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의 결과

5000 Words
순길은 도련님이 지시한대로 은행 고객인 듯한 남자에게 연락처를 받은 후 제 이름과 연락처가 있는 명함은 건넨 주었다. 그리곤 도련님이 강조한대로 외출을 삼가 하라는 말을 남기고 남자를 먼저 보낸 후 도련님을 뒤따라 갔다. ▷▷▷ 은행 회의실을 다시 빌린 우빈은 아침일찍 순길과 직원들이 모아온 서류들을 회의테이블에 쭉 펼쳐 놓고 서류에 적혀있는 내용들을 비교하면서 천천히 훑어 보았다. 두시간 째 말없이 서류만 살펴보던 우빈은 회의 테이블 끝에 순길이 조용히 올려 둔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창문 앞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반정도 비울 때까지도 말이 없던 그는 밖에 나갔던 순길이 들어와 질문을 하자 그제서야 커피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서류 확인이 끝나나 봅니다” “응! 확인하고 생각 좀 정리하고 있었어” “도련님 생각대로 그쪽에서 벌인 일이 맞는 겁니까?” “내가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닐까 했는데 아니야. 조직에서 엄격하게 막고 있는 불법사채를 강령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약점을 잡히는 일인데 아가씨 장사까지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늙은이는 범죄를 저지르는 일에는 도가 튼 인간이야" "아가씨 장사라고 하시면” “늙은이가 하는 장사는 일반적인 아가씨 장사랑 달라. 남자경험이 없는 여자를 찾는 돈 많은 남자와 은밀하게 거래하면서 상당히 높은 가격에 팔고 있을 거야” “우리 나라에서 그런 일이 가능한 겁니까!” “돈 많은 사람들 중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스폰을 하는 이유도 그런 맥락이잖아” 돈이 넘치도록 많은 집안 남자들이 어린 여자들을 스폰 하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었다. 지금처럼 사채업자를 끼고 어린 여자들 거래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지 한참되었지만 증거를 찾지 못해 뜬소문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 덕분에 증거를 잡게 되었다. 소문을 사실로 확인한 도련님에게 순길은 어떻게 할지 물었고 우빈은 더 확실한 증거를 모아야겠다며 순길에게 다시 어려운 일을 맡겼다. “늙은이가 돈을 어디서 충당해서 그렇게 뿌려대는지 궁금했는데 저것들을 대입해 보니 퍼즐이 맞춰지면서 이해가 됐어. 뒷주머니를 얼마나 크게 만들어 놨는지 제대로 확인해 보자” “걸리면 문제가 커질 걸 모르지 않는 사람인데, 배짱이 좋은 건지 무모한 건지 모르겠네요” “회장님을 우습게 보고 있으니 뒤에서 그런 일을 벌여도 무서운 게 없는 거야” 도련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순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류를 보면 사채를 쓴 사람들 전부 딸이나 누나, 여동생이 있는 사람들이야. 혹시나 해서 사진도 찾아보라고 한 건데 네가 보기에는 어때?” 우빈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사진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순길이 상체를 내려 서류에 붙어 있는 사진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사진만 봐도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십대 중반이상은 없는 것 같네요” “누가 기획한 건지 모르지만 제대로 판을 짰다는 게 확실해. 이 정도면 어린 여자를 가족으로 두고 있는 남자들만 골라서 사채를 권유했다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야” “그런데 돈을 빌린 사람이 갚지 못하면 사채업자도 손해일 텐데요” “그래서 여자들을 시장에 먼저 내놓고 금액이 정해지면 그 금액보다 훨씬 낮은 액수로 돈을 빌려 줬을 거야.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사채이자율은 자기들 마음대로 정하니 몇 달도 지나지 않아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눈덩이가 되어 있을 테니 자신이 죽지 않으려면 딸이든 여동생이든 팔아야 했을 거야” 줄을 맞춰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서류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던 우빈이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은철씨한테 연락해서 이쪽으로 바로 나오라고 해. 은행에 혼자 못 들어오니까 순길이 네가 나가서 데리고 와야 된다” 명함을 받았던 은철은 연락을 주겠다고 하던 남자가 이틀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어 절대 오지 말라던 경고를 받았음에도 그를 만나기 위해 은행으로 나가려고 옷을 챙겨 입다가 명함에 있던 전화번호로 연락이 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은행으로 달려갔다. 은행 정문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순길은 은철이 도착하자 그를 데리고 도련님이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로 올라갔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은철은 자신을 데리고 온 순길의 안내에 따라 자신을 부른 남자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제가 몇 가지 물어 볼게 있는데,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네” “사채는 어쩌다 쓰신 겁니까?” “제가 도박장에서 돈을 다 잃어서 집으로 가고 있는데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곳이 있다고 소개를 받아서 찾아갔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은행보다 이자율이 낮아서 돈을 빌렸습니다. 돈을 빌린 지 한달이 지나서 이자를 갚으러 갔더니 자신들이 말한 이자율은 하루 이자율이었다면서 원금보다 많은 이자를 갚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돈을 빌려주는 곳을 소개해 준 사람은 아는 사람입니까?” “중고등학교 동창인데 학교 다닐 때 친하지 않았는데 작년인가 재작년에 아이들이랑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아는 척을 해왔고 그 이후로 종종 연락해 와서 몇 번 만났습니다” “그 사람 연락처를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은철은 핸드폰을 꺼내 동우라는 이름을 찾아 우빈에게 건넸고 핸드폰을 본 우빈은 순길에게 번호를 적어두라고 한 후 핸드폰을 은철에게 다시 돌려 주었다. “사채는 언제까지 갚아야 합니까?” “이번 주 토요일까지 이자랑 원금까지 전부 갚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은철씨 자녀가 셋이던데 사채업자가 아이들 중 누가 빚을 갚아야 된다고 말하던가요?” “딸이 둘인데 둘 다 데리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내용을 다 알고 물어보시는 겁니까!” 은철을 만난 다음날 순길에게 그동안 모아왔던 자료들을 처음부터 살폈던 우빈은 그 모든 서류들이 한 곳으로 통한 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 끝에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늙은 승냥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제게 질문을 한 은철이 자세한 내용은 알 필요가 없었기에 우빈은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안았다. “사채업자에게 갚아야 할 돈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그게.. 이억이 조금 넘습니다” “그 많은 돈을 다 도박으로 탕진하신 건가요?” “아닙니다. 은행보다 이자율이 낮아서 은행 대출을 갚으려고 빌렸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은철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사채로 은행 빚을 돌려 막기 하려다 제대로 눈탱이를 맞았다는 이야기였다. “은행에서 대출이 안된다는 건 어제 들어서 아시죠?” “네? 예..” “하여, 제가 개인적으로 은철씨가 갚아야 할 사채를 정리해주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몇 가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건을 들어봐도 됩니까?” “첫 번째 조건은 가족을 담보로 잡았으면 합니다” “그런 조건이라면 사채업자들이 말한 것도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담보로 잡겠다는 말 때문에 그리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제가 원하는 건 담보가 된 은철씨 가족들이 허락 없이 강령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겁니다” “다른 조건은 또 어떤 것입니까?” “다른 한가지는 제가 일자리를 제안할 테니 그곳에 가서 일을 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그 두 가지 조건이 다 인가요?” “상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한두 가지가 더 추가 될 수 있지만 방금 말한 두 가지 조건처럼 은철씨나 가족들이 충분히 들어 줄 수 있는 내용들 일겁니다” “그런 정도의 조건이라면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은 사채 정리가 급하니 그 문제를 해결할 준비를 해야 하니 자세한 내용은 차후 직원을 통해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의실 앞에서 잠시 기다리면 저희 직원이 밖에까지 안내할 겁니다” 은철은 제게 빚을 갚아주겠다는 젊은 남자에게 허리 숙여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회의실을 나갔다. “은행 밖에까지만 데려다 주고 사람 붙여서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봐. 여기서 나가서 도박하러 가면 도와주기로 한 거 취소 할거니까” “알겠습니다” “아들은 이번 일과는 상관없을 테니 괜찮을 거고, 딸들한테 애들 붙여서 특이사항 없는지 확인해 보라고 해” “네” 자신이 죽더라도 해결하지 못할 어려운 문제를 행운처럼 만남 사람 덕분에 어렵지 않은 조건을 들어주고 해결할 수 있게 된 은철은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배웅을 받고 은행을 나와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삼년 전까지만 해도 탄탄한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은철은 동우라는 그리 가깝지도 않은 동문과 우연히 만난 후로 도박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그러다 일년 만에 자신이 가진 재산을 다 날리고 사채까지 끌어 쓰게 된 말 그대로 호구 그 자체였다. 그나마 부인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도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부인 몰래 쓴 사채가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부인과 딸에게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것이 갚아야 할 기한이 열흘 남았을 때였고 부인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듣고는 은행에 찾아가 죽치고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은철은 집으로 가는 골목 입구에서 파는 붕어빵을 사서 집으로 들어갔다. “아빠 왔다” “오늘 일찍 왔네” “누나들은?” “큰누나는 학원에 갔고 작은 누나는 아르바이트 가서 아직 안 왔어” “그렇구나. 그럼 찬이 먼저 먹고 누나들 거 남겨 놔” 찬이는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온 아빠가 사온 붕어빵을 먹으면서 티브이를 보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갔다. ***** 은철을 보낸 후 최두식전무와 잠시 만나고 성원재로 돌아온 우빈은 응접실 소파에서 책을 보고 있다 순길이 봉투를 들고 중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우빈은 이층으로 올라가자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자 순길은 도련님을 따라 이층으로 향했다. 이층에 제 방에 들어선 우빈은 책장 뒤에 만들어 놓은 조용한 장소로 순길과 들어갔다. “은철씨는 은행에서 나가서 집으로 바로 갔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자료입니다” 작은 티 테이블 위에 순길이 서류 봉투를 내려 좋자 봉투에 들어 있는 서류를 꺼내어 읽어 보았다. 몇 시간 만에 은철의 가족들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아냈는지 상세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우빈이 서류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말 없이 지켜보던 순길은 조사한 내용 중 특이사항이 있다며 구두로 직접 보고를 했다. “둘째 딸을 담당했던 직원이 하는 말이 전필용 밑에 함선이라는 놈이 있는데 그 놈이 둘째 딸이 아르바이트 하는 장소에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곳에 볼일이 있어서 왔겠거니 생각하고 주의 깊게 보지 않았는데 우리가 지켜보는 학생이 아르바이트 끝나고 나갈 때 뒤를 따라 가더랍니다. 그래서 두 사람 다 뒤를 밟았는데 그 함선이라는 놈이 학생이 본인 집에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는 돌아갔다고 합니다” 순길의 얘기를 듣던 우빈은 보던 서류를 내려 놓고는 생각을 하려는 듯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튕겼다. 그러기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우빈은 순길에게 물었다. “둘째 딸을 담당한 사람이 누구야?” “원일이 입니다” “첫째한테 붙은 사람은 별다른 얘기는 없었어?” “충재가 담당이고 특이사항 보고는 없었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두 사람한테 다시 붙으라고 하고 원일이는 아르바이트 장소에 그 놈이 다시 나타나면 바로 연락하라 해. 그리고 은철씨한테 연락해서 내일 은행으로 한번 더 나오시라고 해” “알겠습니다” 테이블에 내려둔 서류를 다시 들어올린 우빈은 서류들 사이에서 그 동우라고 했던 남자에 대한 조사내용을 읽어내려 갔다. “동우라는 사람은 전필용 직속소속은 아니고 하청 받아서 일하는 용역 같습니다. 그동안 조사한 다른 지역들과 동일하게 그 지역출신 사람을 뽑아서 현장용역으로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직속 직원들에게 일을 시켰다면 비밀을 지키면서 장사를 하기 어려웠을 테니 회장님 눈을 피하려면 사람들을 구해서 일을 했어야 했겠지. 몇 년 동안 딴 주머니를 크게 키우고 있었는데도 눈치 빠른 최두식전무조차 알아채지 못했으니 계획은 성공했네” “말씀하신 대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으니 그동안 꽤 많은 돈을 모았겠습니다” “그러니까 모아둔 돈을 적극적으로 쓰면서 살 수 있도록 조만간 작업 들어 가야 하니 애들한테 준비하라고 일러두고 오늘도 늦게까지 고생했다. 너도 그만 쉬어” 오늘 해야 할 일이 마무리가 되었다며 도련님이 퇴근을 알리는 말을 하자 순길은 편안하게 질문을 했다. “한가지 물어봐도 돼?” “어떻게 그렇게 빈대떡 뒤집듯 확 바뀌는지 궁금하다” 우빈의 말에 순길은 웃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우빈은 뭐가 궁금한지 물어보라고 말했다. “질문이라는 걸 안하던 사람이 질문을 한다고 하니 내가 더 궁금하네! 최순길씨는 뭐가 궁금해?” “은철씨를 왜 도와주려고 하는 거야? 그런 사람들이 널리고 널린 게 강령이고 도박하는 사람들한테 이런 도움은 독이 되면 되었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왜 생각을 바꿨는지 궁금해” “독이 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은행 앞에 쭈그려있던 모습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도와줘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내 예감을 믿어 보기로 했어” “예감? 차우빈이 감정적인 결정을 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뜻밖이다” “나도 내가 그럴 줄 몰랐으니 네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는 가” “평소와 달리 예감을 믿기로 한 이유는 뭐야?” “당장이라도 바다에 뛰어들 듯한 남자를 도와주면 일생에 한번 올만한 큰 행운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일생에 한번 올 큰 행운을 잡기 위해 선행을 먼저 한 거라고!”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나도 궁금했는데 선행이라고 하니 듣기 좋네” 순길은 자신이 내뱉은 말이 우빈과 어울리지 않아 웃었고, 우빈은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빌려주는 일에 선행이라는 단어가 붙으니 어이가 없어 웃었지만 뜻하지 않은 오지랖을 부린 덕분에 막혀 있던 일이 풀렸으니 어쩌면 이것이 선행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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