치솟았다.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끝내고 나오자 갈아입을 의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짙푸른 인디고 수트에 레드 레지멘털 스트라이프 실크 넥타이. 장난하나. 찬혁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넥타이를 벗겨내 바닥에 집어 던졌다. 곁에 서 있던 비서가 소스라치게 놀라 황망히 넥타이를 집어 들고 사라졌다. 다시 돌아왔을 땐 찬혁이 이미 셔츠 단추를 다 채운 후였다. 인간미마저 칼날처럼 세워놓은 듯, 하얗게 날 선 셔츠를 걸친 찬혁은 매서워 보였다. 달달 떨리는 비서의 손에 들린 넥타이 콜렉션에서 찬혁이 은회색 무지 넥타이를 뽑아 목에 휘리릭 감았다.
"김 비서. TPO 몰라요? 지금 놀러 갑니까? 오찬 자리가 아니잖아! 호텔 분위기 몰라?"
"아... 잘 알고 있습니다. 침체된 분위기에 동요되지 않으시는 긍정적이고 강인한 면모를 패션 코드에 담아 보았던 건데... 넥타이가 너무 진취적인 컬러였다면 죄송합니다."
"다들 울고 있는데 그러고 희망차게 입고 가서 엿 먹이라고. 어. 당신 해고야."
"예?"
"해고. 나가라고. 당장!"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비서가 종종종 뒷걸음질 쳐 방을 빠져나갔다.
일말의 동정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냉혈한의 얼굴을 하고 서서 찬혁은 제가 고른 넥타이를 바짝 조여 밀어 올렸다. 그리고 인디고 수트에 걸맞는, 시퍼렇게 서슬 돋은 표정을 입고 회의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뒷말이 무성하게 웅성대는 회의실. 맹렬해졌다는 게 달라진 점이었다. 목포에 내려가 있는 일주일 동안 임원들 사이에 옮겨붙기 시작한 찬혁에 대한 불만의 불씨는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 잿더미처럼 시커먼 임원들의 속내에 벌겋게 훅훅 살아있는 불신을 잠재우기도 전에 목포에서 올라오자마자 찬혁은 폭행 사건을 터뜨렸다. 휘발유 한 통을 들어부어 버렸다. 회의장 분위기는 말 그대로 불구경이 될 게 뻔했다. 그러나 찬혁은 더 이상의 심호흡도 주저함도 없이 회의장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들어갔다. 화들짝 놀란 임원진들을 기세 좋게 압도하며 자리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숙연해진 분위기를 깨버렸다.
“목포 호텔 완공식은 계획대로 다음 달 초에 진행합니다. 차질 없도록 준비하세요. 주차장 무허가 가건물들은 이 시간 이후 다시 철거작업을 재개합니다. 다 밀어버리세요. 철거 후, 철근 지지대로 인해 암벽에 균열이 생겼는지, 혹시 있다면, 낙석의 위험이 있을지 철저히 조사해서 사전에 안전조치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고"
“아! 사장님. 현재 포장마차 상인들이 온몸으로 막고 대치 중인 상황에 철거반을 투입해서 강제로 밀어버리면 지난번보다 더 큰 유혈충돌이 있을까 걱정입니다...”
“전무님. 제 얘기 아직 안 끝났습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계속하십시오!”
흔들림 없이 의연하고 단호한 찬혁의 기세에 한마디씩 거들려 금붕어처럼 소심하게 뻐끔뻐끔 열리던 입들이 일제히 꾹 닫혔다.
“현재 난립해있는 가건물들을 깨끗이 밀고, 그 자리에 낭만포차 거리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바위산이 시작되는 입구부터 바다를 따라 암벽 길 끝까지가 예정 부지입니다.”
“그렇다면 공사 입찰이랑 입점 청약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공사는 태양건설 측에 일임할 생각입니다. 이미 얘기가 오갔으니, 실무자 보내서 의견 조율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입점권은 현재 무허가 포장마차 상인들에게 1순위를 주겠습니다. 철거 진행 전에 담당자 보내서 논의하라고 하세요.”
“아, 그런데 왜 하필 그 자리에 포차 거리를 조성하시려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주차장 부지로 낙점한 지역이라 상권도 아닌 데다가 유동인구 또한 전무한 곳에 말입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주차장 인근 지역에 제대로 된 위락시설이나 식당 및 카페가 없고, 바위산 절경과 바다 이외엔 호텔 방문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킬만한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포차마다 각기 다른 컨셉으로 중복되는 메뉴 없이, 아늑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쉬어갈 수 있는 카페거리를 조성하는 게 일차 목표입니다. 완공될 호텔과 연계해 관광명소를 만드는 게 두 번째 목표입니다. 호텔 투숙객에게는 포차 거리에서 이용 가능한 쿠폰 지급 및 셔틀버스 운행 등 편의 서비스를 제공해서 포차 거리를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다른 좋은 의견 있으면 부서별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올리세요. 수렴하고 포상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현재 점거 중인 상인들이 전부 횟집을 운영하던 상인들이라 다양하고 중복 없는 메뉴가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자칫 이도 저도 아닌, 지저분한 상권으로 전락해 괜한 불만 후기만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입점을 원하는 상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해줄 생각입니다. 우리 호텔은 국내외 유명 쉐프들 및 조리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포차의 종류와 메뉴가 정해지는 대로, 그분들과 협의해서 교육을 진행할 겁니다. 기타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진행 경과를 보면서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찬혁은 길게 뻗은 회의실 테이블 양쪽에서 끄덕이는 고개들을 휘 둘러보았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칩니다. 뭐하고 앉아있습니까? 바로 진행들 하시죠!”
“예 사장님!”
폭풍처럼 휘몰아친 찬혁의 최종 결정에 휘발유 뒤집어쓴 불씨가 불기둥으로 치솟기도 전에 맥없이 날아가 버리고, 외려 제 발등에 떨어진 업무 불똥에 기겁해 다들 허둥지둥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사장님, 아주 훌륭한 계획이십니다!”
찬혁은 뒤에 와 대기하고 있는 김 실장을 감흥 없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하실 말씀 있습니까?”
“아. 예. 호텔 3층 카페 옆에 회장님께서 비워두신 자리가 있는데,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미관상 보기 안 좋다는 의견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 건 접수된 상탭니다”
“아버지가요? 그 자리는 왜 비워두신 겁니까?”
“원래 신화당 신우영 사장님의 화과자 점이 들어올 예정이었는데, 그분이 부도 이후에 잠적하시는 바람에 미해결 상태로 방치된 상황입니다."
퇴적물을 헤치고 심연을 부유하던 아영의 허상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꽁꽁 얼려놓은 찬혁의 심장이 순간 쨍 균열을 일으켰다. 미치겠네. 어금니를 질끈 물자 이마에 파랗게 힘줄이 돋았다. 발악의 증표였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입점할 디저트 생산 업체들의 제안서를 받아놓았습니다. 오늘 그중 두 곳에서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한번 검토해 보시고…”
“그대로 두세요.”
밀어내려 발악을 해도 끝내 밀어내지 못했다. 아영이 다시 떠밀려 왔다. 둥둥. 보란 듯이.
“예? 아,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말씀하신 월간 아트 이달 호 입니다. 더 지시하실 사항 없으시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나가봐요."
김 실장이 물러가고도 한참 동안 찬혁은 책상 위에 놓인 월간 아트 잡지를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아영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였다. 십 년의 고난과 역경을 견디게 해준 사람이 있다고 했었다.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아영이 한 고백이었다. 찬혁은 그 사람이 저라고 믿었다. 믿음이 참패당한 이 순간에도 그 믿음이 진실로 부활하길 바랐다. 간절히. 인터뷰 페이지를 찾아 펼쳤다.
제일 갤러리 정기 특별초대전 신아영, 예술로 승화된 불모의 영혼, 별이 되어 빛나다.
치. 입가가 저절로 실룩 올라갔다. 전시실 중앙에 놓인, 작업대처럼 보이는 크고 넓은 책상에 기대서서 아영이 웃고 있다. 어색한 손 처리하며. 마른 장밋빛 핑크 블라우스가 희고 투명한 아영의 피부색을 더 창백하게 만들었다. 옷이 그게 뭐냐. 짜증이 났다. 누드톤 립스틱 컬러에는 열까지 확 뻗쳤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볼썽사나운 블라우스와 바지를 다 벗겨내고 핫핑크 원피스를 입히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사색 짙은 아영의 미소 위에 연 핑크 립스틱을 덧칠하며. 쓸쓸해 보이지 않게.
페이지를 넘겼다.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넘겼다. 없었다. 인터뷰 어디에도 십 년을 견디게 해준 그 사람의 이야기는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언급은커녕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라도 하듯, 일 년의 시간이 자취를 감추었다. 함께한 일 년이 아영의 일대기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찬혁이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