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호의 정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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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어린애같이." 언제는 여보세요 한다고 갖은 짜증을 부려놓고, 여보 해달래서 여보 해준 사람보고 어떻게 책임을 질 거냐니. 또 뭘 책임지라고? 덩칫값 못하는 다 큰 남자의 어린양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아영은 찬혁과 통화를 마치고도 꺼진 휴대폰 화면에 대고 치. 눈을 흘겼다. 그나저나 간밤에는 해외 협력 아티스트 같은 소리 한다고, 뉴욕 간다는 소리 하기만 해보라고 길길이 날뛰던 찬혁이 아침엔 웬일로 잠잠하다. 아영은 의아했지만, 한편으론 찬혁이 제 마음을 이해했으리라 믿었다. 대학 시절, 유학은커녕, 대학 학비 대느라 알바를 두세 탕을 뛰어가며 생활고에 허덕여야 했던 처지에도 아영은 미친 척하고 삼 개월 치 알바 비를 쏟아부어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원서 접수비를 마련해 해외 유수의 예술 대학 몇 군데에 원서를 보냈었다. 합격하면 실력을 인정받는 거니까 좋고, 떨어지면 세계 수준에 내밀만큼의 실력은 못 되니 분발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그 또한 나쁠 건 없고. 이래저래 제가 하는 부질없는 짓을 합리화해가며, 피 같은 돈을 들여 도전장을 날렸다. 그런데 원서를 낸 모든 대학에서 합격 통지가 날아왔다. 그걸 품에 끌어안고 알바 미술 학원 화장실 변기 뚜껑 위에 앉아 숨죽여 운 걸 생각하면 지금도 눈가가 시큰해진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들의 인정이 너무 좋아서 미치고 팔짝 뛰어야 하는데, 막상 받아 들고 보니, 현실의 벽만 더욱 또렷이 확인한 꼴이 되어 암담해져 버렸다. 아영은 손가락 끝으로 눈가를 콕콕 찍어내고, 손에 든 초대장을 내려다 보았다. 이 순간을 위해 달려온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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