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비서가 트렁크를 가지고 먼저 내려 가고, 민 대표는 서재로 하우스 매니저를 불러들였다. 뒤따라 들어가는 매니저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십 년을 잘 버텼는데, 이제는 정말 그만둬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돈만 놓고 따져 본다면 대기업 과장급 연봉을 웃도는 고수익 직이었다. 고작 지방대 학사 졸업장이 전부인, 그것도 낼모레면 나이 사십인 여자가 어디 가서 이만한 돈을 만져볼 수 있을까. 이러느라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다. 박 사장이 신 작가의 그림을 떼어간 후 광증을 부리던 사람이 근래 들어 뭐 좋은 일이라도 생겼는지 기분이 한결 나아진 틈에, 오늘은 꼭 사직서를 전하리라 다짐했다. "앉으세요." 순간 움찔해, 지난번처럼 바닥에 조아리고 앉을 뻔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매니저에게 민 대표가 마주 놓인 소파를 친절히 가리켰다. "저쪽으로." "아. 예…."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하죠. 곧 뉴욕으로 옮겨갈 예정입니다. 먼저 가서 현지 생활에 적응하고 계시죠." "예? 뉴욕이요? 거기까지 저를 왜…." 뉴욕행을 기정사실로 해놓고 통보를 하는 통에 어리둥절하기도 잠시, 매니저는 더 구체적인 지시가 따라 나오기 전에 선수를 쳐야 할 것 같았다. "대표님…. 저기 이거." "뭐죠?" "사직서입니다." 민 대표는 테이블 위에 놓여 제 앞으로 죽 밀려온 봉투를 한동안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가타부타 입을 떼지 않는 민 대표의 눈치를 살피며 매니저가 결론을 맺으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동안 여러모로 감사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