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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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고? 대체 어디에 어떻게 타라는 건지 아영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표정으로 쩔쩔매고 서 있었다. "여기 어디에 타라는 거야? 아... 나는 못 할 것 같아. 나중에 타면 안 돼?" "나중은 무슨. 누가 또 태워준대? 기회는 한 번이야. 나도 탈 시간 없어서 오래간만에 타보는 건데. 말 나온 김에 한 바퀴 달려보자고. 여기 앉아. 올라가." 찬혁이 쿠션 탄탄한 안장을 팡팡 두드렸다. 살다 살다 오토바이를 타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영은 체질적으로 발밑이 불안정한 걸 못 견뎠다. 두 발이 무조건 땅에 붙어있어야 한다. 마찰력을 거스르는 그 어떤 물리적인 작용도 거부한다. 그래서 하이힐조차도 마다하는데, 운동도 삼가는데. 바퀴 네 개도 아니고, 대체 무슨 수로 중심을 잡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인지, 시커먼 위압감을 뿜어내는 오토바이 앞에서 아영은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라이더 재킷을 휘릭 걸치고 지퍼를 쭉 올렸다. 검은 블랙 진에 가죽 재킷을 입고 헬멧을 옆구리에 낀 그의 모습은 터프 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반항기 가득해 보이는 차림새지만, 드디어 제 옷을 찾아 입은 양 멋들어지게 소화해 냈다. 넓고 탄탄한 가슴이, 길게 뻗은 다리가 폭주족 같은 의상을 걸쳤을 뿐인데, 마치 갑옷이라도 장착한 듯 강인해 보였다. 눈에 마가 씌었는지, 섹시해 보이기까지 했다. 너무나 야성적이어서 보고만 있는데도 조금 전 침대 위에서 포효하던 야수와 오버랩되어 심장이 미친 듯 두근댔다. 수트를 맵시 있게 차려입고 있어도 늘 삐딱하고 불량해 보이던 이유를 아영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차비를 끝낸 찬혁이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는 아영에게 성큼 다가왔다. 들어 올려 태우려고? 아영이 오토바이에서 뒤로 한발 펄쩍 물러났다. "여기 타려면 다리 벌려야 되는데, 치마 입고 어떻게 그래.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바람은 나중에 차 타고 쐬자! 시간도 그렇고 인제 그만 자야지..." "종일 자놓고 또 졸려? 종일 일하고 온 사람 정신 못 차리게 뒤흔들어 놓고? 이 상태로 어떻게 자라고. 어딜 내빼. 이리 못 와!" "아 나 정말 탈 자신 없어. 너무 무서워. 나 이런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발이 공중에 떠 있는 거 딱 질색이란 말이야! 자전거도 안 탄다니까!" 기어이 붙들러 다가오는 찬혁의 손을 휘휘 밀어내며 뒤로 뒤로 뒷걸음질 치던 아영이 홱 돌아서서 집안으로 통하는 문으로 냅다 도망쳤다. "비밀번호도 모르면서 거기로 도망을 왜가. 야! 너 이리 안 와!" "아악!" "하하하하 뭐 이렇게 겁쟁이야 이거! 야 이 자식아 가만 못 있어!" 필사적으로 몸을 사리는 아영을 등 뒤에서 와락 부둥켜안고 찬혁이 웃어댔다. 그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그와 벌이는 이 웃지 못할 몸싸움이 아영의 가슴을 뭉클 울렸다. 그 시절, 둘만의 철없던 순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예전 그때처럼, 그의 품이 떠나지 못하게, 아영은 죽기 살기로 헬멧을 끌어안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 버텼다. 천하장사가 따로 없다. 이 쥐방울만 한 여자 어디에서 이런 괴력이 나오는지, 익히 잘 알고는 있었지만, 아영의 버티기 한판이 감탄스러워 찬혁은 새삼 혀를 내둘렀다. 오토바이에 앉아 보기도 전에 엉뚱한 곳을 제어하느라 진이 다 빠질 것 같았다. 아영이 안간힘을 쓸수록 다리 사이에 힘이 뭉쳤다. 이대로면 오토바이에 앉히는 게 아니라 다시 침대에 눕혀야 할 판이다. 하는 수 없이 동그란 아영을 그대로 번쩍 들고 오토바이로 성큼성큼 서둘러 갔다. "바람 쐬게 해주기 드럽게 힘드네! 아 이 자식 진짜." "치마 어떡하냐고! 이거 입고 못 탄다니까 그러네!" "이거 입어. 가려줄게." "이게 뭔데? 더운데 가죽 재킷은 또 뭐야?" "라이더 재킷. 일종의 보호 장구라고 보면 돼. 오토바이 타면 바람 때문에 이렇게 안 입으면 추워." 헬멧을 품에 꼭 사수하고 있는 아영의 손에서 헬멧을 뺏어가 안장 위에 턱 올려놓고, 그제야 무방비 상태가 된 아영의 팔에 찬혁이 라이더 재킷을 끼워 입혔다. 지퍼까지 야무지게 올려놓고 요리조리 돌려보았다. 반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할 말을 잃고, 아영은 옷 입히기 인형처럼 얌전히 재킷을 걸치고 그의 품평을 기다렸다. "어디 보자. 어릴 때 입던 거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많이 크네." "어릴 때? 언제?"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때가 십대 마지막 라이딩 이었거든. 기념으로 보관했지. 그나저나 옷이 너무 큰데. 살 좀 쪄야겠어, 너." "살찐다고 네 옷이 맞을 리가 없잖아. 네가 얼마나 큰데. 옛날부터 커 놓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뒤에 타는데 나까지 이런 거를 꼭 입어야 해? 팔도 너무 길고." "보호 장비라니까. 그리고 치마 때문에 다리 못 벌린다며. 이걸로 가리라고." 똑같은 말인데, 찬혁의 입에서 나온 다리 못 벌린다는 소리가 너무 야했다. 침실에서 제발 다리 좀 벌려보라고 애쓰던 그가 떠올라 아영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자 이렇게.“ 찬혁이 아영의 치마를 골반까지 쑥 밀어 올렸다. 화들짝 놀라 치마를 끌어 내릴 겨를도 없이 그의 팔에 번쩍 들려 아영이 안장에 턱 앉혀졌다. "어머! 지금 뭐 하는 거야!" "이래야 여기 앉을 거 아냐. 다른 여자들은 치마 입고도 잘만 타더구만." "......" 발버둥 치듯 다리를 허우적대며 겨우 안장에 올라앉아 겁에 질린 와중에도 아영의 머릿속은 찬혁의 말을 분석하느라 입이 꾹 다물려버렸다. 이러고 태워준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을 거로 생각하자 후발 주자로 올라탄 게 자존심까지 상했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들이 이 높은 데를 홀랑 잘도 올라타는걸 상상하니 기가 차 말도 안 나왔다. "자. 이제 됐지. 재킷이 커서 속옷 하나도 안 보여. 허리 숙여도 다 가려지니까 걱정하지 말고. 왜. 표정 뭐야? 무서워?" "어." "무서운데 왜 삐져." "삐지 긴 누가 삐졌다 그래. 괜히 트집이야." "입술 못살게 하고 있잖아. 지금." 아영은 이 사이에서 잘근대던 입술을 얼른 놓아주었다. "말해봐. 뭔데. 어어?" "......" 하아. 낼모레면 나이 삼십인 여자가 일면식도 없는 여자들 때문에 흥분하여 화르륵 몸이 단 꼴이라니. 그걸 또 귀신같이 알아채고 찬혁이 다그치고 있다. 집요한 그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아영의 것이면 무엇이든, 그녀의 일이라면 그게 뭐든 무조건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찬혁이었다. 버텨봐야 좋았던 분위기만 망칠 것 같아 우물우물 털어놨다. "... 많이 태워줬어?" "응?" "여기. 여자. 나 말고 많이 태워줬냐고..." 웅얼웅얼 옹알이해놓고 눈도 똑바로 못 쳐다보고 아영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많이 태웠다고, 네가 백 스물한 번째라고 해서 확 복수해버릴까. 심술이 발동했다. 사람 질투나 돌아버리게 했던 사람이 누군데? 다시 생각해도 화가 욱 치밀었다. 학창 시절, 생긴 것만큼이나 성격도 모난 데 없이 원만하고 털털했던 아영의 주위엔 늘 남자애들이 꼬였었다. 거기다 하얗다 못해 속이 훤히 비칠 것 같은 투명한 피부와 젖 살 통통한 귀여운 얼굴에 전혀 그렇지 못한 불건전한 빨간 물풍선 입술의 묘한 조화는 꼬여 든 놈들의 엄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속 뻔한 놈들이 성격 보고 친구 하자는 줄 알고 좋아라 하는 순진함까지. 사람 속 터지게 한 장본인이 바로 신아영이었다. 책상 위에 쿵 쿵 엎어져서 사람 정신 못 차리게 홀려놓고, 막 좋아져서 온통 저밖에 안 보이는 사람 앞에 두고 남자애들 사이에서 헤헤거린 놈이. 그런 아영을 힐긋대며 속에서 천불이 났던 걸 생각하니, 찬혁은 지금 아영의 질투가 고소해 죽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게 뭐라고 뿌듯했다. 그녀의 질투를 받는다는 게 이렇게나 우쭐할 일인가. 바보스러우리만큼 저만 바라보던 여자의 질투라, 그 여자를 마침내 되찾은 것만 같아 가슴이 벅찼다. 옥신각신 밀고 당기는, 이런 유치한 장난조차도 그는 너무 아까웠다. 깨작깨작 골려 먹고 싶을 만큼. 나잇값 못하고, 실체도 없는 여자들에게 질투를 느껴 뾰로통 해있는 아영이 귀여워, 턱을 들어 올려 굳이 눈을 맞추고 찬혁이 픽 웃었다. "이거 질투야?" "아니! 다른 여자들은 치마 입고 잘만 탔다 길래.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대체 여길 어떻게 잘 탔데? 이 높은데를..." "질투나?" 찬혁은 집요했다. 이럴 줄 알았다. 꼬리를 붙들려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아영은 창피함에 점점 빨갛게 달아올랐다. "질투는 무슨 질투 ㅇ..ㅑ..." 그의 입술이 아영의 입술을 물고 뒷말을 분해했다. 오토바이 안장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다 휘청 밀리자, 소스라치게 놀라 찬혁의 목에 매달렸다. 아랫입술 윗입술을 번갈아 물고, 맛보고, 가르고 들어와 입속을 헤집어 놓고는 찬혁이 물러갔다. 입만 맞췄을 뿐인데, 오토바이 안장에 앉은 탓일까? 키스가 너무 선정적으로 느껴져 아영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발갛게 달아올라 혼이 쏙 빠져나간 얼굴로 매달려있는 아영을 내려다보며 찬혁이 씩 웃었다. "태운 적도 없지만, 태울 마음도 없었어. 네가 처음이야. 됐어?" "......" 됐는데, 너무 좋은데, 대놓고 응. 하기 쑥스러웠다. 이미 유치할 대로 유치하게 굴어놓고 새삼스럽게 창피해져, 아영은 눈길을 떨구고 고개만 끄떡였다. "이제 가 볼까!" 찬혁은 아영의 머리에 헬멧을 푹 눌러 씌우고 페이스 쉴드를 턱 내렸다. 그리고 저도 헬멧을 쓰고, 긴 다리를 휙 넘겨 안장에 앉은 후, 어디를 잡아야 죽지 않고 살아남을지 몰라 허둥대는 손을 바짝 끌어다 제 허리에 벨트처럼 단단히 감았다. 훅 딸려가 찬혁의 허리를 끌어안느라 거의 엎드린 자세가 되자 아영은 섬뜩해졌다. 겁에 질려버렸다. 그 와중에도 행여 속옷이 보일까, 엉덩이 살이라도 드러날까 전전긍긍 제 하체를 살펴댔다. 그런데 그의 말이 맞았다. 라이더 재킷은 허리를 더 숙여도 전혀 속을 노출하지 않을 만큼 길고 넉넉했다. 허벅지까지 여유 있게 가려졌다. 일단 뒤태가 안심되자, 진짜 공포가 엄습해왔다. 오토바이가 차고 문 앞으로 서서히 이동하자 센서에 초록 불이 꺼지고 육중한 문이 자동으로 서서히 올라갔다. 아영의 심장이 무섭게 요동쳤다. 너무 빨리 뛰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단거리 경주를 막 끝낸 사람처럼 들숨 날숨을 헐떡였다. 헬멧 안에 하얗게 습기가 차 시야가 뿌예졌다. 앞도 안 보이는 상황에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있는 엔진 소음은 공포 그 자체였다. "간다! 꽉 잡아!" "어!" 아영의 어! 소리는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차고 밖으로 빠져나가자 오토바이가 천둥 같은 굉음을 터뜨리며 총알처럼 치고 나갔다. 부아아앙! "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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