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과 아들의 날선 대화

5000 Words
“할 말이 있다고 해서요” “헐.. 순진해서 당한 건지 알면서도 오기로 온 건지 모르겠네” “학교폭력이 단 한번도 없었던 학교라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생각 못했거든요” “아마도 은초희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예인재단 집단폭행 피해자로 기록되기는 하겠다” “그 와중에 얼굴을 잘 감췄는지 찢어지거나 피가 나는 곳은 없는데 붓기가 꽤 갈 텐데 괜찮겠어?” “어쩔 수 없죠. 그리고 일방 아니고 쌍방폭행이었어요” “나도 봤어. 그런데 네 명이 한 명을 상대했으니 이런 일은 쪽수 많은 쪽이 더 나쁜 거야. 그리고 딱 봐도 걔들은 이미 작정하고 왔던데, 그러니 나쁜 년들 맞아” 제 앞에서 대놓고 욕을 하는 선배를 보며 초희는 피식 웃었다. “은정아 너랑 사이즈 비슷하니까 얘한테 유니폼 한 벌 빌려줘” “흙먼지 묻은 거라 털어내면 돼요” “너 성원재에서 매일 데리러 오던데 흙 바닥에 뒹군 옷 입고 차에 타면 안 좋아 할거야” 은정이 제 옷을 건네 주자 초희는 인사를 했다. . “감사합니다” “저쪽으로 돌아가면 탈의실이니까 가서 갈아 입고 와” 도련님이 서울에서 있는 날이면 하교시간에 맞춰 아가씨를 데리러 오는 원일은 학교에서 조금 늦게 나간다는 아가씨 문자를 받고는 커피를 한간 하고 싶어 학교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 들고 학교로 다시 향했다. 땅바닥에 누워 일방적으로 온몸을 구타당해 상태가 좋지 않은 초희를 현주는 몸이 가장 좋은 친구에게 교문 앞까지 데려다 주라고 했다. 교문 앞에 있는 화단까지 초희를 데려다 준 선배는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갔고 화단에 앉아 쉬면서 자신을 데리고 갈 차량이 보이지 않자 택시를 타고 성원재까지 가야 할지 아니면 차가 올 때까지 기다릴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익숙한 번호판이 달린 차량이 다가오자 가방을 품에 안고 몸을 세웠다. 제가 늦게 도착했는지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가씨를 본 원일은 매일 차를 다는 화단 앞에 주차를 한 후 차에서 내려 가방을 품고 있는 아가씨에게 다가갔다 엉망이 된 몰골을 보고 놀랐다. “아가씨, 얼굴이 어쩌다 그렇게 되신 거에요?” “테니스 하다 운동장에 그대로 다이빙해서 그래요” “아이고.. 테니스는 갑자기 왜요!” “동아리 입회 테스트를 받았어요” “국가대표 테스트도 아닌데 대충 하시기 얼마나 열심히 하셨길래” “지는 걸 싫어해서요” “아이고, 얼른 차에 타세요. 약은 발랐어요?” “동아리 선배님들이 발라 주셨어요” 재단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나여진이사장은 고등학교장으로부터 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며 상황보고를 받다가 피해자가 ‘신입생대표 은초희 학생’이라는 말에 통화를 끝내지도 않고 바로 퇴근해 성원재로 달려갔다. “최 실장, 올라가서 초희 데리고 와요” 차에서 내린 이사장님이 아가씨를 데리고 내려오라고 하자 최윤희실장은 빠른 걸음으로 이층으로 올라가 아가씨 방문을 두드렸다. “아가씨, 최윤희실장입니다” 여기저기 사정없이 두들겨 맞은 상태라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 침대에 누워 있던 초희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방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반나절 만에 엉망이 된 얼굴로 저를 맞이하는 아가씨를 본 최윤희실장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자동으로 흘러 나왔다. “이사장님께서 일층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으셨나 봐요?” “학교에 문제가 생겼으니 교장선생님이 이사장님께 직접 전화를 하셨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초희는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최 실장을 따라 나섰다. 계단 아래서 기다리다 초희 얼굴을 본 여진은 제 방으로 데리고 갔다. 방으로 초희를 데리고 들어간 여진은 초희에게 옷을 벗으라고 하고는 몸 구석구석을 직접 확인하고 강령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으로 출발하면서 병원장에게 미리 연락해둔 덕분에 응급실에서 나여진이사장을 기다리고 있던 병원장인 환자인 초희를 응급의학과장에게 맡기고 전신 씨티를 촬영하도록 지시했다. “만 나이로 열여섯이라 전신 씨티 촬영을 했는데 성장판도 그렇고 중요 근육이나 뼈도 다행이 상한 곳은 없습니다. 대신 전신에 걸쳐 타박상이 상당히 많습니다. 지금은 티가 안나지만 아마 저녁만 되어도 여기저기 멍 자국이 올라오기 시작할 겁니다” “몸은 그렇다 치고 얼굴은 얼마나 지나야 가라앉을까요?” “얼굴도 사나흘은 지나야 부기가 가라앉을 겁니다. 그래도 얼굴에 상처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나여진이사장은 병원장 말에 머리를 끄덕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학생이 전신 구타를 당하고 응급실로 들어왔기에 병원장은 의료인으로서 지켜야 할 규칙이 있기에 불편하지만 이사장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환자가 미성년자라 확인을 해야 되는 일이라 그러는데, 어쩌다 저렇게 된 겁니까?" "학교에서 문제가 있었어요" "병원 응급실로 미성년자가 저런 상태로 들어오며 보통은 경찰에 신고를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내일 학폭위가 열리면 어떻게 할지 결정이 내려질 겁니다. 내일 오후까지 연락 드리도록 할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나여진이사장과 이야기를 끝낸 병원장은 응급실 베드에 앉아있는 환자에게 다가가 주의사항을 이야기했다. “지금도 여기저기 많이 아프겠지만 며칠간 근육통으로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이 아플 수 있으니까 처방한 약은 모두 먹도록 해요” “네” “다행이 얼굴에 멍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충격을 많이 받아서 시간이 지나면서 멍이 생기고 더 붓게 될 거에요. 멍이 들었다고 하더라도 가능하면 손대지 말고 연고는 하루 두 번 발라주도록 해요” “네” 강령클럽을 넘겨 받은 우빈은 노후 된 건물과 인테리어로 한 물간 클럽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기 위해 리모델링을 준비하느라 개강을 한 이후로는 초희 얼굴을 보는 날이 많지 않았다. 오늘과 내일 수업이 있어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온 우빈은 수업을 듣고 주식동아리 친구들과 미팅을 한 후 서울 집으로 가는 길에 아가씨가 학교에서 다쳤다는 원일의 전화를 받고는 곧바로 성원재로 출발했다. 직원 숙소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친 초희를 보기 위해 본채로 걸어가던 순길은 이사장님 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차량이 정차하는 본채 앞에 먼저 도착해 기다렸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순길이 뒷문을 열자 이사장님이 먼저 내렸고 뒤이어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초희가 내리자 순길은 그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오늘은 일찍 퇴근했구나” “네, 아가씨랑 어디 다녀 오시나 봅니다” “얘기는 들어가서 하자” 최윤희실장이 앞서가 본채 출입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자 여진과 초희를 먼저 들인 순길은 최윤희실장을 먼저 들여보내고 가장 늦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최 실장이 초희를 방에 데려다 주고 내려와요” “알겠습니다” “책 보겠다고 의자에 앉지 말고 침대에 누워서 쉬도록 해” “네” 최 실장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올라가는 초희를 바라보고 있던 여진이 순길에게 앉으라며 손짓했다. “많이 다친 모양입니다” “온 몸 전체가 멍이 잔뜩이야” 초희가 올라간 계단을 바라보며 순길이 물었다. “얼굴도 많이 다친 모양입니다” “맞으면서도 얼굴은 잘 지켰는지 멍은 없지만 많이 부었어. 그래도 상처 같은 건 없어서 다행이야" "다행이네요" "아무리 가까워도 사춘기 여고생 자존심에 엉망인 얼굴을 보이고 싶지는 않을 거야” “네” “제법 많이 부어서 멍이 생길 수도 있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면 며칠 걸린 다는데 걱정이네. 너는 초희 다친 거 어떻게 알았어?” “아가씨 학교에서 픽업하는 직원이 전화로 보고했어요. 운동하다 넘어지셨다고 했는데 얼굴도 교복 상태도 엉망이라고 해서 데리고 병원 가려고 일찍 들어왔습니다” “여학생인데 남자랑 같이 병원 가는 건 좋지 않지" "그런 생각은 못했네요" "초희 일은 그게 뭐든 나랑 최 실장이 신경 쓸 테니까 너희는 너희 일해” “뼈가 상한 곳은 없는 겁니까? 올라가는 거 보니까 안 좋아 보이던데요” “네 명이 애 하나를 드잡이 했으니 지금은 온 몸이 쑤시고 아플 거야. 병원에서 사진 찍어 봤는데 뼈도 다친 곳은 없다고 하니까 며칠 아프겠지만 금방 나을거야” “도련님이 보고만 있지는 않을 듯 한데 걱정이네요” “초희도 걱정인데 나는 우빈이가 더 걱정이야. 돌봐주려고 데려왔다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게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밤바다 마음이 편치 않아” "다른 건 몰라도 도련님이 정도는 아시는 분이니 그런 염려는 안하셔도 됩니다" "성인이 된 후로 얌전한 생활 한 걸 못 봐서 그런지 내 마음이 불안해서" "이사장님 아들이잖아요. 툴툴거려도 모범생입니다" "알았다" “학.폭.위 소집하실 겁니까?” “학교평판에 오점 남기는 일은 하고 싶지 않지만 확실하게 정리할 건 정리해야 또 이런 일이 안 생기지. 내일 학교 이사장실에서 가해 학생들 학부모면담 하자고 전달했으니 비상소집 연락도 갔을 거야” “알겠습니다” ***** 엉망인 얼굴로 회장님과 마주앉아 식사를 하는 것이 불편할 초희를 위해 이층으로 식사를 올려 보낸 여진은 식사시간에 맞춰 퇴근한 차 회장과 순길과 함께 식사를 했다. “초희는 학교에서 안 왔어요?” “몸이 아파서 이층으로 식사를 올려 보냈어요” “기온 차가 크더니 감기 걸렸어요?” “네, 몸 살기가 있어서 편하게 먹으라고 했어요” 머리를 끄덕인 차 회장이 수저를 들어 식사를 시작하자 여진과 순길도 식사를 시작했다. 예쁘장한 얼굴에 차분한 목소리로 시사나 경제에도 관심이 많은지 자신과의 대화에도 막힘이 없던 초희 덕에 조용하기만 하던 식사시간이 활기가 넘쳤는데 그런 아이가 아프다는 말에 걱정이 되면서도 적막한 식사시간이 영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 차희태뿐만 아니라 나여진도 마찬가지였다. 수저와 젓가락이 움직이며 식사하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던 식당에 들리지 말아 할 목소리가 울리자 놀란 여진은 식사를 멈추고 식당 입구를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 네가 어쩐 일이야?” “왜 왔는지는 말 안 해도 아시잖아요" "김 여사님! 밥 남은 거 있으면 저도 좀 주세요” “내일 수업은 어떻게 하려고 왔어?” “수업 한번 제 꼈다고 졸업 못하는 거 아니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설사 졸업 못한다고 해도 학교보다는 집안 문제를 더 신경을 쓰는 편이라 왔을 거에요” “집안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회장님 아직 모르세요?” “아프다고만 말씀 드렸어” “회사 직원들이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회장님도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초희 학교 문제는 엄마한테 맡기고 너는 저녁 먹고 서울로 돌아가서 내일 수업 받은 후에 다시 내려와” “초희 비상연락처가 저로 돼 있는 거 모르세요? 내일 학부모 자격으로 참석하니까 그렇게 아세요” “엄마가 학부모로 참석하면 되니까 넌 빠져” “제가 데리고 온 아이에요. 고등학교 입학한지 한달 만에 문제가 생겼는데 저더러 모르는 척 하고 있으라고 하시면 안되는 거 아니에요! 다른 건 몰라도 초희 안위에 관해서는 하나에서 열까지 제가 결정하고 제가 처리해요" 서울에서 출발할 때 마음을 정하고 온 우빈에게 관여하지 말라고 계속 압박하면 식사자리가 어떻게 될지 뻔했기에 이사장은 더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재단이사장님이 학부모로 참석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이 나오지 않겠어요” “네가 참석해도 마찬가지야” “부담스럽기는 하겠지만 재단소속도 아니고 그룹 소속도 아니니 나중에 문제될 일은 없을거에요” 부인과 아들의 날선 대화를 듣고 있던 차희태는 초희가 말 그대로 아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우빈에게 물었다. “초희 학교에서 문제가 있었던 거야?” “하아, 사고가 있었어요" "사고?" "네, 어차피 내일 변 실장님이 보고할 테니 오늘은 그냥 식사 하세요” 아버지 궁금해 할거 뻔히 알면서 말을 끊는 우빈을 보며 차희태는 순길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순길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회장님에게 알렸다. 화가 단단히 난 아들과 부인 심기를 건들지 않는 것이 지금 분위기로는 좋은 일이기에 차희태회장은 더 이상 묻지 않고 하던 식사를 이어갔다. 식사가 끝나고 어머니 방으로 불려간 우빈은 학부모면담에서 과격한 단어 사용도, 위협적인 행동도 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엄중한 경고를 들은 그러겠다는 확답을 하고 나서야 어머니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층 복도를 지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우빈은 발길을 돌려 초희 상태가 어떤지 보려고 방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문을 열고 초희 방으로 들어갔다. 밝은 형광등 불빛 대신 책상 위에 있는 조명이 밝혀져 있는 방안으로 들어선 우빈은 침대에 잠들어 있는 초희에게 다가갔다. 순길에게 들었던 대로 엉망이 된 얼굴로 잠들어 있는 초희를 잠시 지켜보던 우빈은 조용히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아가씨 방을 나서는 우빈을 이층 복도를 걸어 들어가다 본 순길은 걸음을 서둘렀다. “꼬마 아가씨는 괜찮아?” "힘들었는지 자고 있어" "약 먹었으니 일찍 잠들었나 보네, 얼굴은 봤어?" “내일 학교 가려면 상태가 어떤지 알아야 하니까 봤어. 병원 진단서는 받았어?” “응, 최 실장님이 주셨어” “내 방으로 가서 얘기하자” 도련님이 이사장님으로부터 훈계를 듣는 사이 순길은 최윤희실장에게 가서 아가씨 진단서를 달라고 부탁했고 최 실장은 진단서를 순길에게 건넸다. 순길에게 건네 받은 진단서를 열어 본 우빈은 다시 접어 봉투 안으로 넣었다. “여학생들이라 힘이 약했는지 뼈가 상하지는 않았지만 손이랑 발이 닿는대로 마구잡이로 때린 것 같아" “이런 집단폭행은 일진들이 벌이는 일인데 어느 집 자식이 이런 일을 벌였는지 궁금하네. 그리고 그냥 봐도 얻어터진 모양새던데, 원일이는 뭘 보고 운동하다 다쳤다고 말한 거야!” “학교에서 여학생들이 싸운다고는 생각을 못했을테니 들은 그대로 믿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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