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 하는 짓이야? 저 여자를 푸대접했다고 비난하는 거야?’
‘모든 게 저 여자의 자업자득인데, 무슨 자격으로 여기서 불평하는 거야!’
아람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드러났지만 이준은 자작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스스로 자기 체면은 생각지도 않고 굳이 이런 수작을 부려? 뭐 혼자 무안하게 연극하다 결국 순순히 집으로 기어들어오겠지!’
“작은 사모님.”
과연 집사 이명철이 맞이할 때 이준의 뒤에 오고 있는 아람을 보고 인사했다.
이준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했다. 이렇게 끝도 없이 수작을 부리다가 빨리 죽을 수 있다는 걸 저 여자에게 좀 일깨워줄 필요가 있었다.
이준이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봐…….”
“감사합니다.”
멈추지 않고 곧장 이준을 지나친 아람은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온 심씨 저택 가사도우미 김춘자로부터 작은 가방을 건네어 받았다.
그리고 이명철을 돌아보며 말했다.
“앞으로는 임아람 씨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방에 있는 물건은 다 필요 없으니 마음대로 처리하세요.”
이 말을 하고서 몸을 돌려 걸어나갔다.
이준은 할 말을 잃었다.
‘임아람이 지금 이 집사와 춘자 아주머니에게 말을 하고 나만 무시하고 지나간 거야?’
눈을 크게 뜬 이명철과 김춘자도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아람을 보았다.
‘예전 같았다면 심이준 도련님 있는 곳에서 작은 마님은 조심 또 조심하며 계속 도련님 비위를 맞추었을 텐데.’
‘오늘 이건…….’
밖으로 나간 아람은 아직 거기에 서 있는 주동건을 마주했다.
“가자.”
동건이 재빨리 차문을 열었다.
“네, 아람 누나.”
두 사람이 차에 탔다.
“유정이는 미쳤다고 치고, 너는 왜 따라 미쳤니?”
차에 이르러서야 아람은 굳은 얼굴로 책망했다.
오늘 이렇게 큰 자리를 차리자 아람은 보나 마나 유정이 생각해낸 것임을 알고 있었다.
동건도 쑥스러운 표정으로 턱만 만지작거렸다.
“유정 누나가 이거 깜짝 놀라게 하려던 거 아니야?”
‘이게 무슨 서프라이즈야, 분명히 놀란 거야.’
아람도 동건의 본의가 아니라는 것을 안 아람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정의 목소리가 정신을 맑게 했다.
[어때? 심이준 그 자식이 자극을 받았겠지. 안심해, 이것은 단지 첫 걸음일 뿐이야. 이제 내가 하나씩 더 큰 것들을 준비해서 심가 놈에게 똑똑히 보여 줄 거야, 네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심씨 저택.
아람이 한참 전에 떠났지만 이준은 여전히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작은 사모님이 왜 그 사람과 갔습니까?”
김춘자가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도련님께 전해 드리라고 했는데…….”
‘바람이 났다’는 그 말을 그녀는 감히 뱉지 못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냉담한 표정을 지운 이준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바로 자리를 옮겼다.
아람은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김춘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작은 사모님, 빨리 돌아오세요. 도련님이 화가 나 보이십니다. 도련님에게 잘 사과하고 해명하세요. 절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소란을 피우지 마세요.”
김춘자가 걱정하는 말을 들은 아람은 더없이 평온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심이준 씨가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 이미 이혼 수속을 마쳤어요.]
“이…… 혼요?”
전화를 잡고 통화 중이던 김춘자는 옆에서 음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까 그 플래카드를 보고 그냥 장난인 줄 알았어.’
‘정말 진짜였어?’
앞서 아람의 반응을 재빨리 떠올린 김춘자는 ‘끽’ 소리를 내면서 거의 떨어질 뻔했다.
‘설마……. 사모님이 도련님을 찬 거야?’
이준은 김춘자가 한참 동안 아람이 돌아올 구체적인 시간을 말해주지 않자 짜증이 났다. 결국 참지 못하고 다가온 이준이 수화기를 빼앗아 말을 하려던 참에 저편에서 아람의 음성이 들렸다.
[도련님께 안심하라고 전해주세요. 이혼하고 그 사람은 그 사람 길을 가고 나는 내 길을 가면 되니까, 서로 전혀 신경 쓸 것 없다고요. 또 내가 은행 카드 한 장을 택배로 보냈는데, 안에 있는 돈은 그 사람 장래 결혼 축하 선물로 간주하라고 하세요.]
아람의 말이 끝나는 순간 집사가 택배 기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택배 기사가 은행카드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 카드를 주시하던 이준은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했다!
결혼기념일에 자신이 아람에게 던졌던 카드였다.
택배 기사는 사인을 해 달라고 말해야 했지만, 정말 사람을 죽일 듯이 음산한 이준의 얼굴을 보고 감히 무슨 말을 하지 못하고 놀라서 바로 뛰어나갔다.
다른 곳, 진유정의 집.
임아람으로부터 모든 과정에 대한 말을 들은 유정은 기뻐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람아, 너 정말 대단해! 네가 그에게 이렇게 두 번째 결혼식 선물을 줬으니 심이준 그 나쁜 놈은 아마 화가 나서 피를 토할 거야! 통쾌해!”
말을 하며 손가락을 튕긴 유정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바로 두 번째 거 준비하자! 지난번에는 신인이어서 주의를 끌기에 부족했어, 이번에는 꽤 프로급 연기자를 써야 해!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심 찌질이를 화나게 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해!”
“더 이상 미진 짓 하지 마.”
아람이 유정을 붙잡았다.
“심이준의 은행카드를 돌려준 건 단지 둘이 서로 빚지지 않기를 원해서야. 네가 다시 이런 일을 벌이면 그 사람은 내가 자기를 잊지 않는 줄 알 거야. 나는 지금 석 달만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어. 완전히 이혼하게 되면 철저하게 갈라서는 거야!”
유정은 아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유정은 더 이상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그럼 그 찌질이를 잠시 내버려 두자!”
“참, 귀염둥이가 곧 돌아오지 않아?”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그녀가 물었다.
‘귀염둥이’ 라는 단어는 마치 신기한 암호 부적과 같다. 임아람의 그 조용한 얼굴이 갑자기 따뜻해지면서 아주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아람이 눈빛을 빛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튿날 오후 4시가 넘자 아람과 유정이 스타유치원 입구에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주풍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아이가 어깨를 움츠린 채 걸어 나왔다. 큼지막한 눈에는 조심스러운 빛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