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다고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못하도록 직원들한테 단단히 일러 둬”
“제가 단속하지 않더라도 도련님이 친히 성원제로 데리고 왔다는 걸 모르는 놈들이 없으니 말이라도 걸어 보겠다고 생각하는 놈들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주의는 주도록 하겠습니다"
자세를 원래대로 돌려 앉은 우빈은 다시 커피를 마셨고 그런 도련님을 바라보던 순길은 굳이 은초희를 성원재에 들인 이유를 물었다.
"꼭 그래야 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아가씨를 집으로 들인 이유가 뭡니까! 노다지나 다름없는 사채업장 한꺼번에 폐쇄 됐으니 열 받아서 난리는 치겠지만 경찰에서 자료를 전부 가지고 갔으니 일을 시작하려고 해도 부담이 클 텐데"
“네 말대로 노다지 사업장 몽땅 털렸다는 거 내일이면 보고 받을 텐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경찰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사람은 회장님 말고는 없다고 생각할거고 그렇다면 회장님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안다는 뜻이니 얌전히 지낼 사람이지 일반인을 건드릴 정도로 베짱이 좋은 인물은 아니야"
"내가 늘 말하지만 그 늙은이는 이리보다 더 영악한 놈으로 승냥이보다도 못한 놈이야.
사채사업장이 털렸더라도 선금을 받은 계약 건들은 확실하게 마무리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선금에 몇 배를 더해 위약금으로 돌려줘야 하는데 그 늙은이가 돈을 토해낼까 아니면 약속한 물건을 넘기려고 할까! 무슨 수를 쓰든 은초희랑 은초선을 확보하려고 들 거야"
“일반인을 건드는 게 걱정됐으면 은철씨뿐만 아니라 가족들 전부를 다른 지역으로 보냈으면 되잖아”
"은철씨 가족 전부를 해외로 보낸다고 해도 끝까지 쫓아가서 고객한테 넘길 인간이야 그 늙은이는.
그런 늙은이한테서 확실하게 보호하려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내 품으로 데리고 오는 게 가장 현명한 결정이지 않겠어"
"은초선도 거래 대상인데 왜 은초희만 데리고 왔어?"
“은초선한테는 미행을 붙이지 않았는데 은초희한테만 미행을 붙였다는 건 은초선은 거래가 끝나지 않았다는 거야.
그러니 아무리 은밀하게 거래를 한다고 하더라도 강령경찰서하고 회장님이 자료를 다 가지고 있으니 당장 거래를 시작하지는 않을 테니 언니쪽은 안전해"
"감쪽같이 사라진 은초희를 찾지 못하게 된다면 거래가 불발될까?"
"약속한 날짜가 있을테니 그때까지 찾지 못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위약금을 다 물어내기 보다는 대체 자를 찾아서 어떻게든 계약은 성사 시킬 거라고 봐"
세상 나른한 표정으로 어른들이 오기를 기다려 커피를 마시고 있는 도련님에게 순길은 아가씨를 얼마나 보호할 생각인지 물었다.
"아가씨는 언제까지 여기서 보호하고 있을 생각이야"
"늙은이가 죽을 때까지"
"왜, 대체 자를 찾아서 계약 끝내면 더는 찾을 필요가 없잖아"
"큰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데 그냥 둘 리 없지"
“혹시 보호하려는 마음 말고 다른 마음이 들어서 성원재로 들인 거 아니야?"
"다른 마음? 어떤 다른 마음!"
저를 보는 눈빛에서 음흉한 기운을 느낀 우빈은 그제서야 질문의 뜻을 이해하고는 주먹으로 순길의 가슴을 쳤다.
"야! 솜털도 안난 애를 두고 내가 설마 그런 저질스런 생각을 했을까"
"리조트에서 만났을 때부터 마음에 들어한 데다 차우빈답지 않게 지나치게 관심과 애정을 쏟으니 이상해서 그렇지"
"마음에 들어서 집으로 들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인간 쓰레기가 될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해"
"둘이 왜 그렇게 다정하게 붙어있어 "
“다정하기는요. 요즘 그런 농담 잘못하다가는 경찰서 잡혀가니 조심하세요”
별채를 들어서다 어깨를 바짝 붙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우빈과 순길을 본 차희태 농담에 질색하는 도련님 답변에 최두식전무와 변종현실장은 뒤따라 들어오면서 웃었다.
“무슨 할 말이 있기에 휴일에 늙은이들을 다 불러 모았어?”
“세 분이 아셔야 될 일이 있어서 모셨어요”
평온하고 고요한 밤을 보낸 성원재와는 달리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강령과 사채사업장 상황에 대해 들어 알고 있는 최두식을 제외한 차희태 회장과 변종현 실장은 우빈에 말에 집중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르신들이 제게 시선을 집중하자 우빈은 지난 밤에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어제 전필용한테서 블랙강령을 넘겨 받았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지난 밤에 해결했다는 말을 들은 차희태회장과 변종현실장은 나란히 앉아 있는 우빈과 순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귀를 의심하는 순간이 지나고 지난 밤에 전필용이 사인하고 지장까지 찍은 계약서를 순길이 내밀자 계약서를 건네 받은 차희태는 제 아들과 계약서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전 사장이 강령을 순순히 내줄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된 일이야!”
“세상에 자기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회장님”
“목숨보다 중요한 게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제대로 얘기해 봐 아버지 속터지게 하지 말고”
“회장님! 십년 전에 저 납치한 범인 누군지 아직도 모르시죠?"
"그렇지 경찰에서 몇 달을 매달렸는데도 단서 하나도 못 구했고, 지금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는 거 너도 알잖아"
"강령 경찰에서 몇 달을 매달렸는데 단서도 흔적도 찾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있으세요?”
아들이 납치되었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연줄을 동원해 범인을 찾아내려고 몇 달간 전담팀도 운영했지만 작은 단서조차 찾지 못해 납치사건은 미결사전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경찰에서 미결사건으로 종결 된 이후 조직에서 팀을 꾸려 범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마저도 헛수고였다.
“그때 조직에서 범인을 찾기 위해 팀을 꾸렸었는데 그때 전필용이 팀장이었죠!"
"그랬었지. 그때 전필용이 회장님 수행비서를 담당하고 있어서 회장님이 믿고 맡기셨지"
"그래서 못 찾으신 거에요”
그래서 못 찾았다는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하던 차희태는 조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박했지만 최두식전무가 차희태회장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어제 전필용이 계약서에 도장 찍을 때 증인으로 제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도련님이 그때 일을 하나씩 되짚으며 추궁하자 자신이 범인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십년 전 본인이 저질렀던 범죄에 대해 입다물어 주는 대가로 강령 받아낸 거에요”
“그런 일이 있었으면 아버지랑 상의 하고 일을 진행했어야지 왜 멋대로 입을 다물어 준다고 하고선 계약서를 쓴 게야!”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전 사장을 상대로 어떻게 하시려고요!
십년 전에 그랬듯이 회장님은 지금도 절대로 전필용한테 손 못 대세요”
“범인이 누구인지 회장님께 말씀 드렸다면 어떻게든 전 사장한테 죗값 치르게 하셨을 겁니다 도련님”
“등 뒤에서 칼 꽂으려고 몇 년 째 칼을 갈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못하고 걱정만 하고 계시는 분이 죗값을 어떻게 받아내시려고요? 쓰레기 같은 전필용 인성에 호소하면서 속죄한다 생각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하실 거에요?”
손님들이 있었지만 아버지이자 회장님을 지독하게 몰아붙이는 도련님을 보고 있는 변종현실장 얼굴을 돌처럼 굳어졌고, 차희태는 냉정하면서도 냉철하게 자신을 꽤고 있는 아들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했다.
“전 사장이 범인이라는 건 언제 알았니?”
“납치된 당일에요”
십년 전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지금까지 함구하고 있었던 지독한 아들에게 차희태는 왜 그때 말하지 않았는지 차분하게 물었다.
“그때 누군지 알았으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한테 말을 했어야지, 왜 모른 척 했어”
“그때 회장님 옆에 붙어 있었던 사람은 변종현실장이 아니라 전필용이었어요. 그런 전필용이 제가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저를 그냥 뒀을까요? 시작이 어려운 거지 한번 시도했다가 덤으로 돈까지 벌었는데 다시 납치해서 없애는 게 그 늙은이한테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생각도 못한 범인의 정체와 사십 년이나 어린 아들의 냉철한 지적에 차희태 회장뿐만 아니라 변종현실장도 최두식전무도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침묵만을 지킬 뿐이었다.
“제가 당한 일이니 제 방식대로 묵은 빚 청산 한 거니 다들 그런 표정하고 계실 필요 없어요”
“차우빈!”
“회장님이 아무리 화를 내도 당사자인 제가 끝낸 일이니 받아 들이세요.
그리고 세분한테 말씀 드리지만 제 복수는 강령을 받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복수의 첫 시작이라는 거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우빈아?”
“비록 매출이 바닥이기는 하나 결국에는 블랙의 상징은 강령이에요. 그곳을 빼앗기다시피 저한테 넘겼으니 속은 쓰리겠지만 서울로 올라가서 본인 전속라인을 정비할 때까지는 얌전할 거에요. 그렇지만 그 시간이 길지는 않을 거라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기 전에 전필용 기를 살짝 꺾어 놓을 생각입니다”
도련님 말이 끝나자 순길은 또 다른 서류 봉투를 회장님 앞에 내려 놓았다.
전필용이 어떤 방식으로 비자금을 모으고 있었는지 자신들이 모은 자료와 어제 강령과 서울 사채업장을 털면서 복사해온 서류들을 정리해 일부를 가지고 온 순길이었다.
순길이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서류들을 살펴보던 차희태회장은 어딘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은..철.. 이 사람 혹시 초희 학생 아버님 아니냐!”
“맞아요. 강령 사채사무실 위치랑 현지용역이 누군지 정보를 제공하신 분이에요.
지금까지 자료를 많이 모으기는 했지만 업장을 치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려야 했는데 그분 덕분에 일이 빠르게 진행돼서 어제 전국 사업장 동시에 털었어요”
"어제 전국을 동시에 털었다는 말이야?"
"네"
"네가 처리하기로 한 거니 일정도 네가 정하는 것이겠지만 아버지한테 미리 말은 했어야지"
"회장님 도움을 받을 것도 아닌데 뭐 하러 미리 말을 해요"
차희태는 들고 있던 서류를 변종현실장에게 넘겼고 변 실장은 찬찬히 서류를 살폈다.
“이 일에 엮인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했어?”
“지역 경찰들이 현장에서 경찰서로 바로 연행했어요.
강령하고 서울 사업장 서류는 저희가 챙겨서 카피 뜬 후에 경찰로 보내기로 해서 오늘 경찰서로 보내졌을 거에요”
“전 사장이 이대로 조용히 물러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강령사무실은 물론이고 클럽까지 어제 밤에 깔끔하게 접수했으니 전필용은 이제 강령에서 아무것도 못해요"
주말까지 성원재로 들어오라며 최후통첩을 날린 이유가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이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눈치 챈 차 회장은 넋을 놓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놀라실 거 없어요. 말씀 드렸듯이 복수는 이제 시작했을 뿐이니까 앞으로 놀랄 일 많은텐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보고 있던 차 회장과 변 실장, 최 전무는 헛웃음을 흘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채업장에서 찾아낸 현금 중 절반은 증거물로 경찰에 넘기기로 했고 그 중 절반은 이번 작전을 함께해준 경찰한테 활동비로 사용하라고 보낼 겁니다. 남은 현금이랑 강령클럽에서 나온 현금은 성원재 운영자금으로 사용 할 테니까 아까워하지 마세요”
“아! 전필용이 강령사무실로 쓰는 곳에서 비밀금고가 나왔는데 거기 있는 현금이나 기타 등등은 장부에도 없는 눈먼 돈이니 제가 필요한 곳에 적절히 쓰도록 할게요”
할말이 끝났다는 듯 우빈과 순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어른들 머리고 자동을 들렸다.
“드린 서류는 사본이니까 찬찬히 확인하시면 되고 세 분이 나눌 이야기가 있을 듯 하니 저희 먼저 나갑니다”
▷▷▷
카지노에서 차우빈한테 돈을 잃고 최두식과 새벽까지 술을 마신 후 호텔로 올라간 그는 골드써클에서 보내 준 호스티스와 질펀한 새벽시간을 보낸 후 잠자리에 들었다가 저를 깨우는 여자 목소리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밤과는 다른 여자가 식사를 해야 한다며 저를 침실에서 데리고 나가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리빙 룸으로 가자 호스티스와 함께 식사를 하고는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소문 자자한 카지노 골드써클 호스티스로부터 낮부터 농밀하고 끈적한 시중을 받으며 전필용이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차우빈은 클럽영업을 마감하고 업장 폐쇄까지 마무리했다.
낮부터 걸쭉한 시중을 받으며 체력을 많이 소진한 전필용은 이른 저녁을 먹고 노곤해진 몸을 쉬게 하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호텔을 나섰다. 젊은 아가씨들한테 시중을 받아서 그런지 몸에 기운이 넘치고 기분도 좋아 가벼운 마음으로 차에 오른 전필용은 카지노에 들어가면서 꺼두었던 핸드폰을 켰다가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는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틀 내내 연락이 안되어 걱정을 했다던 비서는 금요일 밤에 성원재 도련님이 클럽과 사무실을 장악했다고 보고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지만 사무실 정리할 시간도 주지 않고 두 곳을 장악했다는 말에 클럽과 사무실에 있는 서류와 돈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사장님 질문에 비서는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고 보고 한 후 전국 사채업장에 경찰이 들이닥쳐 직원들은 물론이고 사무실에 있는 모든 것들이 경찰서로 담겨 갔다고 보고 했다.
클럽과 강령뿐만 아니라 사채업장까지 급습을 당해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는 보고에 전필용은 이성을 잃었고 전화기를 바닥에 던지며 육두문자를 날렸지만 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전필용은 사무실이 아니라 강령에 있는 집으로 가서는 제 아들에게 중요한 물건들만 챙겨서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하라고 지시한 후 강령을 떠나기 위해 차희태 회장 허락을 받기 위해 성원재로 향했다.
자신에게 가장 큰 돈을 벌어주던 사채업장이 전부 털렸다고 하니 돈이 마르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허니 준비하고 있던 일은 당분간 보류해야 했고 되도록이면 차희태 회장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바짝 엎드려 있어야 했다. 더군다나 차우빈이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몰랐기에 서둘러 강령을 벗어나야 했다.
약속도 없이 전필용이 검문소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은 차희태는 강령을 떠나기 위해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러 온 그를 안으로 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